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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을 설계하는 시점에서 되돌아본 1998년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여느 해보다 '차분'했다. 사회 각 분야에 휘몰아친 거품 제거와 군살 빼기의 바람으로부터 대중음악계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1990년대 들어 밀리언 셀러가 여러 장 탄생하면서 '산업'의 면모를 가지게 된 한국의 음악산업은 1997년 들어 두자릿수의 시장 축소를 경험했고, 1998년에도 확대의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음반판매량이 절정에 이르렀던 1996년의 시장 규모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2002년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한 대기업의 연구보고서도 나와있는 실정이다. 전반적인 시장위축의 상항에서 대중음악계에서는 별달리 뚜렷한 쟁점도 없고 새로운 경향도 보이지 않았다. H.O.T.와 젝스키스의 라이벌전은 골수팬을 제외한다면 10대들조차도 점차 지루해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다. S.E.S., 김현정, 핑클, 디바, 한스 밴드 등 아이돌 여가수(혹은 그룹)를 새로운 현상이라고 호들갑스럽게 지적하는 일은 안이한 자세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얼굴은 바뀌었어도 시스템은 변하지 않았다. 그건 구조조정도 타개책도 아무 것도 아니다. 조용필 등 베테랑 뮤지션들이 대형 공연을 성공리에 이끌었지만 이들 거물마저도 '30대 이후에는 공연은 몰라도 음반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속설을 전복할 지는 미지수다. 또한 이들의 활동이 음악과 비즈니스 양면에서 혁신을 가져올 것인지 아니면 이미 개척된 길을 걸으면서 노스탤지어에 안주하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이들을 반겼던 사람들 각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대중음악계를 둘러싼 문제점들은 '일본 문화 개방'이라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복잡해지고 있다. 이상한 것은 일본 문화에 대한 새삼스러운 소개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정작 무엇을 어떻게 개방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별달리 없다는 점이다. 일본 음악 개방이 아무로 나미에나 SMAP 등 아이돌 스타들의 '연예 활동 개방'으로 그친다면 이것으로부터 이득을 얻는 이는 수완좋은 업계의 관계자들 몇몇밖에 없을 것이다. 나아가 S.E.S.나 핑클의 최근의 음악을 들으면 느낄 수 있듯 한국 대중음악의 형식과 스타일은 은밀한 모방의 역사를 통해 이미 충분히 '일본화'된 상태다. 아이러닉하게도 일본 '문화' 개방은 문화와 감성의 문제라기 보다는 비즈니스와 시스템의 문제다. 여기서 일본 음악 개방이 한국 대중음악의 시스템에 미칠 영향을 길게 나열하기는 적절치 않다. 단지 일본 음악이라는 '외래 문화'의 유입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언더그라운드 음악(혹은 인디 음악)이라는 주장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평단 일각에서 나오는 이런 주장은 인디 음악계가 활성화될 때까지 일본 음악의 개방을 지연시켜야 한다는 제안을 낳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활성화는 짧지 않은 시일을 요하는 문제이고, 이들의 음악이 '자생력있는 한국 대중음악'이라고 규정하는 일도 논란이 없지는 않다. 몇몇 인디 음반의 경우 적어도 '영미 대중음악 트렌드의 모방과 수용'이라는 점에서는 주류 대중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쨌든 봄이 되면 몇 장의 음반이 발표될 것이다. 들국화와 한영애가 준비하고 있는 음반은 '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90년대의 막바지에도 계속 생명력을 가지게 될 지를 판단할 시금석이 될 것이다. 아울러 1999년은 1997-8년 데뷔하여 작지만 의미있는 성과를 거둔 밴드들의 2집 음반들이 대중의 평가를 기다리는 해가 될 것이다. 1999년 현 시점에서의 잣대는 소수의 컬트의 강도가 아니라 대중의 신뢰, 그 폭과 넓이다. 이는 단지 '좋아서 한다', '좋아서 듣는다'가 아니라 좋음(과 나쁨)을 공유하는 방식의 문제다. 990101 * <주간조선>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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