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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짐 모리슨과 아르뛰르 랭보: '모든 감각의 무질서'의 시인들

'20세기 미국의 음악인' 짐 모리슨이 '19세기 프랑스의 시인' 아르뛰르 랭보의 매니아(狂)였다는 점은 전설이 아니라 사실이다. 최근 번역된 월리스 파울리(Wallice Fowlie)의 『Rimbaud & Jim Morrison : The Rebel As Poet』(국역 : 『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처럼 두 기인 사이의 연관성을 학술적으로 연구한 저서까지 있을 정도니 틀림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짐 모리슨이 랭보의 시를 번역한 파울리 교수에게 '감사한다'는 메시지를 담아서 보낸 엽서까지 물증으로 남아 있으니 말이 필요 없는 이야기다. 짐 모리슨과 랭보의 관계는, 그렇지 않아도 신화로 가득한 두 사람에게 신화 하나를 보태주는 셈이다. 그럴 때 '스타와의 동일시'라는 음악팬의 일반적 속성은 '스타 사이의 동일시'라는 또 하나의 파생물을 낳는다.

두 인물은 '아다리'도 잘 맞아서 '짐 모리슨 사망 ( )주기 ＝ 랭보 사망 (＋80)주기', '짐 모리슨이 죽은 나이 ＝ 랭보가 죽은 나이 －10', 짐 모리슨의 음악인 활동 기간 ＝ 랭보의 시작(詩作) 기간 ＝ 4년' 등의 일련의 항등식도 만들어진다. 물론 랭보의 죽은 나이는 '만 나이'로 계산해야 두 번째 등식이 타당해지며 도어스의 활동 기간도 만 4년을 넘으니 세 번째 등식에 대해서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물론 첫번째 등식은 영원히 타당하다. 수학이라면 학창 시절의 악몽이 떠올라서 도리질치는 사람들을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면, 1991년은 랭보 사망 100주기이자 짐 모리슨 사망 20주기였고, 올리버 스톤 감독의 신통치 않은 영화 <도어스>가 만들어진 것도 이 해였다. 이 해 프랑스에서는 명사들 사이의 '랭보 시 릴레이'라든가 '랭보 기념제' 같은 행사가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파리의 페르 라셰즈 공원 묘지에 있는 짐 모리슨의 묘지 앞에 여느 때보다도 많은 참배객이 줄을 이었던 것은 당연지사고.  

이런 우연찮은 '숫자놀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작품에 흐르는 공통점이야 전문가에게 위탁해야겠지만, 삶 그 자체가 그랬다. 광기, 반역, 반항, 방랑 등의 단어를 적절히 구사하면 두 사람의 생애의 공통점을 추출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고, 종류는 달랐지만 '변태적 애정 행각'으로 일생의 정점을 장식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랭보의 경우(1854년 생) 15세에 첫 가출 시도(그러나 실패) -> 파리 코뮌의 현장에 존재 -> 17살에 세 번째 가출 시도(그리고 성공)이라는 도벽(逃癖 : 한자에 주의)을 보여 준다. 마침내 1871년부터 1873년까지 파리에서 10살 연상의 시인 뽈 베를렌느(Verlaine)를 '꼬셔서' 부인까지 버리게 만들면서 런던과 브뤼셀로 '애정 도피 행각'을 벌이다가, 급기야는 베를렌느가 쏜 총알에 맞는 사태로 '파경'을 맞는다. 짐 모리슨의 경우(1953년생)도 만만치 않다. 해군 제독을 아버지로 둔 탓으로 유년기부터 여기저기를 전전했고, 도어스 시절에는 여기저기 '투어'를 다니면서 '과대망상적 음란 쇼'를 펼치다가 1969년 마이애미에서 체포되는 곤욕을 치렀다. 법률적으로 부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헤로인 중독자인 여자 친구 파멜라 커슨(Pamela Courson) 옆에서 '의문사'한 것도 드라마틱하기만 하다(사견 : 영화 <도어스> 최대의 '엽기'는 파멜라 역을 멕 라이언(Meg Ryan)에게 맡긴 것이다)

 

영화 <토탈 이클립스>에서 랭보로 분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가슴속에 커다란 불덩이 하나를 집어넣은 듯 '모든 감각의 무질서'를 기도한 이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아마도 은하수에서 상봉하여 랭보가 미리 만들어 놓은 '취한 배(Le Bateau Ivre)'를 타고 '다른 쪽으로 뚫고 나가고(Break on through<to the Other Side>)' 있을지 모르겠다. '모리슨이 죽지 않았고 랭보를 따라 아프리카로 갔다'고 믿는 팬들에 대해 모리슨이 "사람들은 이상해(People are Strange)"라고 툭 내뱉자, 랭보는 "지구에서의 삶은 '지옥에서 보낸 한 철(Une Saison en Enfer)'이었어"라고 맞장구치고 있을지도.

그런데 이들은 지구의 '다른 편(other side)'을 어떻게 보았던 것일까. 짐 모리슨이 "죽은 인디언의 영혼이 나를 사로잡고 있다"고 말하면서 '전기 무당(electric shaman)'을 자처했던 일은 애교로 봐줄 수 있는데, 랭보가 말년에 "열악한 환경과 싸우면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여러 무역상사에서 일했다"는 사실은 좀 꺼림칙하다. 특히나 나 같은 '제 3세계 민중'에게는. 게다가 랭보의 비즈니스는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무기상(武器商) 아니었는가. 그것도 제국주의 열강의 팽창 전략의 절정기에 말이다. 순수한 영혼이 현실의 제약에 구속당하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아무튼 오늘의 번외 경기를 마치고 다음 번에는 아프리카의 영웅들을 찾아가 보자.  

다음 호에는 나이지리아의 전설적 음악인 펠라 쿠티(Fela Kuti)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인터넷 서점 Yes24에서 발행하는 웹진 <Bookian>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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