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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에서 취향의 위계

직업이 직업인지라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되면 "어떤 음악 좋아하십니까?"라고 물을 때가 많다. 의외로 답변을 받은 사람의 입은 머뭇거릴 때가 많다. 간혹 "어떤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이 나올 때가 있으면, "어떤 점이 좋으냐? 왜 좋아하느냐"라고 물을 때도 있다. 그러면 대다수는 "그냥요"라고 모든 설명을 대신한다. 하긴 물어본 놈이 바보다. 음악을 좋아하는 데 '왜'라는 질문이 왜 필요하며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다른 사람한테 말할 의무가 뭐가 있단 말이냐.

그런데 가끔은 이런 말도 듣는다. "음악을 많이는 모르구요 이것저것 그냥 들어요"라는 답변이다. 말이다. 저 말은 '대중' 음악도 '알아야' 듣는다는 말일 것이다.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이런 반응은 별로 없었거나 있었다 하더라도 일부의 것이었다. '대중' 음악이라는 게 '순수' 음악과 다른 게 뭔가. 후자(순수음악)가 음악에 대한 엔간한 지식이 없으면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운 음악이라면(그래서 음악에 대한 전문지식이 별로 없는 나같은 사람은 하품밖에 안 나온다), 전자는 음악에 대해 쥐뿔도 몰라도 개나 소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이라는 게 상식이다. 분명 '대중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데도 음악에 대한 '지식'이 문제가 되는 세상이 온 것일까? 이제까지 고급예술 대 대중문화라는 취향의 위계가 존재했다면, 이제부터는 대중문화 내부에도 취향의 위계가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맞다'다. 1970년대 남진을 좋아하는 이미자를 좋아하는 것 사이의 위계는 없었고, 노래 부르는 '기능'(가창력)의 문제였을 뿐이다. 그렇지만 1980년대만 해도 김완선과 소방차를 좋아하는 것과 들국화와 시인과 촌장을 좋아하는 것은 커다란 위계의 차이가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엔터테이너냐, 아티스트냐'의 문제고, '주류나 언더'냐의 문제고, 현실은 이런 이분법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문화에 대한 취향은 그 사람의 퍼스낼리티(순우리말로 '됨됨이(?)')를 판단하는데 중요한 잣대가 된다. 엄밀하게 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이성 친구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문화적 취향은 꽤 중요하다. '국산' 록 발라드나 듣는 여자가 '영미산' 헤비 메탈에 심취한 남자를 만나는 일조차 힘들다. 할리우드식(혹은 충무로식) 멜로와 액션같이 '하찮은'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이 아트 필름이나 컬트 무비만을 골라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나보다 더 나이든 1970년대의 대학생 사회에서도 '문학소녀(문과대생)'와 '공돌이(공대생)은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럭저럭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중년부부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물론 40대를 넘어서면 천박한 대중문화를 버리고 고전음악, 발레, 뮤지컬 등을 찾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하긴 문학은 '대중문화'는 아니었다. 어쨌든 한 사람의 정체성을 판별할 때 '학벌'과 '경제력' 못지 않게 '문화'가 중요해지는 추세는 분명하다.

그런데 취향이란 기본적으로 주관적인 것 아닐까? 거기에 위계를 부여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그렇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개인마다 혹은 소집단마다 각자 '나름의' 위계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족하다. 예를 들어 잘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 힙합이나 댄스가요는 그게 그거 같지만, 듣는 사람들한테는 그렇지 않다. 국내의 예를 들면 드렁큰 타이거나 GOD의 팬은 핑클이나 베이비복스는 음악으로 쳐주지도 않는다. 같은 록 음악이라고 하더라도 델리 스파이스나 크라잉 너트같은 '인디' 밴드의 팬은 김경호나 '인기 록 가수'의 음악은 논의의 대상도 안 된다.

이런 '취향의 게임' 현상은 유독 한국적인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대중문화가 '존중'되는 징후가 보인다는 점에서 감히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원만하고 두리뭉수리한 취향의 천박함이 사라지는 듯해서 반갑다(이건 나의 취향의 위계가 작용한 발언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적인 현상이 있다. 무엇보다도 '취향의 게임'이 유쾌하고 즐겁지 않으며, 때로는 너무나도 각박하다는 점이다. 인터넷 문화가 대중화되고 '익명의 스릴'을 즐기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이런 각박함은 증폭되고 있다. 특히 별반 다르지 않은 음악을 하는 가수(나 그룹)의 팬들 사이에서의 소모적 감정싸움은 '도를 지나쳤다'는 말을 입 안에서 감돌게 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왜 그럴까?'하고 고민하던 중 엉뚱한 데서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올림픽 경기 중계 장면 말이다. 결승전 게임을 중계하는 아나운서의 임무는 '상황 전달'이 아니라 '우리팀 응원'이었다. 모습이 보이지는 않지만 머리끝까지 흥분한 상태에서, 입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고, 마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듯한 태세였다. 이기는 경우는 세상 모든 고민이 해결된 듯한 환희가, 졌을 경우는 세상이 다 끝난 듯한 탄식이 들려왔다. '아직도 이래야 하나?'라는 바램이 한가로와 보일지는 몰라도 '아득바득' 1등만을 인정하는 사회의 단면인 듯하여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이런 바램으로 글을 맺어야겠다. 스포츠든 문화든 뭐든 위계를 정해도 좋은데 '승리', '제압', '1등'을 지고지선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바램 말이다. 그렇지만 12년 동안 '1등'을 부러워하면서 교육받는 제도 하에서 그게 과연 가능할지는 나조차도 의문이다.

* <우리교육>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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