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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대중음악은 아직도 묘연하게 다가온다.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 험악한 시기였다. 레이건과 대처가 집권하면서 국제적으로는 '신냉전'이 전개되고, 국내적으로는 '구조조정'이 단행되면서 찬바람부는 나날이 이어졌다. 이때 서양 사회에서는 '록 이 죽었다'는 담론들이 유행했다. 물론 나 역시 이런 말은 나중에야 줏어들은 이야기다. 그리고 이 말은 록 음악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록 음악'에 체현되었던 청년문화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좀 촌스럽게 말하면 '청년의 정신'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새로 나오는 록 음악은 더욱 화려하고 자극적이었지만 무언가 알맹이가 없어 보였다. 물론 '인디펜던트'나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의미심장한 움직임이 있었다지만 그건 한국같은 변방에까지 알려질 성질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이 시기의 '험악함'에서는 한국을 당할 나라가 없었을 것이다. 이는 한국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는 적용되는 말이다. 1970년대 청년문화와 그럭저럭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대중음악은 1980년대에 접어들면 무언가 불편한 관계를 맺게 된다. 대학생 문화의 '전위'들은 대중문화 전체가 '상업적이고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문화'라고 몰아붙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는 달리 말하면 한국에서도 '청년문화'가 사라졌다는 말의 반증이기도 하다. 1980년대의 대학생 문화의 지배적 흐름이 '정치적'이었고, 정치적이라는 것이 '젊은이다운' 것이라기보다는 '성인지향적'인 것이라면, 이건 어쨌든 '청년문화'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오해가 있을 것 같아서 부연하면, 어떤 의미에서든 '머리를 많이 굴려야 하는' 것은 젊은이다운 건 아니다. 시인 최영미가 "젊은 적이 없었기에 늙을 수도 없는"이라고 표현했던 사람들은 이 세대에 유난히 많다. 그래서 1980년대의 대중음악계가 세대화합적이고 계층화합적이었던 것은 역설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그 주역은 다름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 최초이자 최고의 슈퍼스타인 조용필이었다. 조용필의 음악은 '남녀노소 지위고하 막론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대중음악의 고전적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었다. '국민가요'라든가 '국민가수'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조용필의 '천하통일'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1980년대는 슈퍼스타의 시대였다. 음악은 조용필, 영화는 안성기, 소설은 이문렬, 야구는 최동원과 선동렬, 축구는 차범근, 농구는 이충희와 김현준...그리고 정치는 전두환(-.-). 여기서 조용필의 음악에 대해 상세히 논하기는 힘들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음악이 '돌파형'이라기보다는 '종합형'이라는 점이다. 무언가 참신하면서도 매우 익숙한 느낌을 준다는 이야기다. 이는 1980년대의 대중문화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1970년대 성인취향의 트로트와 청년취향의 포크 사이의 날카로운 대립은 슬슬 사라지고, 원만한 절충이 대중음악계를 지배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절충(eclecticism)이란 나쁜 뜻이 결코 아니다. 최근의 조용필의 발언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더라도 그의 음악은 '록 음악을 기초로 해서 여러 장르들을 잘 절충시킨' 음악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조용필의 '록 음악'은 매우 보편적이어서 '청년문화'라고 부르기에는 무언가 어색했다. 단적으로 말해서 할머니도 좋아하는 음악을 '이건 우리 세대의 음악이다'라고 말할 청년이 누가 있겠는가. 이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전영록, 윤수일, 김수철, 송골매(배철수와 구창모) 등의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출신 성분(?)은 각기 달랐지만, 음악적으로는 개성이 있으면서도 주류 취향과 그리 모순되지 않았다. (이들 각각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전영록은 포크 가수로 출발했고, 윤수일은 직업적 그룹 사운드 출신이고, 김수철은 캠퍼스 그룹 사운드 출신이고, 송골매는 캠퍼스 그룹 사운드인 활주로와 블랙 테트라의 멤버들이 결합한 '슈퍼그룹'이었다). 단지 대학생 세대의 청년들이 '우리만의 문화는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10대들에게는 비교적 원만하게 수용되었다는 점이다. 조용필을 포함해서 앞서 언급한 가수들은 한국 최초로 '소녀들이 소리지르는 음악'이 되었다. 달리 말해서 한국 대중음악에서 '틴 아이돌(teen idol)'이라는 존재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가 이때다. 그러고 보면 1980년대는 자기가 어느 공간에 있었는가에 따라 문화를 향유하는 방식이 엄청난 차이가 있던 시기였다. 20대의 비슷한 세대였다고 해도 '대학생이었는가, 직업인이었는가'에 따라 음악 취향이 큰 차이를 보였고, 비슷한 중산층에 속했다고 해도 '20대 대학생이었는가, 10대 틴에이저였는가'에 따라 음악 취향이 매우 달랐다. 그래서 되돌아본다면 '10대들이 열광하는 대중가요'를 하찮게 보았던 대학생의 태도란 것도 그리 고상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다시 생각하면 1980년대는 대중문화의 화합적 성격의 이면에 청년문화 내부의 분열이 발생한 시기다. 상징적으로 대학생 문화와 십대문화의 분열이 그것이다. 그게 '대중문화의 다양성의 확보'라는 긍정적 측면으로 사고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20011212 * 웹진 <창작과 비평>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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