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VIEW:
- 서태지 신드롬과 한국의 문화정치의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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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하반기의 대중음악계의 화두는 단연 '돌아온 서태지'다. 조성모와 H.O.T도 여전히 '건재'했지만, 그리고 조성모의 경우 음반판매량이 서태지보다 많았다는 게 객관적 수치로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영향력'에서 서태지에 비교할 바는 아니다. '음악 활동'으로는 음반 1장 발매하고 몇 차례 공연을 가진 것이 전부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귀국한 지 두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 그는 끊임없이 여론의 시선을 끌고 있다.
귀국하는 방식부터 말들이 많았다. 일정을 앞당겨 8월 29일 김포공항에 내린 그날 전화사서함으로 귀국을 알렸고 그래서 공항은 마중나온 팬들과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기자들한테 그럴듯한 사진 거리 하나 던져주지 않고 그는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왔다. 일부 기자들은 폭언을 퍼부으면서 그의 '시건방진 행동'을 나무랐다. '신비주의'라는 비판이 언론에 나왔지만 본인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리고는 앨범이 발매되었다. 그룹 시절을 포함하면 여섯 번째, 솔로로서는 두 번째 앨범인 이번 음반에서 서태지는 본인 표현으로 '하드코어 계열의 핌프 록'이라는 장르를 선보였다. '전문가들'의 평은 엇갈렸다. 일부에서는 변함없는 찬사를, 다른 일부에서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서태지에 대한 평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지, 중간은 없다. 칭찬하면 우리 편이 되고, 반대하면 적이 된다. 그래서 비판하는 사람의 시각이 어떤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고 '서태지 죽이기'에 합류한 게 되어 버린다.
9월 12일에는 MBC TV를 통해 '컴백 쇼'가 녹화방송되었다. '민족의 명절'이라는 추석 연휴에 한 가수가 황금시간대를 차지한 일도 전례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공연은 '라이브'가 아니었고, 미리 녹음한 것을 틀어주는 공연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립 씽크'였다. 당연히 이에 대한 왈가왈부가 있었다. 한쪽에서는 '립씽크라면 넌더리가 난다'는 반응을 보였고, 다른 쪽에서는 '여건이 안되서 어쩔 수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9월 16일 인기 댄스가수 이정현은 자신이 DJ를 맡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록 음악은 다 라이브로 해야 한다. 서태지는 아무래도 연습부족이었던 것 같다"는 '망발' 때문에 된서리를 맞기도 했다. 한편 MBC는 모든 프로그램이 종영될 때마다 CF 처럼 서태지의 뮤직 비디오"울트라 맨이야"를 틀어대기 시작했다. 한편 9월 17일에는 SBS-TV의 도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서태지 신드롬을 다뤘다. 선정적인 르뽀 프로그램 치고는 이례적인 것이었다.
여기에 9월 18일에는 홍대앞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서태지를 위하여'라는 역설적인 이름의 연합공연이 열렸다. 주최측은 '안티 서태지 연대'라는 곳이었다. '서태지는 거대한 기업이 되었다. 서태지의 우상화에 반대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언더그라운드 밴드들 일부가 모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일각에서는 서태지를 이용하여 떠 보려는 졸렬한 행동이라는 비난이 있었다. 아무튼 이런 '조촐한' 행사까지도 언론과 방송의 관심이 되어 카메라를 든 취재진들이 평소에는 잘 찾지 않던 곳을 찾아왔다. 그래서 서태지에 대한 평이 아니라 서태지에 대해 평하는 사람에 대한 평이 인터넷과 PC 통신의 게시판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서태지를 비판하는 것은 조성모와 H.O.T만을 이롭게 하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서태지 본인도 "안티 운동은 순수한 의도와는 달리 상업적으로 이용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조금 잠잠해지나 싶은 사이에 서태지는 주요 일간지를 비롯하여 각종 일간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를 거부했을 때는 '신비주의'라고 비판해대던 신문사와 잡지사 기자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인터뷰를 게재했고 그 중에서 '싫은 소리'는 별로 하지 않았다. 서태지에 대한 논란은 이것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9월 28일 조성모가 서태지에 대한 MBC의 태도를 문제삼으면서 다시 한번 논란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유인즉슨 여러 가수가 출연하는 한 프로그램에서 서태지에게만 미리 녹화한 공연 장면을 할애하려는 방송국의 의도에 조성모가 '특혜다'라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한쪽에서는 "방송국의 관행을 시정해보려는 서태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다"라는 분노에 찬 의견이, 다른 쪽에서는 "그래 그렇게 혼자 튀어보고 싶었나 보지"라면서 고소해하는 반응이 나왔다. 결국 녹화방영이 나오기 위해서는 몇 주를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그 뒤의 상황이 우습다. 서태지의 노래는 MBC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인 <음악캠프>에서 서태지는 1위를 차지했지만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다. 반면 하루 뒤인 SBS의 <생방송 인기가요>에서는 20위권 내의 순위에도 들지 않았다.
10월 19일에는 KBS가 주최한 <평화 콘서트>에 외국의 베테랑 뮤지션들, 그리고 조수미같은 순수음악인과 함께 서태지가 출연했다. 몇 일 뒤 이 공연이 녹화방영되면서, 또한번 논란이 발생했다. 전반적 음향상태가 좋지 않았을뿐더러 "발해를 꿈꾸며"라는 곡을 연주하다가 실수하는 부분이 나왔던 것이다. 가창력과 연주력 등에 대한 시비와 '음향 제대로 못 잡는 방송국의 한심함에 대한 논란이 평행선을 달렸다. 바로 그 날 몇몇 신문에는 이미 시간이 지난 사건(10월 10일 발생)인 "룸 살롱에 간 서태지"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아마 룸살롱 출입한 '사생활'이 뉴스가 된 사람은 이제껏 없었을 것이다. 같은 날 서태지가 프로스펙스와 15억원에 CF 계약을 체결했다는 뉴스도 같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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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이 글을 쓸 때까지의 상황이다. 솔직히 고백한다면 필자 역시 서태지에 대해 비판을 했다가 사이버공간에서 곤욕을 치러야 했다. 가장 곤욕스러웠던 것은 서태지를 비판할 때 '서태지를 비판하는 근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서태지를 비판하는 것은 다른 누구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다. 후자의 질문이 '한심하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문화적 지형도가 그렇게 짜여져 있다는 뜻일 게고, 그 점에서 서태지에 대한 비판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문화적 지형도란 무엇인가. 외국 문헌으로부터 '차용'해 와서 설명해 보기로 하자. 영국의 문화연구자 새러 쏜튼(Sarah Thornton)은 다음과 같은 도식을 만들고 있다. 이 도식은 본래 대중음악에 관한 담론을 조사하여 '각 논자들이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나는 이를 자의적으로 한 사회의 문화를 설명하는 객관적 도식으로 삼고자 한다.
주류 대안
(1) 지배문화와 (3) 대학생 문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교육받은 전위들
(2) 대중 문화 (4) 하위문화
상업적 이데올로기 일탈적 전위들
이 도식은 일단 '주류'가 무엇인지 '대안'이 무엇인지 혼돈스러움을 말해준다. 어떤 사람은 주류 문화를 (1)처럼 완고한 보수주의로 상정하고, 다른 사람은 (2)처럼 노골적 상업주의로 상정한다. 음악의 예를 들면 (1)은 '클래식 음악' 외에는 예술로 인정하지 않는 이데올로기이고, (2)는 '인기만 좋고 잘생기면 그만이지 뭐'라고 생각하는 이데올로기다. 장영주나 조수미의 팬이 (1)에 속한다면, 조성모나 H.O.T의 팬은 (2)에 속할 것이다.
다른 한편 대안 문화라는 것도 혼동스럽다. (3)은 서양에서는 '반문화(counterculture)'라고 부르는 것에 가깝고, 이 경우 (3)이 주로 반대하는 것은 (2)이고 나아가 (1)은 '허위적'이라고 간주하면서 지배 이데올로기 내에서의 대립을 드러낸다. 즉, 현대의 예술은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아니라 비틀스나 너바나라는 주장일 수 있다. 반면 (4)는 '노동계급 청년'의 불량스러운 시각이다. 이들은 (1)에는 아예 아무 관심도 없고 (3)에 대해서도 '중산층의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3)은 개인주의적이고 '아티스트'를 선호하는 반면, (4)는 공동체주의적이고 '반항아'를 선호한다.
심심풀이로 나라별 비교도 해보자. 사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리버럴'한 미국에서 주요한 대립은 (2)와 (3)의 대립이다. 예를 들어서 프랭크 시내트러와 마이클 잭슨은 '딴따라'이고, 제리 가르시아와 커트 코베인은 아티스트다. (4)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음악으로 치면 헤비 메탈, 스포츠로 치면 프로 레슬링처럼 그다지 문화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상태에 머물게 된다. 흑인 문화도 고려해야 되겠지만 여기서는 생략하자.
사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영국에서의 주요한 대립은 (1)과 (4)의 대립이다. 1950년대의 테디(teddy)와 로커(rocker), 1960년대의 모드(mods)와 스킨헤드(skinheads), 1970년대의 펑크(punks)로 이어지는 유구한 역사가 있거니와 현대적 계급제도가 오래 지속된 결과 각 계급은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국은? 도식이 '국산'이 아니라서 잘 안 맞겠지만, 억지로라도 끼워맞춰 보자. 먼저 (1)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실질적으로 강하지는 않다. 부르주아래봤자 재벌가에 기생하여 성장한 졸부들이 대부분이라 문화예술에 대한 심미안은 장님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KBS <평화콘서트>에서의 서태지의 실수에 대해서 "어떻게 서태지와 조수미를 같은 무대에 세우느냐"라는 발언을 하는 인간들도 실제로 있었다. 예전에 "딴따라인 이미자와 패티 김에게 무슨 세종문화회관이냐?"라는 초(超) 스트레스성 발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한편 (2)는 현대화된 비즈니스 시스템을 갖추려면 아직 멀었다. 아직도 전근대적 관행과 편법이 판치고 때로는 폭력도 개입된다. 그러니 비즈니스라도 폼나게 하는 게 차라리 나아 보인다. 똑같은 앵벌이 비즈니스라도 SM이 다른 '마구리 기획사'보다 차라리 나아 보이기도 한다. 더군다나 1980년대의 민중문화운동이든 언더그라운드든 망해 버려서 (3)이 영 시원치 않은 1990년대에는 (2)의 일방 독주가 너무 오랫동안 계속된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대안을 말할 때도 좀 복잡하다. 서태지는 '중졸' 학력이므로 (3)보다는 (4)에 속하고 주된 대립은 (1)을 향하고 있다. 이제까지 한국사회의 고루한 지배 이데올로기를 허문 혁신자라는 점에 나는 동의한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3)이 영 맥을 못 춘다. "가요계는 10대가 장악했고 20대 이상은 들을 음악이 없다"는 불만이 나온다는 뜻이다. (3)에 속하는 나같이 먹물든 인간은 (2)와는 상종하기도 싫고 (4)와는 연대할 용의가 있다. 그런데 (4)에 속하는 줄 알았던 서태지가 (2)처럼 보이니까 불만스럽다. 'DJ Doc, XX 나이트클럽 출연'이라는 포스터를 볼 때의 느낌하고도 비슷하다. 반면 서태지의 팬들은 (3)의 저의를 의심한다. (3)은 기본적으로 가방끈 긴 놈들이니까, 말로는 비판적, 진보적 어쩌구 해도 사실은 (1)과 그리 거리가 멀지 않다고 본다. 더 열받으면, (3)은 먹고 사는 데 지장없으므로 (2)도 그리 싫어하지 않을 거라고 추측한다.
정리하면 (3)은 (2)의 '상업주의'를 의심하고, (4)는 (3)의 '엘리트주의'를 혐오한다. 그리고 아무래도 후자가 전자보다 절박한 건 사실이다. 이런 '오해'와 '착각'이 한국의 문화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다 좋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게임이 별로 유쾌하지 않다는 점이다. 유쾌했으면 좋겠는데 나부터도 그러지 못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저 도식도 틀린 것이었으면 좋겠다.
* <황해문화>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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