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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고르바초프의 뻬레스뜨로이까(재편)과 글라스노스찌(개방)이 전개되면서..."라는 말은 이제 역사 교과서에나 나올 말처럼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쏘련'이라는 체제는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시 소비에트 체제에서 청년 세대를 보낸 사람들에게 그 시기는 각별하기만 하다. 한국의 '386세대'와 비슷한 연배들의 이야기다. 이런 각별함은 록 커뮤니티에 속했던 사람들에게 특히 각별하다. 오늘의 테마는 쌍뜨 뻬쩨르부르그의 록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사회주의 국가'였던 쏘련에 웬 록 음악? 모르는 소리다. 혹시 1989년에 개최된 [Moscow Music Peace Festival]의 실황 비디오를 본 사람이 있다면 이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본 조비(Bon Jovi), 모틀리 크루(Motley Crew),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스콜피온스(Scorpions), 스키드 로우(Skid Row) 같은 당대의 쟁쟁한 헤비 메탈 밴드들이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쏘련에 왠 양아치들이 저렇게 많지?'라는 의문과 더불어 고르키 파크(Gorky Park)라는 소련제 메탈 밴드의 모습도 기억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헤비 메탈이 '러시안 록'은 아니다. 영어로 노래부르는 음악이 왜 '러시안' 록인가. 그렇다면 무엇인가. 혹시 빅또르 쪼이(Viktor Tsoi: 1962년생)와 그의 밴드 끼노(Kino)를 말하느냐고? 맞다. 이제 좀 지겨운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1990년 8월 15일 28세의 나이로 교통사고로 사망한 빅또르 쪼이야말로 '상뜨 뻬쩨르부르그의 마지막 영웅'이다. 모스끄바의 아르바뜨 거리에 '빅또르 쪼이의 벽'이 있다거나 그가 묻혀 있는 보고슬로프스끼 묘지에는 아직도 팬들이 교대로 '당번'을 서고 있다는 이야기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가진 공연에서 모스끄바의 올림픽 스타디움이 10만명의 인파로 가득찼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러시안 록의 전설들이 빅또르 쪼이 말고 없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도 빅또르 쪼이를 발굴한 보리스 그레벤쉬꼬프(Boris Grebenshikov: 1953년생)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러시아의 밥 딜런'같은 존재고 그가 이끈 밴드 아끄바리움(Akvarium)은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같은 존재다. 4인조 혹은 5인조의 고정된 라인업을 가진 밴드가 아니라 여러 명이 들락날락하면서 공동체적 생활을 영위하는 집단이라는 뜻이다. 그룹 이름을 왜 '수족관'이라고 지었을까. "나는 당신을 볼 수 있다. 당신은 나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말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소비에트 체제의 공식 사회(official society)와 절연하면서 '얼터너티브'한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보리스 그레벤쉬꼬프는 아끄바리움을 "하나의 생활양식(a way of life)"라고 불렀다. 이런 생활방식은 서방세계의 록 뮤지션들처럼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물론 허름한 아파트와 공장 지하실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보리스 그레벤쉬꼬프와 아끄바리움이 통기타 듀오로 활동하던 빅또르 쪼이에게 악기와 연주자를 빌려주면서 밴드를 만들어 준 것도 그게 그게 이들의 문화였기 때문이다. 정작 이들의 음악은 어떤 것일까. 환경과 조건에 맞게 하는 록 음악이었다. 뒤에는 록 밴드의 표준 편성을 갖춰 나갔지만 처음에는 어쿠스틱 기타, 첼로, 플루트, 퍼커션같이 주위에서 구하기 쉬운 악기들로 연주했다. 워낙 예술음악을 존중하는 사회이다 보니 클래식 음악에서 사용하는 악기들을 연주하는 사람이 많다는 조건도 꽤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영미산(産) 록 음악이 바이러스였다면, 러시아산(産) 음유시인(bard)의 시가(詩歌)는 숙주였다. 블라디미르 비소쯔끼(Vladimir Vysotsky: 1934-1980)나 불라뜨 오꾸자바(Bulat Okudzhava: 1926-1997)같은 반체제 바르드들이 '기타를 치면서 낭송하는 시' 말이다. 특히나 보리스 그레벤쉬꼬프의 가늘게 떨리는 속삭이는 목소리는 불라뜨 오꾸자바를 빼닮았고, 실제로 2년 전인 1999년 불라뜨 오꾸자바의 시가를 다시 부른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굵고 묵직하게 울려퍼지는 빅또르 쪼이의 목소리에서도 블라디미르 비소쯔끼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비소쯔끼의 영향은 유리 셰브추끄(Yuri Shevchuk: 1957년생)라는 또한명의 '러시안 록의 전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본래는 우랄 산맥 밑에 있는 광산도시 우파(Ufa) 태생이지만 지방 KGB 당국의 탄압을 피해 상뜨 뻬쩨르부르그로 이주하여 DDT라는 밴드를 결성한 인물이다. 시베리아에서 말을 달리면서 외쳐대는 슬라브인의 육성을 듣는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꼰스딴찐 낀체프(Konstantin Kinchev: 1960년생)라는 인물과 그의 밴드 알리사(Alisa)을 소개하지 않으면 서운해 할 것 같다. 닥터 꼬스쨔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인물은 [거장과 마르가리따]라는 소설로 유명한 불가꼬프의 니힐리즘과 짐 모리슨(Jim Morrison)으로 상징되는 쉬르레알리즘을 결합한 묘한 분위기의 음악을 구사하여 컬트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니힐리스트답게 흑적색을 자신의 색깔로 사용하는 그는 1990년 8월 군사 쿠데타가 발발했을 때 모스크바에 가서 탱크와 맞선 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들 '언더그라운드 록 뮤지션'들 모두가 소비에트 체제와 맞서 싸운 반공투사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낫다. 이들은 오히려 기성의 공식사회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자신들의 독립적 공간을 확보하려고 했던 반문화(counterculture)에 가깝다. 그게 그 말이지만 정치적 대안을 모색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대안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러닉하게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고 시장경제로의 개혁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체제의 불평분자'로 남아 있다. 게다가 가난했지만 영광스러운 시기였던 1980년대와 달리 요즘은 그곳도 '예쁘고 잘생긴 댄스 가수'들이 득세하면서 록 음악은 점차 설 자리를 일어가고 있다. 이런 우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한 가지만 지적하고 끝내자. 무엇이냐 하면 한국인들은 러시아 대중음악 중에서는 심수봉이 불러서 유명해진 알라 뿌가쵸바(Alla Pugacheva)의 "백만송이 장미(Million Alykh Roz)"나 지금은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요시브 까브존(Iosip Kobzon)의 "백학"같은 스타일의 노래만 좋아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어서 하는 말이다. 까브존은 지금 국회의원이 되어 있으니 '관제 가수'라고 해도 될 사람이고, 뿌가쵸바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소비에트 공식사회와 관련을 맺고 활동한 '직업적 음악인'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언급한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은 뭐라고 불렸을까. '아마추어'였다. 이건 '실력이 없다'는 말 이전에 직업란에 '음악인'이라고 쓸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하려면 '작곡가 동맹'에 가입하여 가사 검열을 수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빅또르 쪼이는 화부(火夫)로 일했고, 보리스 그레벤쉬꼬프는 야간경비로 일했다고 한다. 아끄바리움의 노래 중에 "문지기 세대(Pokolenye Dvornik)"(1987)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이기도 하지만 1980년대 청년 시기를 보낸 세대들이 평생 러시아 사회의 파수꾼이 될 것이라는 예언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음악 없이 듣는 건 영 재미없을 것 같다. 몇
군데 소개해 드리니 리얼 오디오라도 들으면서 즐기시길. http://russia-in-us.com/Music/ * 웹진 [Pencil]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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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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