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싸이(코), 저속함으로 엄숙과 가식을 비웃다 지난 7월 6일 서울 시내 모 여자대학교에서는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이하 '문화연대'로 약함)라는 시민단체의 주최로 공개토론회가 열렸다. '시민운동단체'가 '대학교'를 빌려서 개최하는 '토론회'로서는 이례적으로 주제는 '대중음악'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올해 발표된 싸이와 박진영의 음반에 대한 '외설 시비'가 토론의 핵심이었다. 본래 이 토론회는 당사자인 싸이와 박진영, 주최측인 문화연대 뿐만 아니라 '시비'를 건 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위원회(이하 '기륜실') 측에서도 참여할 예정이었다. 그렇지만 1주일 전쯤 기륜실 측에서 토론회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함으로써 토론회는 열띤 설전이 아니라 '성토대회' 비슷한 자리가 되어 버렸다. (싸이 역시 '일정 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토론회가 열리기까지 이전 사건의 진행 상황을 사실적으로 요약해 보자. 먼저 싸이의 경우 1월에 데뷔 음반 [싸이 프롬 더 싸이코 월드]를 발표한 이후 이 음반에 수록된 "새"라는 노래가 크게 히트했다. 그는 신인답지 않은 파격적인 매너와 발언으로 '기사거리'를 갈구하는 기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엽기'라는 단어, '파닥이춤'이라는 춤, "완전히 새됐어"라는 가사를 유행시켰을 뿐만 아니라 "판 틀려면 입이라도 제대로 맞춰라"고 립씽크를 공개적으로 반대하는가 하면(2001.2.24), "내년에 입대하겠다"(2001.3.2.), "2집 활동 후 은퇴한다"(2001.5.25)라는 등의 돌출 발언을 했다. 그를 "지적인 연예인"([스포츠서울], 2001.3.17). "현대판 혁명가"([스포츠서울], 2001.4.6)로 치켜세우는 신문 기사가 줄을 이었다. 5월 31일에는 서울의 명문 사립대학교에 일일 강사로 초빙되어 "대중문화의 상업적 시스템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화두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물론 승승장구하는 동시에 화도 있었다. 지난 1월 17일 이미 히트곡 "새"를 제외한 모든 곡이 방송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방송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기가 더욱 치솟자 앞서 소개한 기륜실이 나섰다. 5월 22일 싸이의 음반이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의해 '연소자 이용불가' 판정을 받은 것은 그 때문이다. 문제가 된 것은 음반 표지와 가사의 내용이었다.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재킷 속지에 남성의 성기, 콘돔, 여성의 속옷 사진 등을 수록한 것"과 "아이 러브 섹스", "놀아보자", "2세의 처", "불륜" 등의 곡에 있는 욕설과 음란한 내용이 '연소자에게 부적절하다'는 것이었다. 부차적이기는 하지만 "불쉿"("쇼킹! 양가집규수"), "놀지도 못하는 좆밥 이래"("놀아보자"), "빠구리뜨자 오빠야"("2세의 처") 등의 가사 표현이 '저속하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이미 20만 장이 팔린 음반에 대해 뒤늦게 심의가 이루어진 이유는 청소년보호위원회와 기륜실이 영상물등급위원회에 특별히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청소년보호위원회는 국무총리 직속기관이므로, 이 사안에 대해 영상물등급위원회는 긴급 소위원회를 열 수밖에 없었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설명하자면, '사전심의'로 악명 높았던 공연윤리위원회(이른바 '공륜')가 1996년 사전심의제도의 폐지와 더불어 이름을 바꾼 것이다.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라 '허가냐 금지냐'를 미리 심의하던 공륜의 기능이 사라지고 사후적으로 '등급'만을 판정하는 기능으로 대체되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음반 기획사측의 반응은 "재킷 디자인에 남성의 성기와 콘돔 등을 수록한 것은 '있는 그대로' 드러내자고 하는 싸이의 주장이자 앨범의 컨셉트"이며, "욕설이나 음란한 가사 내용은 이중적 도덕과 성적 엄숙주의를 비판하는 랩의 출생환경과 특성", "싸이의 정신은 위선을 증오하는 솔직과 자유"라는 등의 논리로 그 결정을 비난했다. 요약한다면 '청소년 유해'와 '표현의 자유' 사이의 논란인 셈이다. 현재 기륜실은 5월 24일 싸이의 음반 표지를 '전량 수거하여 파기할 것'과 '연소자 이용불가' 딱지를 붙여 재 발매할 것을 음반 제작사측에 요구한 상태다. 박진영, 섹스는 즐거운 놀이다 결국 6월 21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포함한 52개 단체가 "대중가요 음란저질화를 우려하는 시민사회단체 일동"의 명의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가 '음란 저질화'의 주범으로 지목한 대상은 바로 박진영이 최근 발표한 음반 [Game(놀이)]였다. '일동'은 이 음반의 판매 중지를 촉구했다. 문제가 되는 '해괴망측한' 부분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입맞추고 싶어"("방문에서 침대까지"), "흐름 속에 널 맡겨봐"("처음 만난 남자와") 등이었다. 이에 대해 29일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이하 '문화연대'로 약함) 등 33개 시민단체가 '일동'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는 "박진영의 노래는 물론 기륜실이 문제시했던 싸이의 노래에 대해서도 청소년의 들을 권리를 차단할 만큼 심각하거나 치명적이라고 보지 않는다"면서 "이는 사회적 공론과 합의 속에서 토론할 대상이지 억압하거나 근절시킬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성명서를 발단으로 앞서 말한 공개토론회 참석을 기륜실 측이 거부했다. 같은 날, 페미니스트 잡지 [If]에서는 양자의 입장을 모두 비판적으로 간주하는 '제 3의 입장'을 피력한다는 기사도 개제되었다. 박진영의 음반에 수록된 곡들에 대해
방송사들은 적게는 4곡, 많게는 6곡까지 방송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다.
그렇지만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는 이 음반의 '18세 이하 이용불가' 판정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뜨거운
감자'를 입에 넣고 삼킬 지 뱉을 지 고민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2001년의 상반기는 한반도를 타 들어가게 만든 가뭄만큼이나 섹스 '논쟁'으로
뜨거웠다. 대체 뭐가 문제인 것일까, 고민해 볼 만하다. 섹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는 보수적인가. 다만 그렇게만 보기 힘든 징후가 사실 여기저기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유교문화에 의해 성이 억압되어 온 전통이 아직도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반면, 접대부가 200만 명에 이르고 청소년 성 매매가 급증하는 등 이에 대한 '저항(?)'도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성에 대한 관점은 일방적으로 보수적인 것이 아니라 '이중적'이라거나 '가식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흥미로운 것은 현재의 보수적 성 윤리가 더 이상 '유교문화'라든가 '한국의 전통적 가치'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논쟁의 다른 편도 마찬가지라서, 양쪽 모두 '서양' 혹은 '미국'에 뿌리를 둔 윤리를 들고 나오고 있다. 한쪽은 '기독교 윤리'를 내세우고 있고, 다른 한쪽은 '랩 음악의 정신'을 내세우고 있다. 박진영의 경우 랩 음악이라기보다는 '흑인 음악 전반'의 특징을 띠고, 요즘은 랩이라는 용어보다는 힙합이라는 용어가 더 '쿨'하지만 논의의 편의를 위해 '랩'이라는 말로 총칭하자. 정리하면 기륜실의 입장은 기독교적 청교도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는 반면, 박진영과 싸이의 입장은 미국 흑인의 생존방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기독교'나 '랩 음악'이 낯선 외래 문화인지 아니면, 이미 충분히 토착화된 문화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1970-80년대처럼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외래 저질·퇴폐문화'라고 몰아붙이지 않는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게 한국인의 삶이나 문화가 이미 충분히 '미국화'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외래 문화를 토착화시키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기 때문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외래 문화'라고 무조건 죄악시했던 시대가 지나갔다는 점만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남는다. 최근 캐나다에 거주하는 한국인 신학자가 한국 기독교가 서양의 어떤 나라에서도 예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이상한 것이라고 주장했듯이, 한국의 랩 음악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기독교인의 삶이 서양인(주로 백인)들의 삶과 다른 점이 많듯이 한국에서 랩 음악을 즐기는 이들도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들의 삶과는 딴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에 대해서야 전문적으로 논할 위치에 있지 않으므로 랩·힙합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흑인 남자애들이 (돈이 없어서) 오래 입을 수 있다는 이유로 헐렁한 운동복('추리닝')을 입던 것'이 한국에 와서는 값비싼 패션 패드(fad)로 둔갑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기독교와 랩 음악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기독교도, 랩
음악도 서울 강남의 부유층에서 가장 꽃피우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곳의 가정에서는 일반적으로 친척 중 몇 명은 LA나 뉴욕에
거주하고 있고, 그들이 한국에 들를 때마다 친지들에게 미국 문화를
알게 모르게 전달했을 것이다. 방학이면 자녀들이 그곳에 놀러갔다 오는
일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며, 공부를 못하면 조기유학을 갔다
오면 될 일이다. 싸이 역시 버클리 음대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 득시글거리고 '동창회'가 존재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는 그 학교 말이다. 그리고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미국의 한인
사회에서 '교회'는 신앙의 공간이기 이전에 사교('사교 댄스'같은 용어와
같은 뜻이 아니다)의 공간이고 그곳을 거치지 않으면 자동차를 얻어
타기도 힘들다. 한국에서 '가수'의 꿈 결국 문제는 싸이나 박진영 등 미국의 '주류 문화'를 대변하는 가수들이, 이곳에서는 '가식적 성문화의 도전자', '성 해방의 전도사'처럼 둔갑하는 한국의 문화적 현실이다. 박진영이 이번 앨범의 홍보차 찍은 사진은 신체를 상품화하는 1980년대이래 여피 문화의 때늦은 수입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여성지 등에서 익히 볼 수 있는 잘 빠진 남자의 몸매 말이다. 건강과 능률을 지고의 가치로 삼고 몸매가 흐트러진 사람을 '자기관리를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는 성공의 윤리학이야말로 이들이 '몸으로 웅변하는 가치'다. 이들은 무엇으로 성공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을까. 이미 성공했지만 '가수로서의 성공'은 젊은 시절 한때인 한국의 현실에서 그것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래서 싸이는 자신의 꿈이 '음반 제작자'라고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한편 이 꿈을 이미 실현하여 '사단'까지 형성한 박진영은 자신의 꿈이 '시사평론가'라고 밝혔다([한겨레], 2001.6.15).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꿈이 있으니까 이걸 두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다. 문제는 이 말을 듣고 '같이 하자'라고 제의해 온 방송관계자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아아, 그들의 머리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 것일까. 같이 하자고 제의한 사람이나 '그런 제의가 많았다'는 사실을 밝히는 사람이나 오십보 백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못할 말이 없나 보다. 하긴 시쳇말로 말하는 데 돈 드는 건 아니니까.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했다'는 것만큼 당당한 것도 없고... 한국적 변종이긴 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이란 결국, 언제나 이런 식 아니었는가. * 추기: 이 글이 다수의 양심적 기독교인들이나 미국 거주 한인들에 대한 인신공격은 아님을 밝혀둡니다. * 계간 [황해문화]에 게재됨.
|
OVERVIEW:
앞화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