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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여기서 록의 신화는 가능한가(3): 록 매니아에서 가요 평론가로 '전락'하려는 자의 육필 수기

1. 이제 마지막으로 록의 신화를 들춰보며

위 제목을 보면서 "또야! 이제 그만 하지"라고 할 필자의 '팬들'이 얼마나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번이 삼세판 마지막이다. 다시는 "록 음악은 어쩌구 저쩌구..." 이런 글은 정녕 쓰고 싶지 않다.

지난 번 [이다] 원고의 말미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었다. 1호를 구입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하여, 혹은 구입했지만 서가에서 책을 꺼내어 다시 들춰보기가 번거로운 독자를 위해 인용해 보자. 자기 글을 자기가 인용한다니, 참 남사스럽군...

"대중음악의 많은 스타일 중에서 록 음악을 굳이 특권화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적어도 현재까지 대중음악의 역사를 반추할 때 록 음악이 상대적으로 경험과 투쟁의 장을 가장 많이 개방했다는 판단에서 연유한다"주 1) 또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새로이 등장할 [대중음악의] 게릴라도 록과 전혀 무관한 스타일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ROCK ON!"주 2)

1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아직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누가 물어본다면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뭐 그건 그때 생각이고, 지금은 글쎄 어쩌구"하면서 횡설수설할 것 같다. 그렇지만 글쟁이 자존심에 그때의 주장을 "잘못되었다. 마음 깊이 반성한다"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렇지만 듣기 좋은 소리도 한두번이지 여러번 들으면 질리듯, 이제 "록 음악은....."이라는 말은 식상할 대로 식상한 상태다. 누가? 듣는 사람은 물론이고 말하는 사람도 그렇다.

서두의 문투가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점에 양해를 구한다. 아마도 최근의 필자의 심정을 가급적 여과없이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이미 엎질러진 물. 지금부터 마음을 추스리고 논의를 시작하도록 하자. 참, 서론에서 글의 내용을 친절하게 순서대로 소개하는 관행은 무시한다.
거창하게 스타일 파괴의 실험이라고 나불거릴 의도는 없다. 그냥 지금 여기서 분출하는 욕망을 노트북 컴퓨터라는 기계로 투여할 뿐이다. 아니, 나와 컴퓨터가 하나의 기계장치들이 되어 다형적이고 도착적인  욕망들을 생산한다.  

2. '팝 대(對) 록의 이분법'의 종언을 위해

필자는 록 담론의 한 논객으로 알려져 있다. 나의 뜨악한 눈초리와 험악한 인상이 두려워서인지 나를 보고 '가요평론가'라고 부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중음악 평론가' 아니면 '록 평론가'라는 조금 고상한 명칭을 붙여주는 그들의 호의에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그런데 요즘 내가 체감하는 것은 록 음악의 체험과 록 음악에 관한 담론 사이의 괴리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록 담론은 다 쓸모 없으니 록 평론가들은 집에가서 애나 봐라'라는 시건방진 주장을 하기 위해 복선을 까는 것은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용어겠지만 기왕 말이 나온 김에 갈데까지 가보자. '록 음악 매니아'라는 기성 군단의 세력은 여전하다. 그런데 '록 담론 매니아'라는 신예 군단이 등장하고 있는 듯하다. 중복도 있고 이동도 있지만 일단 유효한 구분이라고 가정해 보자. 전자는 후자를 두고 '음악을 음악으로 안 듣는다'고 비난하고, 후자는 전자를 두고 '음악을 무슨 종교처럼 숭배한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이 두 집단 모두 평론가들을 경멸한다. 평론가는 이들을 경멸하지 않지만.  

양자 모두로부터 경멸받는, 그렇지만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허황된 노력을 하고 있는 나같이 섬약한 사람은 분열증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자문이나  인터뷰나 원고청탁 등을 부탁하기 위해 필자에게 걸려오는 전화의 내용은 대체로 두 부류다. '과연 록이 저항의 음악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다는 부탁이 한 부류를 이룬다면, 다른 한 부류는 '이번에 나온 음악(주로 록 음악)이 어떤 문화적 트렌드를 나타내느냐'라는 질의가 또하나의 부류를 이룬다.

두 가지 부류는 주제의 차이라기 보다는 소재의 차이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과감히 양분한다면, 전자가 록 음악이 정치투쟁에 동참할 수 있는가라는 민원이라면, 후자는 날이 갈수록 위세를 더해가는 '대중문화'의 흐름을 짚어달라는 민원이다. 정치투쟁과 대중문화. 두 단어의 앞에는 '혁명적'과 '상업적'이라는 이제는 고루해진 두 형용사가 자연스럽게 붙어다닌다. 나는 이를 조화시킬 능력이 없음을 솔직하게 고백해야겠다. 단지,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용기를 접어두고 해묵은 주제를 다시 한 번 들고 나와야겠다.  해묵은 주제란 다름 아니라 '팝 대(對) 록의 이분법'이다.

지난 번 필자는 팝과 록을 칼로 두부 자르듯 이분했던 '록 평론의 아버지들'에 칼이 녹슨 것 같다고 시비를 걸었다. 반응이야 썰렁했지만, 여러군데서 베껴가면서 그럴 듯한 논지를 펴기 위해 애썼던 기억은 있다. 오늘 그 논의를 반복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때 놓쳤던 논점을 하나 추가할 뿐이다. 그것은 이제 이론적 담론으로는 더 이상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고 있지만 점차 대중적 논의로 확장되어 가고 있는 섹슈얼리티 혹은 성 정치라는 논점이다. 단순무식하게 말하면, 팝 대 록의 이분법은 남성우월주의의 소산이다. 복잡한 설명을 하기 전에 한 PC통신 동호회에 올라온 다음과 같은 글을 보자.

[9908] 제목 : 일부 X같은 메탈에 대한 생각
올린이 : myotis  (이형근  )    97/01/06 04:06    읽음 : 201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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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근숭상
인종차별
상업주의
촌스러움
                                  Mutant Music for Mutant AGe

전부가 그렇다는건 물론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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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신중하게 토를 달아놓았지만, 록 음악의 애호가가 록 음악의 일부(이자 한국에서는 중심)에 대해 가지는 나쁜 감정은 꽤 강렬해 보인다. 그런데 '일부 X같은 메탈'에 대한 이런 비판은 '록 음악 전부'라고 바꿔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위에 촌철살인한 단어들에 먹물을 묻혀 보면 록 음악은 남성우월주의,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고 음반사에 의해 저당잡혀 있는 음악에 불과하다.  이 구분에 의하면, 팝 음악은 '여자애들(계집애들이라는 표현이 더 적나라할까?)'이 듣는 음악, 정확히 말하면 철딱서니없는 여자애들을 홀리기 위해 조작적으로 만들어진 음악이다. 반면 록 음악은 생각있고 사려깊은 '중산층-백인-남성-청년'이 즐기는 음악이다.주 3) 따지고 보면 록 음악을 표현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들인 '젊음', '폭발', '저항'이라든가 '야생의 파워', '직접적 에너지', '화려한 테크닉' 이런 말들도 모두 '남성'의 기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주 4)

뒷북치면서 다시금 강조했던 논점을 포함하여 우리는 요즘 록의 추한 이면을 자주 느끼게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록의 역사는 '빙자'의 역사인 것처럼 보인다. 청년 반항을 빙자한 밀리언 셀링, 여성해방을 빙자한 남성지배, 인종화합을 빙자한 백인우월주의, 계급 투쟁을 빙자한 계급제도 유지, 진보를 빙자한 현상유지...

실제로 팝을 절대적 타자로 삼은 록 담론은 '록 앨범은 소모품인 팝 싱글과 달리 소장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되고 앨범 레코드는 전기.전자산업의 소프트웨어가 되어 이 산업이 현대의 첨단 산업이 되게 하는 데 충실히 복무해 왔다. 한 미디어가 레코드(비닐, 테이프, CD)라는 상품형태를 취하여 개인의 소유물이 되어야만 직성이 풀리게 만든 예술형태는 음악이 선두주자였다. 영화도, 미술도 이렇게는 못했다.

이제까지 쓴 글의 논조나 내용을 '그렇지만 록은 이런 추한 이면을 넘어서 다시 한 번 날개를 펼칠 것이다. 록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라는 드라마틱한 결론의 전주곡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실제로 이런 술수는 국내외의 많은 노장 록 평론가들의 클리셰이다. 어느 정도 최근 논의도 유연하게 수용할 태도를 갖추고 있다는 듯한 연막을 펼치면서 '그래도 록은...'이라는 주장을 하는 글 말이다. 지난 호에 [이다]에 실린 글을 포함하여 지난 3년(길게 보아 5년) 동안 내가 썼던 글도 그런 클리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나로서는 '완전히 단절하지는 못했다'라고 표현하고 싶지만, 중요한 건 나의 의도라기 보다는 효과이다.

달리 말하면 나는 록 담론의 전장에 참여하면서부터 줄곧 위기에 처해 왔다. 이 글은 그동안, 특히 한 1년 전부터 나를 덮쳤던 정신적 충격과 그로 인해 초래된 정신적 공황을 덤덤하게 소개하고 있는 중이다. 단, 사운드를 들으면서 받았던 충격보다는 담론을 접하면서 받았던 충격을 중심으로. 왜? 그나마 그게 내가 잘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에.

3. 록 평론에서 팝 평론으로: 사이먼 프리스의 '변절'에 나를 투사하여  

지난 번에 주에서 언급했지만, 필자가 속한 음악비평동인 alt.virus 의 이론적 지주는 사이먼 프리스(Simon Frith)라는 영국의 록 평론가/아카데미션이었다. 그는 청년기에 캘리포니아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록의 정치를 체험한 인물이고, 필자같은 사람이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면서 동일화하기 딱 좋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국내에도 번역된 Sound Effect(국역 : [사운드의 힘], 한나래, 1995)라는 책에서 피력된 그의 견해를 방금 말한 '노장 평론가들의 클리셰'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격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는 여기저기 저널에 썼던 '잡문'을 모아놓은 평론집 [쾌락을 위한 음악 Music For Pleasure]의 [서문]에서 "이제 나는 록의 시대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정말로 확신한다"주 5)라느니, "록 음악은...테크놀로지와 자본에 의해 진부하게 되어 버린 음악 만드는 방법을 보존하려는 최후의 낭만적 시도였다"주 6)라느니 '반항의 언어는 현금계산기의 언어가 되었다"주7)는 말을 서슴지 않고 있었다.  필자에게 이런 발언은 '망발'로 보였고, '나이 들면 별 수 없어'라는 편리한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다음과 같은 결정적인 언급이 있었다.

"60년대 말에는 '록'이 상찬의 단어였다. 록은 진지하고 강력한 음악을 '상업적 쓰레기'와 정형화된 사운드와 구별짓는 용어였다. [반면] 지금(80년대 중후반)은 '팝'이 상찬의 단어가 되었고, 날카롭고 똑똑한 사운드를 '록의 쓰레기(rockist rubbish)와 판에 박힌 둔중함과 구별짓는 용어가 되었다"주 8)

공부를 '직업'으로 택한 이래 이렇게 뒤통수맞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이번도 장난이 아닌 수준이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래 내가 잘못했다. 나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었는데 그때는 눈에 뭐가 씌었나보다'라는 식으로 말하면 그걸로 끝날 일이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는 '비상업적 음악이 대량생산될 수 있다는 60년대의 환상'에 대해 '꿈깨자'라는 식의 충고를 하고 있지만, "재미를 위한 투쟁들은 계속된다"주 9)

나는 프리스의 언급들 중에서 선정적인 부분만을 전후 맥락을 거두절미하고 발췌했다. 극단적으로 가고 싶어 하는 나의 고약한 취미 때문이다. 그의 언급들 중에는 이와는 다른 방향의 언급들도 있고 어쩌면 위 인용들은 그의 진의의 핵심이 아닐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창 시절 알튀세르를 읽은 나로서는 유일하게 '올바른' 독해가 없다는 관념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이제는 록 음악의 4/4 비트만큼이나 고색창연한 표현이 되어 버렸지만, 그의 글은 '징후적'이다(그나마 10년 전의 얘기다).

프리스의 주장은 "록이 '다르다'는 신념, 즉 여타의 대량생산된 음악의 형태에 비해 신선한 것을 듣는 것이라는 신념"을 일부 포기하고 "록을 팝의 일반적 역사 속에 재흡수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에 대한 독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말을 '록은 죽었고, 팝은 영원하다. 팝 만세!'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이런 견해는 극단으로 탈주하다가 자멸한 꼴이고 '록은 죽지 않는다'는 말 만큼이나 경직된 이데올로기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잠시 나의 일상생활로 우회해 보자. 내 '후배들' 중에는 그의 책을 읽고나서 나의 '정신적 지도교수'의 진의를 질문하곤 했다. 나는 공식 석상에서는 다소 폼을 잡고서 '어떤 일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진 사람은 애정의 대상을 파괴하고픈 충동을 동시에 느낀다'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1980년에 있었던 자신의 스캔들에 대한 알튀세르 스스로의 설명을 도를 완화시켜 프리스의 케이스에 적용하든가, '우리가 자세히 알 수 없는 그곳의 상황적, 정세적 맥락이 있을 것이다'라는 사회학적 설명을 덧붙이든가 하면서 슬슬 궁지를 피해나갔다. 물론 그런 논의를 우리 상황에 무매개적으로 적용하면 엉뚱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충고 비슷한 논평도 점잖게 덧붙여서...

그런데 "재미를 위한 투쟁들은 지속된다"는 참으로 멋진 문장, 그래서 어떤 젊은 평론가/학자가 통신 ID의 자기소개에도 붙인 이 문장의 함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그 투쟁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의 '정신적 지도교수'는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럴 때 나의 처세는 '학자의 관조주의' 운운하면서 그 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다소 강박적으로 다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짐의 강도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미미했다. 그의 두 책, 즉 [사운드 이펙트]와 [쾌락을 위한 음악]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였다. 이 쌍둥이 폭탄을 맞고 나는 휘청휘청 비틀비틀거려야 했다. 참 한심한 일이다. 10년도 넘은 글을 읽고 이제서야 충격을 받다니.

순진하게 '믿습니다' 하다가 '속았잖아'하는 수준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나는 이전부터 그의 글에서 '헛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했었다. 직접 말하기는 좀 뭣하지만 [이다] 1호에 실린 글을 차근차근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래서 그의 분석이 참 '공자님 말씀'이지만, 영국인 특유의, 또 사회학 특유의 '보어링(boring)'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즉, 실제 음악을 경험하는 것과 음악을 지식으로 접근하는 것 사이의 괴리 비슷한 감정이 내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어차피 경험과 담론은 차원이 다른 문제 아닐까... 나는 다시 미궁에 빠져들어야 했다. 비담론적인 것과 담론적인 것 사이의 이분도 문제지만, 양자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개념을 확보하지 못한 나에게 딜레마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록과 팝의 구분을 '상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는 록 음악을 통해 성장기를 보낸 나의 인성, 그래서 기타와 베이스와 드럼 사운드에 깊이 담구면서 주물러지고 빚어진  나의 인성을 비추어 볼 때, 이는 살을 에는 아픔이 아닐 수 없다.

3. 들뢰즈.가타리를 팝 음악의 영토로! : 로렌스 그로스버그와 사이먼 레이놀스

그러던 차에 나는 박사학위 논문을 '써야 되나 말아야 되나'라고 고민하다가 '에이 부모님 살아계실 제 효도하지' 하는 마음으로 논문 준비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나서 '음악산업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주제, 내가 현 상황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그렇지만 경제학과에서는 '빠꾸'맞을지 모를 주제를 선정했고, 오랫동안 익숙해진 관행대로 올해 초부터 세미나팀을 하나 굴리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로렌스 그로스버그(Lawrence Grossberg)라는 평론가/학자와 해후하게 되었다. 그는 지난 번 [이다]에 기고한 원고의 참고문헌에도 올라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정독하지도 않은 채 대충 '그로스버그는 록 비관론자이다'라는 세간의 풍문에 기초해서 여기저기 뒤져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게 웬 떡. 책의 2부를 직접 읽어보니, 그리고 나의 뺀질뺀질하면서도 성실한 후배 필호가 발제해 온 1부를 보니, 그는 한때 나의 '전공'이었던 스튜어트 홀 등의 (포스트)맑스주의적 문화연구와 들뢰즈.가타리의 포스트구조주의적 사상을 접속시키고 있는 것 아닌가. 내용 이해는 둘째 치더라도 글을 술술 읽어나가는 것은 누워서 죽먹기였다. 그러면서 구성체, 접합, 헤게모니 등의 맑스주의의 용어와 기계, 배치, 영토, 탈주 등의 들뢰즈주의(?) 용어가 '잘' 결합되어 있는가를 검토하는 시건방도 떨 수 있었다.

록은 단지 음악 스타일이 아니라 특수한 "역사적 구성체"라느니 "영토화 기계"라느니라는 그로스버그의 표현은 여기서 간단히 요약.설명해 봐야 모르는 사람은 '무슨 소리야'라고 볼멘소리를 할 것이고, 아는 사람은 용어만 들어도 척 감이 오는 얘기겠지만, 그래도 그가 이루어 놓은 록 음악의 문화정치적 효과에 대해서 불친절하게 후닥닥 짚어 보는 게 그러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그에 의하면 록 음악은 일상생활을 '영토화하는 기계(territirializing machine)'다. 이때 기계란 우리가 알고 있는 기계가 아니라 생산적으로 작동하는 장치, 즉 들뢰즈.가타리의 기계다. 즉, 록 음악은 일상생활에 안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때로 일상으로부터 탈주하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자신의 영토화기계 내부에서 치환할 뿐이라는 것이다. 히피들이 '진정한 아메리카'를 발견한답시고 어머니 대지(Mother Earth)를 찾아다니거나, 펑크족들이 모드 걸 다 부정한다고 했지만 기껏해야 '영국의' 무정부상태를 바라거나 '여왕'을 비야냥거리는 걸로 그쳤듯이...주 10)

그런데 나는 정작 들뢰즈.가타리가 음악에 대해 쓴 글이 있다는 것을 오래 전에 알았으면서도 그 졸린 클래식 음악이 이것저것 거례되는 그 쥐약같은 글을 읽다가는 포기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또 주위에 들뢰즈의 무비판적 매니아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심정적 반발도 한몫 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도 되는 지 모르겠지만, 역시 한 살 연하의 후배(이번에는 한국인 후배)의 거의 강권에 가까운 권유 때문에 '들뢰즈.가타리의 사운드의 정치'를 주제로 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형밖에 할 사람이 없다"는 그의 말에 유혹된 것이 잘못이었다.

그렇지만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의외의 소득이 있었다. 하나는 음악과 삶을 다분히 분리시켜 생각했던 이제까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록 음악을 조금 더 거시적인 음악사적 관점에서 반추해야 한다는 '책무'를 떠안았다는 점이다. 들뢰즈.가타리가 리토르넬로(ritornello)라고 부른 "템포화(temporalization)의 기초를 이루는 리듬"주 11)

그 실마리는 최근에 어렵사리 구한, 아직 본문도 다 읽지 못한 책 [황홀 : 록의 환희 Blissed Out : The Raptures of Rock]주 12)의 저자인 사이먼 레이놀스(Simon Reynolds)라는 소장 록 평론가로부터 발견되었다. 그는 들뢰즈.가타리의 세례를 받은 분석으로 '록에 관해 말할 것은 그리 많지 않다주 13)'는 불가지론에 도전하고 나섰다.주 14)

그의 주장을 여기서 상세히 소개할 여유는 없다. 단지, 록 담론이 마치 "조직화된 종교처럼"(p.12) 작동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그의 상황 판단, 음악의 힘을 "비기호화하고 언어외부적인 요소들"(p.10)에서 찾는 그의 작업은 일단 내 '취향'이기 때문에 지켜볼 가치가 충분하다. 즉, 프리스나 그로스버그  등이 음반산업이나 미디어 분석에 치중했던 기존의 아카데믹한 분석을 탈피하고 음악의 '의미(meaning)'의 생산과 소비를 분석했다면, 레이놀스 등은 의미 이전의 신체적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70년대 이래 발생했던 록 음악과 록 담론 사이의 심연은 이제 록 담론 내부로 치환되고 있는 듯하다.

4. 국지적 진지함(local seriousness)를 위하여

나는 '음악평론'을 시작한 이래 일부의 음악 애호가들(이들은 이제 '매니아'라는 말을 싫어한다)로부터 줄기차게 씹혀 왔다. "음악을 음악으로 안 듣는다"라든가, "음악을 가슴으로 듣지 않고 머리로 듣는다"라든가, "음악을 쓸데없이 지식화한다"라든가, "음악을 정치적 저항의 도구로 사용한다"라든가 등의 그들의 강렬한 주장이었다. '먹물 이데올로기'에 의하면 그런 주장들은 대부분 '비논리적'이라서 나는 그런 주장들을 대부분 '무시'하면서 작업했다.
그렇지만 이 글만 하더라도 주로 문서화된 자료를 독해하는 나의 편력을 적은 것이다. 비난은 심해지면 심해졌지 약화될 것 같지는 않다. 나아가 나에게는 '본능적으로' 하위문화적 사회학, 정신분석적 가사 분석, 포스트모더니즘적 뮤직 비디오 분석이라면 눈에 불을 키고 책을 뒤지는 또하나의 병적인 버릇이 있다.

그런데 내 과대망상증이 도진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 여기에서 록 담론은 '대중 이데올로기'로 전화하고 있는 듯하다. 음악에 대해 말하고 글쓰는 일은 음악을 '과잉결정(overdetermination)'한다. 따라서 '록 담론은 무용한 것'이라는 주장 자체가 무용해져 버린 듯하다. 그 쓸 데 없는 록 담론을 만들어낸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는 식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제 그 록 담론은 위기를 맞이하고 있고, 과대망상에 피해망상까지 겹쳐서 나는 그 위기의 중앙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있는 듯한 느낌에 젖는다. 나는 이제 그 피해망상을 가해망상으로 전화시키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명하기 곤란한 처지를 이해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들의 도움을 너무도 필요로 하고 그들을 사랑하니까...

본인들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담론 전능론'으로만 들리는 글들의 주장은 이제는 국제적으로 시효만료된 상태이므로 새로운 도약을 필요로 하는 듯하다.또한 록 담론이 무용하다고 말하면서도 줄기차게 담론을 생산하고 있는 음악 전문지와 PC통신 동호회와 라디오 방송은  자신들이 록 담론으로부터 초연하다는 '가식'을 버려야 할 듯하다.

마치 위의 두가지 '편향'은 잘못된 것이고 나는 올바르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양비론'은 '단시론(單是論)'보다 열등하다. 나는 '제 3의 길'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팝에 관한 모든 담론은 올바르고 또 잘못된 것이다. 단지 스스로의 담론을 파괴하는 담론이 존재할 뿐이다. 끝을 향해 가는 담론의 '끝없는' 전개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적어도 내 판단으로는 지금 상황에서 록 담론으로부터 보편적 외양을 벗겨내고 국지적 진지성(local seriousness)를 확보해야 할 때가 왔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전국적 배포망을 가진 <<한겨레 21>> 등 중앙지에 기고한다고 가우잡으면서, 무언가 이루고 있다는 이전의 망상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할 듯하다. 그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칙칙한 관악구를 거점으로 무언가 하는 것이 훨씬 유효할 것이다. '한국 최고의 지성이 모였다'고 남들이 말하는(대부분은 비아냥과 더불어) 대학교의 기묘한 '청년' 하위문화와 세계 최대의 여관 밀집지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야릇한 '성인' 하위문화가 공존하는 이 지역에서 '사운드의 정치'를 기획하는 것이.

앞서 언급했던 그로스버그는 "국지적으로 행동하고 지구적으로 사고하라 Act Locally, Think Globally"라고 제안했다.주 15) 나도 그래야겠다.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직 아래로부터 이루어진 일이 거의 없다. 그리고 주로 '외국 것'을 듣고 읽은 내가 과연 '우리 것'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나는 큰 자신이 없다. 만약 몇 년 동안 해도 도저히 안 된다고 판단되면 바다 건너 떠나 버릴 것 같다. 기완이나 필호처럼... 그렇지만 아직은 아니다.

 

1) 신현준(1996), "지금 록의 신화는 가능한가", [이다], 창간호.

2) Ibid.

3) 거꾸로 말하면, 그리고 좀 심하게 말하면 팝은 노동계급이나, 깜둥이들이나, 그러고 보면 '록의 시대'는 팝의 역사에서 매우 드문 '남성의 반란'으로 보인다. 폴 앵카와 클리프 리처드에 미쳐 날뛰던 이들은 대부분 여자애들이었고,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에 뿅간 것도 거지반 여자애들이었다.

4) 먼 예를 들 것도 없이 한국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여성 '록 뮤지션'이나 '록 나같이 페미니즘 이론이라고는 '페'자도 모르는 사람도 이 정도면 심각하게 재고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본능적 애정은 점차 식어간다.

5) S.Frith(1988), Music for Pleasure : Essays in the Sociology of Pop

6) Ibid.

7) Ibid.

8) S.Frith(1988), p.4.

9) Simon Frith, "Industrialization of music", in J.Lull ed.(1992), Popular는 결론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10) 물론 싸이키델릭과 펑크의 경우는 좀 다른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다.  

11) F.Guattari(1979),  L'incinscient machinique : Essai de Schizo-analysis,은 단지 음악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우리의 '생활 리듬'을 규정한다. 또 그 리토르넬로는 소리만이 아니라 색채, 냄새, 시선, 동작 등까지 확대 적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의 생각은 아직은 시론적이고 초보적이다. 이 생각이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는가는 아직 미지수이다. 아마도 그 사이에 사운드는 또 어디론가 흘러가 버릴 것이다.

12) S.Reynolds(1990), Blissed Out : The Raptures of Rock, Serpent's Tail.

13) S.Frith(1988), p.1에서 재인용.

14)  물론 그의 분석이 전적으로 들뢰즈.가타리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서문에서 그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엘렝 시수(H len  CIxous), 심지어 비트겐슈타인과 바타이유까지 자신의 사유의 사유의 원천이라고 밝히고 있다. 1963년 생인 레이놀스는 <<모니터Monitor>>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80년대 초중반부터 일관된 주장을 펼쳤고, <<멜로디 메이커 Melody Maker>>의 정규 기고자이기도 하다.

15) L.Grossberg(1992), p.393.

 

* 무크지 <이다>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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