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 ICONS:
|
||||
|
||||
1980년대 중반 오노 요꼬가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찾았을 때 그녀를 찾아와 말을 건네려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남자는 두 가지 색으로 콧수염을 기른 '히피 같은' 모습이었다. 몇 마디 말을 나눈 뒤 그가 돌아가자 오노 요꼬는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고, 주위에 있던 사람은 "그는 존 레논입니다. 지금 현 시점에서 유일하게 그 사람만이 아르헨티나인입니다(He is John Lennon, only he is an Argentine now)"라고 대답했다. '아르헨티나의 존 레논'도 아니고 '존 레논 그 자체(?)'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튼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대략 상상할 수 있다. 존 레논이라는 단어가 '팝 스타이면서 정신적 지도자'라는 의미라면 말이다. 그의 이름은 찰리 가르시아(Charly Garcia)였고, 짐작할 수 있듯 아르헨티나 록의 선구자다. 록 스타가 '유일하게 아르헨티나인'인 상황은 이 나라에서 록 음악이 존중받던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아르헨티나의 록 음악은 'rock nacional'이라고 불린다. 위에서 영어로 쓴 'national rock'의 스페인어 표기다. 그렇지만 단지 직역해 가지고는 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그건 다름 아니라 '록 나찌오날'이 1976년부터 1983년까지 '군부독재 시기'라는 역사적 배경 하에서 탄생하고 발전했기 때문이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이 시기는 1982년의 이른바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가 영국에 패전하고, 그 여파로 외채가 산더미처럼 불어나서 결국 경제적 후진국으로 전락해 버린 시기다.
찰리 가르시아(1951년생: 본명은 Carlos Alberto Garcia Moreno)의 표면적 경력은 록 뮤지션의 통상적 경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청소년 시절부터 그룹을 결성하여 음악을 시작하고, 1970년대 초에는 니또 메스뜨레(Nito Mestre)와 함께 어쿠스틱 듀오 수이 제네리스(Sui Generis)라는 듀오로 활동했다. 그 뒤 1978년부터 1982년부터 세루 히란(Seru Giran)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리더로 활동했다. 1982년 이후에는 솔로 아티스트로서 경력을 이어갔고, 1987년의 <Parte de la Religion>은 그의 최고작으로 평가받는다. 이듬해에는 국제사면 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가 주최한 세계 순회공연의 마지막 무대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연에서 피터 게이브리얼(Peter Gabriel), 스팅(Sting),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등 당시 영미 최고의 팝 스타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는 식의 소개. 이런 소개는 그의 음악 활동의 이면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매우 피상적이다. 무엇보다도 찰리 가르시아는 아르헨티나의 군부 정권이 집권한 바로 그 기간 동안 세루 히란을 이끌면서 '대중이 운집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당시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음유시인이자 '월드 디바'인 메르체데스 소사(Mercedes Sosa)마저 공연장에서 체포되고(1975년의 일이다), 급기야 1979년에는 국외로 추방당할 정도로 험악한 시기였다. 소사를 포함하여 이 시기에 정치적 이유로 '형사처벌'당한 사람은 무려 10,000명에 육박했다. 이처럼 정치적 행동을 위한 전통적 공간이 사라진 시기에 록 공연은 아르헨티나의 청년들이 정치화되는 공간을 제공해 준 것이다. 1980년 12월 세루 히란의 공연이 열린 빨레르모에는 무려 60,000명의 청중이 운집했다. 가르시아는 "그들은 내게 큰 상처를 주었고 아무도 그걸 설명해주지 않아 / 내가 그들을 죽일 수 있다면 아무런 두려움 없이 그렇게 할 텐데"("Canterville Ghost")라는 비장한 다짐부터 "가끔 곤경이 있지만 그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지"("Confesiones de Invierno")라는 따뜻한 위로에 이르기까지 많은 송가들을 만들고 연주했다. 이 곡들은 젊은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기타를 치면서 함께 부르는 곡이 되었다.
군부 정권이 물러나고 아르헨티나가 정상적 국가가 된 뒤 찰리 가르시아의 삶은 비교적 평탄해 보이고, 1990년대에도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5년에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MTV 언플러그드(MTV Unplugged) 무대에 서는 등 국제적 명망도 어느 정도 쌓아가고 있다. 이건 물론 영미권 록 스타들 중 할 만한 사람은 다 한 다음에 '이런 건 어떨까'라는 MTV측의 계산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도 찰리 가르시아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이제 시스템의 일부고 그건 그리 좋은 게 아니다. 시스템이 나를 먹어치우지 않나 늘 감시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나는 시스템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스폰서 없이 조그만 장소에서 연주할 것이다". 실제로 1990년 전국적 슈퍼스타로서는 이례적으로 '길거리 콘서트'를 개최하여 연인원 100.000명 이상을 불러모은 걸 보면 그저 허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20011201 1992년 재결성된 세루 히란의 모습(출처: http://orbita.starmedia.com/~nataliosnm/aguante14.jpg) P.S. 1. 1990년대 이후 찰리 가르씨아의 작업 중 특기해둘 것은, 1992년 팬들의 요구에 따라 세루 히란을 재결성하여 전국 투어를 한 것, 그리고 1997년에는 메르체데스 소사와 공작 앨범 [Mercedes Sosa Canta a Charly Garcia]을 발표한 것 등이다. 2. 논리적 근거가 희박한 이야기지만 록 음악은 온대 지역의 나라에서 꽃피우는 것 같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열대 지방에 전파된 록 음악은 그곳에 미리 존재하던 음악과 섞여서 '제 3의 무엇'이 되는 반면, 온대 지방에 가면 '국민적 록(national rock)'이 된다. 지난 번에 보았듯 꾸바의 쏭고(songo)나 브라질의 뜨로삐까이즈무(tropicalismo)에도 '비틀스와 밥 딜런의 영향'을 느낄 수 있지만, 이들이 음악을 '꾸바 록'이나 '브라질 록'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물론 온대 지역이라고 해서 다 그런 건 아니다. 경제적으로 웬만큼 먹고 살만 해야 하고, 문화적으로도 미국 대중문화에 개방되어 있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이런 조건을 충족한다고 해도 대개의 경우는 '소수의 서양물 먹은 애들이나 즐기는 호사스러운 음악'이 된다. 그런데 간혹은 '국민적 예술양식'이나 '반체제적인 저항음악'으로 존중받는 경우도 있다. 꽃 피운 정도가 아니라 외부인이 보기에는 경직되다 싶을 정도로 '존중'을 받았다는 뜻이다. 상황과 조건은 많이 다르지만 지난 번 소개했던 (구)소련 및 동유럽권이 그랬고, 오늘 소개한 아르헨티나도 이 점에서는 비슷한 것 같다. * 인터넷 서점 Yes24에서 발행하는 웹진 <Bookian>에 게재됨. |
포클랜드 전쟁(아르헨티나에게는 '말비나스 전쟁')은 찰리
가르시아에게 아이러닉한 효과를 주었다. 포클랜드 전쟁을 비판한 찰리 가르시아의 노래 등 다수의 곡들은 방송금지 판정을 받았지만, 여타의 록
나찌오날은 주류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다름 아니라 영국과 전쟁을 치르면서 군부정권이 '적국의 언어를 가사로
가진 음악'의 방송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록 음악의 주류 돌파보다는 패전으로 인한 국민적 자긍심의 상실이 더욱 컸을지도
모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