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VIEW:
  • mp3, 디지틀 배급, 음악 산업  

음악산업계에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 유령의 이름은 mp3다. 유령의 출현에 대해 기성 음악산업계는 비명을 지르고 있고, 돈없는 음악 소비자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물론 환호성은 겉으로 내지르는 박장대소가 아니라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것에 가깝다. 이유는 다름 아니라 mp3를 다운로드하는 행위가 '법대로' 하면 불법이기 때문이다. 음반업계에서는 mp3의 다운로딩을 '저작권 침해' 혹은 '해적질'로 'piracy'라고 부르면서 저작권법이라는 현행법의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태는 원칙의 천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어떤 근본적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는,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는 조짐을 느낄 뿐 변화의 실체에 대해서는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먼 미래에 대한 예상이 아니라 몇 달 뒤의 상황조차.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한 마디로 이제까지 음악을 생산(제작)하고 배급하고 소비하는 기성의 시스템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듯하다. 기성의 시스템은 음반을 제작하여 복제하여 판매하는 업무와  저작권이라는 제도를 통해 수입의 분배를 관리해 왔다. 음반이란 아무래도 '유형의 실체'였다.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은 상황이 초래되었고, 이걸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 글은 이런 복잡한 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시론적 분석일 뿐이다.

음악이 '정보'(정확히 말하면 디지틀 파일로 저장된 정보)가 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된 현실이다.  1970년대 이래 신디사이저와 샘플러 등 전자악기가 대중화되었고 1980년대 이후에는 디지틀 방식으로 개선되었다. 또한 1982년 전자악기 간의 통신규격인 MIDI가 체결되면서부터 음악은 컴퓨터 테크놀로지와 본격적으로 통합되었다. 그렇지만 1990년대 이전의 변화들은 음악의 '생산' 영역에 국한되었고 음악의 유통이나 소비는 아직까지 아날로그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디지틀 테크놀로지가 음악의 소비 영역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의 상황이 디지틀로 제작한 음악을 '음반'이라는 실체에 고정시켜 아날로그식으로 유통해 왔다면, 지금은 최초의 생산부터 최종 소비에 이르는 과정에서 처음과 끝을 제외하고는 디지틀 테크놀로지에 의해 순환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가상의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음악 생산자(뮤지션)는 머리에 떠오른 악상을 더 이상 악보에 기록하지 않고 곧바로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에 파일 형태로 저장한다. 악기 연주나 노래의 경우도 디지틀 방식로 레코딩하여 여러 개의 파일로 만들어진다. 프로듀서의 일은 이런 여러 개의 트랙들을 뒤섞고(mixing) 편집하는(editing) 작업이다. 생각보다 간단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제작된 음악 파일이 온라인 공간에 업로드된다. 업로드라는 기술적 실천이 이제까지의 음반의 발매(release)라는 실천에 해당된다. 디스크나 테이프같은 유형의 물체는 없고 종이로 된 앨범 자켓(커버)도 없고 커버 위에 쌓인 얇은 비닐 포장도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현금계산대가 없다는 것이다. 유료 다운로드를 비즈니스로 하는 곳이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망했다'.  

소비자는 여기저기를 서핑하다가 업로드되어 있는 곡들을 살펴본 뒤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면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파일의 크기는 대략 5메가 바이트 정도이므로 하드 디스크의 용량이 대폭 늘어난 지금 이건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음악을 듣는 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디스크나 테이프를 애지중지 보관하다가 이삿날이 되면 이삿짐 센터 직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일도 없다. 음악이 마음에 들면 계속 저장해 두고 있다가 틈날 때 들으면 되고, 마음에 안 들면 파일을 지워버리면 된다. 음악 소프트웨어는 지천에 널려 있다.

하드웨어: mp3 재생기

앞서 말한 이상의 이야기도 이제 '옛날' 일이 되었다. 그동안 mp3의 업로드는 '저작권 침해'라는 음악산업측의 줄기찬 비난을 받아왔고 그 결과 유수한 mp3 사이트들은 경고조치를 받고 폐쇄되었다. '불법' mp3를 올리려는 단속하려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전개되었고 이는 마치 게릴라전(및 게릴라 소탕작전)을 방불했다. 1990년대 중후반만 하더라도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려있는 곳은 대학가나 직장이 대부분이었고 그 중에서 '해적들'은 직장인보다는 대학생이 많았으므로 단속은 주로 대학가를 향했다. mp3를 단속하는 일은 정당성을 얻어갔고, mp3 애용자들은 '지하'로 잠적했다.

이런 와중에 리오(Rio)라는 이름의 휴대용 mp3 재생기가 등장했다. 리오의 등장은 이제까지 컴퓨터 파일로만 인식되던 mp3가 '형체없는 음반'이 되어 '음악'으로 소비될 수 있게 된 것을 뜻한다. 게다가 PC 앞에 앉아서 사운드카드를 통해 듣던 mp3 파일을 길을 걸어가면서 이어폰을 통해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드웨어 업체와 소프트웨어 업체가 충돌했고, 미국음반협회(RIAA)는 즉각 고소조치를 취했다. 그렇지만 미국 법원은 Audio Home Recording Act of 1992에 의거하여 mp3 플레이어를 통한 파일의 전송이 디지틀 '레코딩'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그렇지만 결과가 '하드웨어 업체의 승리 = mp3의 승리 = 소비자의 승리'로 쉽게 끝나지는 않았다.  mp3 재생기 제조업체인 다이아먼트 멀티미디어사는 음악산업계와 모종의 타협 하에 '암호화 체계'를 도입할 것을 합의했다. 이른바 SDMI(Secure Digital Music Initiative)가 바로 그것이다. 즉 저작권 침해로부터 안전한 음악 포맷을 확정하고 장기적으로 mp3를 대체하려는 것이 그 의도다. SDMI란 이름 하에 가전 산업, 테크놀로지 산업, 음반산업 등이 모여 새로운 디지틀 음악에 관해 논의하여 합의와 기술적 표준을 이끌어내고자 협의를 해왔다. 물론 mp3를 통한 음악 '해적질(piracy)'에 대한 기술적, 제도적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협의의 목적이다. 해적질로부터 안전한 음악 포맷을 만들어서 장기적으로 mp3를 대체하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의도다. 과도적으로는 일단 '불법' mp3도 재생할 수 있도록 하고 4번밖에 복제하지 못하도록 단계적으로 이를 제한한다느니 하는 논의가 나왔다. 앞으로 발매될 CD에는 '전자 지문(electronic fingerprint)'라는 워터마크(Watermark)를 집어넣어서 무제한 복제되지 못하게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렇지만 이런 논의에 대해 mp3 사용자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제까지 해커(hacker)의 활동을 돌아본다면 워터마크나 전자지문의 제거는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하는가하면, 멀쩡한 CD에 음의 손실을 가져올 장치를 도입하는 것은 '기술의 낭비'라고 타당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게다가 앞으로 나올 CD에만 적용한다고 할 때 이제까지 나온 CD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따라서 문제의 쟁점은 하드웨어 업체와 소프트웨어 업체의 대립을 넘어서는 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이제까지 '저작권의 보호'와 '소비자의 편의'는 충돌해 왔다. 앞으로 나올 보호장치들은 '선량한 소비자'라도 불만을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다. 자기가 돈 주고 산 CD를 4번밖에 복제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제까지 집에서 공(空) 테이프에 녹음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생각해 왔던 소비자들에게는 너무 귀찮고 때로는 불쾌한 주문이다.

현 상황에서 SDMI는 컴퓨터 업계, 가전산업 업계, 음반업계들 사이의 복잡한 이해 대립으로 합의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 사이에 하드웨어 업체에서 출시한 무수한 종류의 휴대용 mp3 플레이어들은 SDMI를 채택하지않았다. 나아가 mp3 플레이어 뿐만 아니라 mp3 CD 플레이어까지 등장했고, DVD 플레이어도 mp3 CD를 재생할 수 있게 설계되고 있다. 이렇듯 SDMI가 흐지부지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냅스터(Napster)라는 유령 때문일 것이다.

냅스터 패닉  

냅스터란 음악 파일 그자체가 아니라 음악 파일을 전송하는 프로그램들 중의 하나다. 냅스터는 mp3 파일을 전문적으로 전송하는 프로그램으로 개발되었다. 이제까지와 다른 점은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되어 있는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서버에 접속한 사용자들의 하드 디스크에 저장된 파일을 업로드/다운로드한다는 점이다. 1:1 전송방식이라는 의미에서 P2P(peer to peer) 방식이라고 불리는 냅스터는 또하나의 혁명이었다. mp3가 유령이라면 냅스터는 유령들의 공동체이자 네트워크인 셈이다. 월드 와이드 웹에 속한 공적 공간에 게시한 것이 아니라 하드 디스크라는 자신의 '사적' 공간에 저장했을 뿐이므로 이전처럼 '불법 mp3의 업로드'라고 주장하는 일도 모호해졌다.

냅스터는 2000년 내내 커다란 화제를 뿌리면서 소송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최종 결과는 RIAA측의 승리였지만, 여론은 냅스터를 개발한 20대를 갓 넘긴 청년에게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래서 곧 폐쇄될 것만 같았던 냅스터는 아직 접속할 수 있다. 그뿐인가. 냅스터와 비슷한 프로그램은 여기저기 널려 있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온라인을 통한 파일 전송을 제재하려는 시도는 홍수를 우산으로 막으려는 것 같다.

그 사이에 빅 뉴스가 있었다. 거대 음반배급사이자 세계 5대 메이저 중의 하나인 BMG가 냅스터와 사업 제휴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비즈니스에 밝은 어떤 사람은 실질적으로 BMG가 냅스터를 인수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냅스터가 곧 유료화될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음악산업은 냅스터를 비롯한 디지틀 배급의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그걸 비즈니스로 만들어보려고 시도하기 시작한 것일까. 지켜보아야 할 문제지만 무언가 나아갈 방향은 정해진 느낌이다.  

mp3는 '나쁜' 것일까. 아니, 적어도 음악인들에게는 치명적인 것일까. 실제로 음반업계에서는 그렇게 주장한다. RIAA는 저작권 침해행위와 '전쟁'을 수행하는 이유를 '저작권 침해 행위는 아티스트의 창조적 작업을 질식시킨다'고 설명한다. 정작 음악인들은? 알 수 없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침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냅스터를 둘러싸고 음악인들 사이에 견해가 갈린 것이다. 헤비 메탈 밴드 메탈리카(Metallica)와 갱스터 랩 뮤지션 닥터 드레(Dr. Dre)는 냅스터를 반대했고, 하드코어 밴드 림프 비즈킷(Limp Bizkit)과 하드코어 랩 뮤지션 퍼블릭 에니미(Public Enemy)는 냅스터를 지지했다.

냅스터를 반대하는 논거는 음악산업계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냅스터를 지지하는 논거는? 퍼블릭 에니미는 이제 '한물 간' 음악인이다. 그들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인터넷 레이블'로 만들어서 mp3로 자신들의 음악을 공개했고, 이를 통해 음악인과 팬이 '음악산업을 경유하지 않고' 직접 만나는 기회를 만들었다. 실제로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인 상황에서 mp3는 '틈새시장(niche market)'이나 '시험시장(test market)'을 만드는데 공헌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순기능보다는 기존의 히트곡을 무료로 듣고 싶은 욕망이 더 많지만.   

한국에서는

국제저작권단체에 의하면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은 '주요 저작권 위반국'이다. '청계천 구름다리 빽판'이란 걸 아는 사람이라면 저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는 '없이 살던' 시절이기도 했거니와 '사전검열'이라는 삭막한 제도로 인해 외국에서 제작된 음악들을 대거 금지곡으로  지정했던 시절이므로 저작권을 침해하는 빽판이라도 눈감아줄만 했다. 1990년대 이후 이른바 '길보드'는 외국 음반 뿐만 아니라 국내 음반도 불법 복제해서 판매했다. 음반업계와 길보드가 '공생관계'라는 루머도 있다(길보드는 홍보 매체?). 어쨌든 이상은 아날로그 시대의 이야기일 뿐이다.

한국은 '인터넷 강국'에 속한다고 한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겠지만 새로운 것이 나오면 옛 것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현상은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집집마다 깔리기 시작하고 냅스터의 유사품이자 수입대체품인 소리바다라는 프로그램이 보급되면서 mp3의 유통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음반이 안 팔린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더 안 팔린다. 나이트클럽이나 캬바레같은 업소에 유명 가수들이 출연하는 모습이 예전보다 부쩍 늘어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여기에는 '불법 복제에 무감각해진 소비자의 관습'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길보드에서 <최신댄스가요>를 2000원 주고 구입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 있는가. 그렇지만 생산자측의 문제도 없지 않다. 다들 느끼다시피 한국에서 판매되는 '앨범'은 한두곡의 히트곡에 나머지 있으나마나한 곡들을 '끼워팔기'하는 상품이다. 1만원 정도의 '거금'을 들여서 CD 하나를 구매하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대중음악이란 'TV에서 보고 즐기는 음악'이 되어버렸지 소리만 감상하는 경험은 낯설게 되어 버렸다. 라디오도 전문 음악방송에 인색하고 수다잔치와 웃음잔치 한마당이 되어버린지 오래고. '샘플'로 들을 음악이 없다는 뜻이다. 음반이 한두번 들어보고 정말 좋으면 구매하는 상품이 될 때 '산업'이 자리를 잡는다. 반면 지금은 '무조건 좋아서 사는' 음반들만 베스트셀러다. 게다가 유통구조가 현대화되어 있지 않아서 음반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와 비용이 요구된다. 음반을 '문화'로 인식하여 가정에 라이브러리를 갖추고 있는 경우도 드물다. 테이프를 워크맨이나 카스테레오로 돌리다가 이사할 때마다 버리고 가는 게 일반적이다.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냐고 물을 것 같다. "mp3로 '샘플'을 듣고 그 중에서 좋은 것들은 CD로 구매하십시오"가 최선의 충고로 보인다. '불법' mp3를 다운로드받아서 듣는 '매니아'들을 나무랄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그들은 이미 적잖은 돈을 음반구매에 지출한 상태다. mp3로 음악을 듣는 소비자가 당당할 필요도 없지만, 업계와 음악인 등 생산자가 지혜를 모으는 일이 더 중요해 보인다. 밤새 다운로드를 받고 눈이 벌개져서 아침을 맞는 음악 팬들을 '음악산업의 적들'로 몰아세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걸 가지고 장사를 하지 않는 한 말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적응할 필요성은 소비자보다는 생산자에게 더 커 보인다는 뜻이다.    

 * <황해문화>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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