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VIEW:
- 서태지를 소비하기
이 글이 지면에 나올 때 쯤이면 서태지의 새 음반이 이미 시중에 풀린 다음일 것이다. 더불어 조성모와 H.O.T의 음반도. 음반이 얼마 팔렸는가에 대한 '양'에 대한 결과도, 음반에 실린 음악의 '질'에 대한 여론도 일단락된 상태일 것이다. 그렇지만 마감 시한을 지키느라 음악을 전혀 들어보지 못하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야기거리'는 충분하다.
귀국하기 전까지 서태지는 '실체'가 없었기 때문에 말들은 그가 귀국한 8월 29일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내린 김포공항에서는 보도진과 팬들이 몰려왔는데, 기자들은 번듯한 사진 하나 못 찍었고 팬들은 아무도 서태지의 얼굴은 보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정문에 밴을 놓아서 사람들을 유인하고 뒷문에 놓여 있던 다른 차를 놓아 1분 만에 공항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마치 첩보영화에서나 보는 작전 같았다.
귀국 일자가 예정보다 앞당겨진 이유에 대해도 설왕설래가 많았다. 9월 9일 서태지의 공연을 독점 계약한 MBC가 서둘러 귀국하기를 요구했고, 그 이유는 MBC의 연예 프로그램이 타사보다 먼저 서태지의 소식을 보도하려는 보도경쟁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뮤직 비디오 촬영 일정에 맞추어 일찍 귀국했다는 설도 있고, 조성모나 H.O.T를 경계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물론 이 '설'들의 수명은 하루나 이틀을 넘기지 못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스포츠신문이나 연예 프로그램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하루에 하나 이상 서태지에 관한 새로운 소식을 내보내고 있다. 문제는 수준이다. 대부분은 추측과 억측이기 때문에. 의상 스타일, 노래 제목, 음반기획사 이름에서 "서태지는 일본 매니아"라고 단정하면서 서태지의 컴백을 '일본 문화 개방'과 연계짓는가하면, 서태지가 "신경성 위염에 시달린다"고 말하면서 이를 과거의 은퇴 이유와 연관짓는 기사도 있고, "미국 영주권자이다"라는 사실을 공연히 강조하는 기사도 있다. 두세 줄 자리 기사가 아니라 대문짝만한 타이틀을 가진 메인 기사들이다. 조성모와의 비교도 단골 메뉴다. 그렇지만 이것도 별 다르지 않다. "조성모가 서태지를 눌렀다!"는 기사 타이틀을 보고 유심히 기사를 읽어보면 "K2TV '연예가중계'(연출 박태호)에 따르면 지난 26일 방영분의 분당 시청률을 보면 '조성모 뮤직 비디오 파문'은 20.6%에 달한 데 비해 '서태지 귀국 소식'은 16%선에 그쳤다는 것"[스포츠 서울 8월 29일자]이다. '눌렀다'의 기준은 오직 '시청률' 뿐이었다.
따지고 보면 서태지는 근 5년만에 한국 땅에 돌아왔지만 그에 관한 이야기는 한 순간도 여기를 떠난 적이 없었다. 기억에서 사라질 듯하면 그의 '근황'이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 지면과 방송 화면을 장식했다. 그에 관한 소식은 늘 어딘가에서 흘러 나왔다. 어딘가에서 '흘린' 사실에 대해 '치밀하게 계산된 의도'라고 뜨악한 시선을 보낼 필요는 없다. 문제는 아주 조그만 공급에도 수요가 무한대로 팽창한다는 점이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한국에서 '가수'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스타로 뜨기 위해서는 TV에 나와서 열심히 몸을 흔들어 대야 하는 건 기본에 지나지 않는다. 음악과는 무관한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 나가서 퀴즈도 맞춰야 하고, 옷을 훌렁 벗고 수영도 해야 하고, 번지 점프도 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병영 체험'이나 '오지 탐험'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스타는 되고 싶지만 이런 생리가 싫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자기 자신을 철저히 비밀스럽게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태지는 모든 일을 '극비리에' 추진한다. 그때문에 우리가 서태지를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서태지와 우리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그는 점점 숭배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그의 개인적 삶에 대해, 그의 진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그가 하는 말이 정말인지 거짓말인지도 알 수 없다. 그는 한 명의 인간이라기 보다는 기호이자 상징이다. 사람들은 서태지라는 기호와 상징을 소비한다.
물론 이건 보통 사람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이런 일에 성공한 인물은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서태지는 그 중에서도 이런 관리를 가장 잘 한 인물이다.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 대가가 있다. 하지만 그는 대중 스타이기 때문에 '정말' 극비로 일을 추진할 수는 없다. 그래서 늘 정보는 흘러 나온다. 정보는 말이 되고, 말은 말을 만들고, 과장되고 부풀려지고 굴절되고 그리고는 소멸한다.
서태지의 음반이 정말 좋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상관없다. 조금은 담담하게 "음악 참 좋군"이라고 잔잔하게 감동하고 그칠 수 없는 분위기에서 음반이 좋다면 뭘 어떻게 할건가? 음반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 수억원이 소요되고, 그 중 10분의 1만 본전을 건지고 나머지는 폐기처분되는 시스템에서 '백만장 넘게 팔리는 1장의 음반'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개성과 다양성의 미덕 아래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꿈을 아직도 품고 있다면 '서태지'를 잊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의 음악이 아니라 공룡이 되어버린 서태지라는 기호와 상징을. 그런 꿈이 없다면 상관없지만.
* <우리교육>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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