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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틀 정보화 시대에서 문화예술의 창조란?

1. 정보화, 기록, 복제

이 글은 문화예술의 창조에서 정보화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주된 검토 대상
으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정보화가 초래하고 있는 전반적인 문화적 형세에 대해
고려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정보, 정보화란 무엇인가?

정보화는 무엇이라고 개념을 정의하기 이전에 이미 현실이다. 개념의 보다 정확한 정
의는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단, 그 앞에 '디지틀'이라는 수식
어를 붙이는 것이 현재 전개되고 있는 현실을 이해하는 데 보다 편리해 보인다. 논란은
있겠지만 좁은 의미에서 정보화는 곧 디지틀화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다. '정보화=디지
틀화'라는 현상은 사회구조 전반에 거시적으로, 개인의 일상생활에 미시적으로 넓고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화'라는 범주가 생활양식을 지칭한다면 디지틀은 이미 기술
이 아니라 문화(가 되었)다. 올해 초 각 일간지의 '밀레니엄 특집'을 보면 하나같이 21세
기의 문화를 '디지틀 문화'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담론은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인 듯하다.  

이제는 당연하게 들리지만 디지틀 문화는 컴퓨터와 연관된 테크놀로지의 발전, 그리고
인터넷 등 새로운 미디어의 발전의 산물이다. 또 이를 통해 창조된 가상 공간
(cyberspace)이 새로운 문화적 장(場)으로 탄생했다. 이를 통해 '모든 것'이 정보가 되었
고 사이버공간에서 순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변화가 발생했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그 결과가 어떤 것일지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합의도 이루어져 있지 않아 보인
다. 지금으로서는 디지틀 문화의 속성에 대해서 몇 가지 확인된 논점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인데, 이는 대략 1) 양방향성, 2) 하이퍼텍스트, 3) 멀티미디어로 요약된다.

이 세 가지 특징은 디지틀 이전의 문화와의 대비를 통해 '새로움'을 부여받는다. 먼저
양방향성은 이전의 메시지 전달의 '일방향성'과 대비되며, 하이퍼텍스트는 텍스트의 '독립
성(혹은 완결성)'과 대비되며, 멀티미디어는 이전 미디어의 '단일감각성'과 대비된다. 요약
하면 디지틀 문화는 양방향적 소통과 상호연관된 텍스트의 그물망을 통해 복합감각을
탄생시킨다. 이른바 'N세대'들은 이런 난해한 용어들을 몰라도 웹 서핑을 통해 이를 자
유자재로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인터넷이나 PC통신에 들어가서 본래 찾으려고 의도했
던 정보를 찾으려다가 샛길로 새는 일은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제기할 질문이 있다. 이 모든 문화적 형세가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자동적 효과라고 보면 그만일까? '기술결정론'은 디지틀 시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모든
반론을 잠재웠는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정도다. 다소 방어적
이지만 '테크놀로지=원인, 문화=결과'라는 이분법이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은 여전히 유효
하다. 디지틀 테크놀로지가 개발되기 이전에 이를 필연화시킨 문화적 실천이 실존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실천은 '기록과 복제'라는 말로 집약될 수 있을 것
이다. 디지틀화는 기록과 복제라는 문화적 실천의 현단계의 주소를 말해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기록과 복제의 대상이 아날로그 시대처럼

'본래의 원본(original text)'이 아니라 특정한 포맷으로 저장된 '정보'가 되었다. 따라서 정보화를 다시
정의할 수 있다. 정보화는 '디지틀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모든 것을 정보로 만드는 과
정'이며, 이는 '기록과 복제의 최종적 완성'을 내포한다.  

이제 문제에 보다 가까이 접근해 보자. '모든 것의 정보화'라는 현실에서 우리가 예술
이라고 부르는 대상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기록과 복제가 '예술'이라고 불리지 않는
영역에서 실천될 때 우리는 '편리함'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 반면 그 대상이 '예술'인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예를 들어 인터넷의 어떤 사이트에서 그림이 삽입된 문서를 발
견했다고 하자. 이를 스캐너로 정밀검사(scan) 한 뒤 정보로 만들어진 파일로 저장(save)
하고, 이를 프린터를 통해 인쇄(print)하는 일련의 과정을 상상해 보자. 이 작업의 결과물
에 대해서 우리는 '좋다'라는 감탄사를 던질 뿐이다. 그 의미는 '아날로그 복사기로 복제
한 것보다 좋다'는 뜻일 것이다. 이 경우 원본과 복제본의 차이가 없을뿐더러 원본 자체
가 큰 의미가 없다. 만약 컴퓨터 작업으로 편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기 취
향에 맞게 '원본보다 더 좋게' 만들 수도 있다. 디지틀 복제로 인해 또다른 판본(version)
을 만드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현대 정보 시대의 디지틀 복제는 1)
주체의 적극적 개입, 2) 의사소통의 양방향성, 3) 미디어 복합"이라는 한 학자의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리하면, 디지틀 복제는 원본을 똑같이 모사하는 것(이
른바 '단순 복제')를 넘어 원본을 가공하고 변형하는 과정을 동반한다(이른바 '복합 복
제').

그런데 동일한 작업의 대상이 보통의 문서가 아니라 특정인이 창작한 작품이라면 문
제는 달라진다. 원본과 똑같이 복제할 수는 있어도 저자의 허락이 없다면 '이래도 되는
가'라는 생각을 머리 속에서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가공과 변형을 거친다고 해서 문제
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디지틀 복제 시대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은 음악, 그 중에서도 대중음악의 경우를 주된 예로 들어 설
명할 것이다. 그것은 디지틀 정보 시대에서 예술창작의 변화를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 대
중음악계라는 자의적 판단 때문이다.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장르의 예술에
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는 믿음도 작용한다.

2. 테크놀로지의 양면성

음악에서 디지틀 테크놀로지의 보급은 1982년 전자 악기 간의 통신 규격인
MIDI(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의 체결을 중요한 기점으로 한다. 이를 통
해 음악 역시도 순수한 정보가 되는 단계에 접어들었고, 그 결과 '작곡'이라는 예술적 과
정과 '정보 처리'라는 공학적 작업도 통합되었다. 악기음이나 노래를 파트별로 레코딩(기
록)하고 이를 컴퓨터의 기억장치에 그대로 '저장'한 다음 이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믹싱'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디지틀 레코딩은 아날로그 시기의 멀티트랙 레코딩
(multitrack recording)이라는 실천을 전제로 하지만 이제는 테이프를 낭비하면서 레코딩
할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최근에는 장비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집에서 하드 디스크 레코
딩 및 에디팅(hard disc recording & editing)을 할 수도 있다. 음악의 생산과정은 근본
적으로 변했다. 이제 음악의 창작은 컴퓨터가 만든 가상 공간 속에서 운동하는 음의 정
보들을 잘라 붙이고 배열하는 작업이 된다. 배열을 통해 만들어지는 조합의 '경우의 수'
는 무한대이고, 우리가 컴팩트 디스크나 테이프로 듣는 음은 무한한 조합들 중 하나일
뿐이다. '창작자'는 포획(capture)하고 여과(filter)하는 사람이다.

이상의 설명은 '잠재적 가능성'을 논한 것에 그친다. 현실은 어떠한가. 견해는 극단적
으로 갈린다. 한 극단에는 '누구나 음악을 창작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고, 다른 극단에
는 '복제를 통한 모방만 난무한다'는 주장이 있다. 각 주장에 대해 검토하는 식으로 논의
를 이어보자.

전자의 주장은 '누구나 손쉽게 작사·작곡을 할 수 있다'는 말로 시작하고, 'PC 통신
이나 인터넷 등에 이를 등록·게시하여 다운로드받을 수 있게 한다'는 말로 이어진다.
조금 더 과장을 보태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무너진다'는 주장도 등장한다. 실제는
어떠한가? PC통신이나 인터넷 서버를 찾으면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만든 창작곡들이 특
정한 파일의 포맷으로 등록된 사이트가 개설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 등록된 아마추어
들의 '민주적' 음악들 대부분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기성의 음악들
에 비하면 형식이나 스타일은 유사하고 질적 수준은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취미 활
동'으로서는 좋은 방편이겠지만 예술적 수준을 논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는 이들이 사
용하는 음원(이른바 '샘플')이나 소프트웨어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적잖이 기인한
다. 디지틀 문화의 '민주화'는 특정한 규격 속에서만 이루어지고 이는 대부분 '하향 평준
화'를 낳는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다.. 따라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사라지는
일은 먼 미래의 꿈으로 보인다. 드물게는 독창적인 창작품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도 PC 통신을 통해 이름과 음악을 알린 뒤 앨범 발매나 방송 출연 등 전통적 방법
으로 성공하려는 목적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힙합 뮤지션 조 PD같은 경우 정식으
로 음반을 발매하기 전 PC 통신을 통해 음악 파일을 배급한 뒤 여기서의 인기를 바탕으
로 스타가 된 경우다. 뉴 미디어는 아직 '올드' 미디어에 종속되어 있다.

그렇다면 후자의 주장은? 디지틀 복제를 통한 합리화가 '복제를 통한 모방만 범람한
다'고 주장하려면 아마추어들의 음악 뿐만 아니라 프로페셔널의 음악에서도 동질화 경향
이 확인되어야 한다. 또한 특히 힙합(hip-hop)이나 테크노(techno) 같이 테크놀로지에 절
대적으로 의존하는 음악 장르에서 동질화의 정도가 심하다는 결론이 도출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디지틀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정도가 많은 음악 장르일수록
음악적·예술적 질(quality)의 편차가 더 심하다. 일정한 연주력과 가창력이 뒷받침되어
야 했던 이전의(노동집약적?) 음악 장르와는 달리 테크놀로지에 의존하는(기술집약적?)
음악 장르에서는 노골적인 표절부터 전위적 실험에 이르는 넓은 스펙트럼의 작품이 존
재한다. 아이러닉한 점은 노골적인 표절 뿐만 아니라 창조적 실험조차도 정보로 이루어
진 음원들을 채집, 가공, 변형, 포획하는 과정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전위적 실험의 경우
에도 일정한 규격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규격으로부터 벗어나는 실천도 규격을 전제로
이루어지고, 규격을 벗어난 운동은 새로운 규격으로 만들어진다. 탈규격화와 재규격화의
무한한 운동.

3. 테크놀로지의 문화화/미학화

디지틀 테크놀로지에 의존하여 생산된 예술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앞서 사용
했던 '음악적 질', '예술적 질'이란 표현은 모호하고 관습적이다. '초월적 자율성', '내용과
형식의 완결성' 등의 고전적 예술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발상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대안은?
앞서 묘사했던 디지틀 정보 시대 음악 창작과정의 특징으로 돌아가 보자. 창작자는 무
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정보들이 부단히 운동하는 과정을 제어하
는 존재다. 이 과정은 특정한 규격을 전제로 하는 과정이지만 우발적이고 예측불가능한
변이가 발생할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어서 때로 규격을 벗어난다. 제어는 결코 완벽하지
않고 포획은 잠정적이다. 때로는 의도되지 않은 '실수'가 창작의 중요한 소재가 되고, 때
로는 고의적 실수를 통해 영감을 얻기도 한다. 사전에 의도한 대로 작품을 완성하는 일
은 없고 결과는 과정에 종속된다. 어쩌면 예술 창작은 본래부터 그랬던 것 아닐까. 디지
틀 테크놀로지 덕택에 그 사실을 보다 상세히 알게 되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디지틀 시대에서 예술의 가치는 작가의 의도에 의해 선험적으로 판단되는 것
이 아니라 실제의 수용 과정에서 '실증'된다. 이는 테크놀로지를 '얼마나' 사용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는가의 문제다. 한 예를 들어 1999년 한국에서 테크노 음
악은 이정현같은 '테크노 가수'나 독일의 테크노 그룹 666 등으로 표상되었다. 그렇지만
PC통신에 소속된 테크노 음악 동호회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이들에 대한 언급조차 없
다. '

수준이 낮다'는 지적은 이들의 음악에서 테크놀로지의 사용이 이미 정해진 규격(3분
짜리 가요 혹은 팝송)에 맞게 '짜깁기'되었다는 판단에 기초한다. 디지틀 시대의 감성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디지틀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복제를 통해 창조된 작품'
에 대해서도 미학적 위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이 위계는 사전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작과 수용 과정의 문화적 특징으로부터 파생된다. 마지막으로 제기할 질
문이 남았다. 모든 위계는 수직적이고 따라서 민주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4. 디지틀 시대 예술창작의 '합리화'와 '민주화'  

이제까지의 분석을 정리한다면 이제까지 암묵적으로 전제했던 질문, 즉. '디지틀 테크
놀로지의 도입에 의해 예술이 얼마나 변화했는가'라는 질문은 역의 질문에 의해 보완될
필요가 있다. 즉, '테크놀로지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대한 관념은 왜 변하지 않는
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이는 또한 예술과 테크놀로지를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한 풀
리지 않을 질문들이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요약한다면 디지틀 테크놀로지의 발전 그리고 만물의 정보화라는
현실에서 모든 운동은 합리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모순된 축을 가진다고 잠정적으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더 많은 축을 설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문화예술의
영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합리화에 대해서는 문화적 생산의 영역에 자본주의적 논리가
투영된 것이라는 오래된 지적이 있다. 기능적 효율성을 목적으로 하는 합리화가 규격화
를 통해 문화생산물을 동질화시킨다는 지적이다. 이런 지적은 규격화를 벗어나는 길도
테크놀로지 자체에 내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방적이다.

반면 그 반대의 낭만적 시각도 존재한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자본주의적 기업의 통
제를 벗어나 문화의 민주화를 촉진시키는 수단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테크놀로지의 중
립성을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테크놀로지의 내재적 속성보다는 테크놀로지의 사회적 사
용에 보다 주목한다. 이런 주장은 대체로 '테크놀로지의 하위문화적 사용'이라는 제안으
로 귀결된다. 하지만 이런 주장 역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지배적 사용이 문화의 범속화
를 초래하는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결국 디지틀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정보화 시대의 예술 창작은 합리화와 민주화라는
모순된 경향에 늘 직면하게 될 것이다. 예술가란 본래 그런 것 아니었을까? 하지만 정도
의 문제는 있다. 디지틀 시대에는 예술가의 재능 가운데 이런 모순을 다루는 능력을 특
별히 부각시킬 것이다. 작은 실천에 지나지 않지만 앞으로는 여러 가지 워드 프로세서
프로그램을 번갈아가며 사용할 예정이다.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상이한 소프트웨어
를 사용하면 느낌(이걸 계속 '아우라'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다)도 상이해진다. 스캐
너나 프린터도 마찬가지고, 웹 브라우저도 마찬가지다. 그렇게라도 해보지 않은 사람에
게 디지틀 문화의 양방향성, 하이퍼텍스트성, 멀티미디어성 등은 '아날로그 서적'에 나와
있는 문자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너무 자주 바꾸면 '컨텐츠'에 소홀해지고 정신만 산만
해진다. 디지틀 세상은 다루어야 할 모순이 많아지는 세상이다.

* [문예진흥]에 게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