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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를 위한 투쟁, 그리고 인디를 둘러싼 투쟁

1990년대 중반 경부터 대중문화계의 전위들의 화두는 '인디'라는 단어로 통일되었다. 1998년부터 개최
되기 시작한 '독립예술제'를 포함하여 '인디'나 '독립'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크고 작은 페스티벌이 여러
차례 개최되었다. 직업 탓인지 인디라는 수사가 가장 많이 사용된 장르는 음악 분야로 보인다. 다른
장르에서는 주류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정신이 덜떨어졌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음악 분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명시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진단일 뿐이다. '인디 음악'은 이제 특정
한 공간을 떠올리면서 '장르처럼' 사용되고 있고, 자우림, 크라잉 넛, 델리 스파이스를 비롯한 인디 출
신의 밴드들은 주류 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런데 제 얼굴에 침뱉는 격이지만 이미 수년 간의 시행착오를 겪은 현재 인디 음악 '운동'의 성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는 말이 들려온다. 1998년 수십 종(업계 용어로는 '따블')의 인디 음반이 발표되
었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긴 음반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이와 더불어 인디 음악의 유일한 산실인
라이브 클럽들도 오랫 동안 누적된 경영 상의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작년 말에는 인디 음악계의
맏형격되는 언니네 이발관과 노이즈가든같은 밴드가 해체되거나 멤버 탈퇴의 내홍을 겪고 있다는 소
식도 전해 들었다. 이 동네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던 이라면 좀 심난해 할 소식이다. 이들 말고라도
현재 인디 음악계에 속한 음악인들은 '열성적 소수를 제외하면 무관심한 다수'의 대중 앞에서 좀 지쳐
보인다.

이런 말을 꺼내면 "아, 방송사-기획사-도매상'의 삼각편대로 짜여진 '가요계'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
하려고 열을 올리려는구나"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권위적 방송산업, 추악한 음반산업,
복마전같은 유통구조 등의 원색적 용어를 동원하여 '음악산업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일은 오늘
은 피하자. '시스템이 개판이다'라고 말하면 스트레스야 좀 풀리겠지만, 그곳 관계자들도 나름의 이유
('먹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 테니 시비걸기도 뭐하다.

이럴 때 '원점으로 돌아가보자'는 제안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왜 인디인가'
라는 질문을 다시 한번 제기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처음에 인디 레이블을 만들던 무렵 '주류의 획
일적 문화에 대한 대안'이라는 수사가 붙었다. 주류 문화는 위로부터, 강요된, 상업적인 문화라면, 인디
문화는 아래로부터, 자발적인, 비상업적인 문화라는 것이 인디의 출발점이었다. 이런 말이 어렵다면 주
류는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라면 인디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외국에서 전달된
DIY(Do It Yourself)라는 수사도 한몫했다.

문제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작사, 작곡, 연주는 물론이고, 레코
딩과 믹싱같은 기술적 과정, 음반의 홍보와 판매까지도 스스로 하는 것은 무리로 보인다. 이 중에서
레코딩 과정은 소속 레이블과 분담할 수 있고, 홍보와 판매는 (소속 레이블에) 전담시킬 수 있지만 어
쨌든 새로운 시장을 '뚫어야 한다'는 사정은 변함이 없다. 이른바 '대박'이 아니라면 주류 시장으로부터
빼앗아 올 부분은 거의 없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에는 현재 음반시장은 전반적 불황에 빠져 있다.
또 '대학생'들은 H.O.T.와 핑클에 대체로 만족해 하는 것 같다. 운때가 안 좋은 셈이다. 안 되려나 보
다. 잘 되는 곳은 어떨까.

작년 말 흥행에 실패한 페스티벌을 조직했을 때 심(Seam)이라는 미국의 인디 밴드를 초청한 일이 있
다. 말이 초청이지 비행기 티켓 정도만 끊어주고 개런티도 주지 않은 채 데리고 왔다. 밴드 멤버  세
명이 한국계 미국인(이른바 '교포')이라서 '아버지의 나라'를 방문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우리의 경제적
부담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e-메일로 의견을 나누면서 복잡한 입국 절차를 처리해야 했을 때는 번거
롭다는 생각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막상 입국한 그들을 수행하면서 대화를 나눈 것은
내게는 좋은 경험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겸손했다. 한국에서 '컬트'의 대상인 사람들 치고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겸손했
다. 이야기 끝에 구체적인 질문도 했는데, 그들의 음반은 생각보다 많이 팔리지 않았다. 한 앨범의 판
매고가 '겨우' 2만장 수준이니까. 그런데도 '홍보비'가 들지 않으니까 이 정도라도 인디 음악계에서는
'대박'이란다. 그렇지만 '로컬 히어로'라고 해도 멤버들은 모두 부업을 가지고 있으며, 여가 시간에 작
곡과 연습을 하고, 공연은 주말을 이용하여 다닌다고 했다. R.E.M.이나 스매싱 펌킨스 등 '한때 얼터
너티브 밴드였고 지금은 메이저 밴드가 된 존재들'에 대한 견해를 물었더니 별다른 원망도, 질투도 없
었다. 자기들은 '앨범 당 50만 장 이상 팔아야 하는' 메이저 음반사의 속박을 받지 않고 그냥 하고 싶
은 음악을 조건에 맞게 할 뿐이라고 말했다. 공연 당일 연주도 훌륭했지만 나는 특히 판자 위에 기타
이펙트 몇 개를 붙여 만든 걸 보고 DIY가 무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다녀간 뒤 나는 한동안 국내 밴드들의 '인디 정신(혹은 헝그리 정신?)의 부재 혹은 부족'에 대
해 투덜댔다. 전업 뮤지션도 아닌 주제에 빈둥대고 있거나, (같은 말이지만) 다른 직업을 갖고 음악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지적이 주된 것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한국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회'
에서 직업을 갖고 음악을 부업으로 하는 일은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대기업이 지배하는 경
제'에서 안정적인 '중소 인디'의 기업문화의 가능성도 제한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시스템이 상이한 지
역에서  활동하는 밴드를 전범으로 삼는 일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라고 정리했다.  

그래서 한번은 '주류 시스템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인디'는 한국에서는 환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
다. 차라리 '주류에 한 발 걸치고 있으면서도 나름의 영역을 확보하는' 씬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TV에 얼굴 내밀지 않고도 음반을 팔아서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씬 말이다. 이걸
뭐라고 부를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게 있었냐고 묻는다면 1980년대 중반 파란을 일으
킨 들국화, 시인과 촌장, 어떤 날, 한영애 등의 이름을 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재의 인디 음악
계는 이런 '전통'에 주목하기에는 영미 팝의 트렌드를 '따라하는' 일에 더 익숙해 보여서 이런 생각도
치워두었다. 어쩌면 이런 생각 자체가 노스탤지어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르고,...

그런데 어쨌든 반가운 일이 생겼다. '정서적으로 인디 밴드'인 델리 스파이스가 시인과 촌장의 음반 작
업에 참여하고 공연도 같이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게 요즘 유행하는 말로 시너지(synergy)가 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하더라도.

* 월간 [Art]에 게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