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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에서 '한국적인 것'이란 참 오묘하고 신기한 것.

  나같은 아저씨의 눈에 이제 막 청소년기를 벗어난 대학생 또래의 '요즘 애들'은 햄버거와 '후라이드' 치킨은 잘 먹어도 된장찌개나 고추장은 못 먹을 것 같다. 맥주나 양주는 마셔도  동동주와 막걸리는 못 마실 줄로만 알았다. 바나나와 파인애플은 좋아해도 사과와 밤은 안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결론: 엄마 젖 먹고 자란 30대 이상의 세대가 '소젖'과 외제 이유식을 먹고 자란 세대와 같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현상도 종종 목격한다. 맵고 얼큰한 찌개 냄비를 앞에 놓고 숫가락을 넣었다 빼었다 하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기란 어렵지 않다. 머리를 형형색색으로 염색하고 몸매는 늘씬해도 말이다. 나이가 들면 다 그렇게 되는 걸까. 물론 '나이가 든다'는 말은 자연적 성장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오래 살았다는 의미다.

  무슨 '신토불이'같은 주장이 이어질 것만 같다. 신토불이? 전혀 얼토당토하지 않은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세상이 그렇게 단순명쾌할 리는 없다. 어쩌면 신토불이라는 말이 강조되는 것 자체가 몸(身)과 땅(土)이 분리되는 조짐이 관찰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약한다면 신토불이라는 말을 굳이 농산물과 먹거리에만 한정하지 않고 문화 전반에 적용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이 말은 70-80년대 유행했던 '문화 제국주의 이론(the theory of cultural imperialism)'과 긴밀해 보인다. "미국 중심의 다국적 연예산업에 의해 대량생산되는 문화적 형식이 토착의 문화 형식을 침식한다"는 주장 말이다. '현실의 하나의 단면'을 지적하는 말로는 지당하다. 문제는 그것이 총체적 이론이 되었을 때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문화제국주의론( 신토불이론)은 다국적 연예산업이 생산하는 문화는 '허위의' 것이며, 토착의 문화는 '진정한(authenticity)' 것임을 전제하고 있다. 이렇게 추론하면 헐리우드 영화는 가짜고, 판소리는 진짜다. 팝송은 가짜고,

  서편제는 진짜다. 그런가? 나같은 사람에게 판소리는 헐리우드 영화보다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이 말이 좀 과장으로 들린다면  영화 [서편제]를 볼 때의 느낌은 [아마데우스]를 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어떤 경우는 '제국주의 본국'으로부터 수입된 문화가 토착의 문화보다 진보적 의미를 띨 때도 있다. 1970년대 한국에서 포크송이 아메리칸 포크에 절대적으로 영향받은 것이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포크송은 트로트와 '신민요'가 지배적이던 당시의 주류 대중음악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포크송이 '1970년대 청년의 저항정신의 표현'이라는 말은 여기저기서 '지겹게' 들려온다. 참 아이러니다. 록 음악도 마찬가지다. 신중현은 오늘날에는 '한국 록의 대부'라는 영예로운 호칭으로 불리지만, 1970년대만 해도 '퇴폐적인 양키 문화의 첨병' 정도로 인식되었다. 최근 그는 "요즘 젊은 음악인들이 우리 대중음악의 성과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다"라고 '불평'한 바 있다.  
반면 '토착의', '전통적' 문화는 기성세대의 완고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사전검열을 통해 '외국으로부터의 영향'을 차단하고자 했던 박정희 정권 이래의 문화정책의 참담한 결과는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바이다. 많은 '전통' 예술은 권력과의 인적 유착을 통해 '관제문화'가 된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래서 '한국적인 것이란 잘하든 못하든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지, 오래 전부터 정형화된 형식들을 작위적으로 불러오는 것이 아니다'는 주장에 반대하기 힘들다.

  한 가지 더. 문화 제국주의론은 '국민 대 국민(nation vs nation)'의 패러다임이다. 제국주의 대 식민지, 중심 대 주변, 중추 대 위성 등등의 구분은 국민국가라는 단위를 전제하는 셈이다. 쉽게 말하면 외국(남의 것) 대 자국(우리 것)의 구도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래의 지구화(globalization) 과정은 사고의 전환을 요한다. 국민국가가 가까운 시일 내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국민국가의 통합력이 예전같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 결과 국민 문화(national culture)라든가 국민적 정체성(national identity)을 동질적으로 간주해 온 사고의 관습에도 변화가 오고 있다.

  요는 국민적인 것이란 '글로벌 속에서의 로컬(local in the global)'의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적이라는 '로컬리티'는 지구화라는 문화적 과정이 한국이라는 시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백의민족, 배달민족 어쩌구 하는 식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로컬리티의 양상은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 국경을 넘는 자본의 이동과 노동력의 이동('이민')이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온 나라(주로 '선진국')에 비해 한국(및 동아시아)의 시공간에서는 아직은 노동력의 이동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게다가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아직도 완고해 보인다(내게 '단일민족'이라는 단어는 문화적 차이를 불용하겠다는 파시즘적 협박으로 들린다).

  불행히도 이런 문화적 폐쇄성은 취향의 획일성을 낳고 있다. 게다가 양면적이다. 형식적 폐쇄성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내줄 거 다 내주는 행태 말이다. 일본 문화는 개방되기도 전에 이미 다 들어와 있는 상태다. 게다가 '일본 문화'라는 걸 동질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도 여전하다. 아이돌 스타(이제 '연로'했나?) 아무로 나미에의 음악과 실험적 밴드 피쉬만스(Fishmans)의 음악이 '같은 사운드'로 들리는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획일적인 사고방식에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한국 문화에서 필요한 것은 '토종'이 아니라 잡종(hybrid)이다. 솔직히 말해서 '정통' 메탈, '정통' 인디, '정통' 테크노, '정통' 힙합만 인정하는 취향도 흥미없다. 그런데 혹시 주류 댄스가요도 잡종 아니냐고? 잡종에도 질이 있다. 문제는 그걸 가려내는 것이다.

  그래서 별 기대는 안 하지만 문화정책 담당자에게 이런 바램은 있다. 전통을 현대화시켜서 자생력있고 '재미'있는 토종 문화의 토대를 육성하든가(예를 들어 인도), 아니면 외국 문화를 거부감없이 수용하여 선진국 문화를 따라잡을 인프러스트럭처를 조성하든가(예를 들어 일본). 한국은 이도 저도 아니다. 그래서 윤도현의 '한국적 록'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한참 결여한 듯하고, 델리 스파이스의 보편적인 '아트 팝(art pop)'에는 '로컬리티'의 함량이 다소 작아 보인다. 나는 양쪽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면서, 한쪽에는 '한참'이라는 부사를, 다른 쪽에는 '다소'라는 부사를 사용했다. 나는 이런 취향을 가진 '한국인'이다. 거기에는 나의 세대, 성별, 계급, 지역 등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한국인인가. '우리는 하나'라는 답변이 나오지 말기를 바란다. 이는 물론 해결이 아닌 출발이다.

* <경희대 대학원 신문>에 게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