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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겹치기의 계절
봄이 지나가고 여름에 접어들면서 여기저기서 음악 공연 소식이 들려 온다. '공연이야 늘 있는 것'이고 또 '가는 사람만 가는 것'이긴 하지만 대형 공연이나 '의미있는' 공연 몇 개가 관심을 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일정이 겹친다.
먼저 5월의 마지막 주말인 27일 한영애, 이은미, 이상은 등 여성 뮤지션들이 후배들과 한 무대에 서는 [여악여락(女樂女樂)] 페스티벌이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리는데, 같은 날과 그 다음 날에는 올림픽 공원 88잔디마당에서 'SBS 포크 페스티벌 2000'이 열린다. 후자가 조금 더 '어덜트' 취향이겠지만 [여악여락]도 '완전 애들 취향'은 아니라서 낀 세대들은 갈등할 만하다. 게다가 27일은 마침 일본의 세계적인 테크노 DJ인 켄 이시이가 압구정동 클럽에서 파티를 주재한다(스팟 광고 봤죠?)
하지만 피크는 한 주 뒤인 6월 첫 번째 주말이다. 3일과 4일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자유 2000]이 개최된다. 들국화, 조용필, 김창환 등 베테랑 로커들이 황병기, 강태환, 타악 그룹 푸리, 김용우 등 '대중' 음악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예술인들도 함께 한다. 또 크라잉 너트와 닥터코어 911 등 인디 밴드들 일부도 참여한다. 그런데 하루 전인 6월 2일에는 장충체육관에서 '인디 록 페스티벌'이 있다. 코코아, 허벅지, 마이 앤트 메리 등 '일반인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는 나름대로 컬트'인 젊은 밴드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인디에도 위계질서가 생기나 보다.
페스티벌이나 합동 공연만 있는 게 아니다. 6월 2일과 3일에는 '성공한 인디 밴드' 중 하나인 델리 스파이스가 단독 공연을 갖는다. 지난 봄 연강홀을 광란의 도가니탕으로 만든 여세를 몰아 드디어 예술의 전당으로 진출한다. 조동진, 시인과 촌장 등 베테랑들의 컴백 공연을 성사시켰던 C기획사에서 추진하는 이 공연은 델리 스파이스 외에도 이현우와 Lee Oscar(리 오스카)가 다음 주(및 그 다음 주)를 장식한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3일과 4일에는 종로 5가 연강홀에서는 Seam의 단독공연도 잡혀 있다. Seam이 누구인가? 한국계인 박수영이 이끌고 한국계 멤버가 3명이 있는 미국의 인디 밴드 아닌가. 작년 말 내한하여 델리 스파이스의 3집에 수록된 두 곡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등 국내 인디 밴드와 정서적으로 친밀한 그들 아닌가. 이제는 경쟁하는 처지가 되었다.
한 주 걸러 하나씩만 해도 다 볼 수 있겠고, 매주 하나씩만 해도 둘 중 하나 정도는 볼 수 있으려만 6월 첫째 주말은 양자택일 정도가 아니라 사자택일(四者擇一)해야 하는 상황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중재위원회라도 하나쯤 있어야 하나. 아하, 알겠다. 6월초가 대목이구나. 길일(吉日)인지 아닌지는 점쟁이(아니, 운명 철학자)가 아니라서 알 수 없지만 이건 분명하다. 뭐냐 하면 대학생 애들이 기말고사를 앞두고 '요날까지만 놀고 공부하자'라고 마음먹는 때가 바로 이때쯤이다. 그러니까 이때 넘기면 그 다음 두 주는 완전 꽝이다. 6월 말에는 Rage against the Machine, Placebo 등 외국 밴드들의 공연 소식도 있으니(정확한 건 아닙니다), 이때 아니면 안된다고 판단했나보다. 한국식 중앙집권주의는 공연날짜 잡는 데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그래 맞아. 한국에서 공연은 대학생 애들 학사 일정에 잘 맞추어야 하고, 장마철 잘 피해야 되고, 직장인들 퇴근시간 이후로 맞춰야 돼. 이거 힘들어서 해먹겠나. 그래서 빨리빨리 '주 5일 근무제'가 실현되고, 입시교육은 폐지되어야 한다. 왜냐고? 격무에 시달려서 먹는 술값이랑 애들 잘되기 위해(잘 될까?) 강제로 시키는 학원비랑 때곡때곡 갖다 바쳐도 공연은 '어디 공짜표 좀 없나' 묻는 사람만 수두룩해서 해본 말이다. 맞다, 방송국의 '공짜 공연' 프로그램도 당장 사라져야 한다. 이거 뭐 거의 발악이군.
* MTV 코리아 웹진 <Mzine>(http://www.mtvkorea.co.kr)에 게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