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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컴백한 '베테랑 그룹 사운드' 들국화에는 기타 연주자가 없다. 록 밴드에 기타 연주자가 없는 것은 '뭐 없는 뭐'와 똑같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들국화가 공연을 할 때면 사랑과 평화가 도와주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고 물을 것 같다. (좀 엉뚱하게 들렸을 것 같기는 하다) 왜냐하면 1970-80년대 대중음악의 팬이라면 들국화와 사랑과 평화의 음악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따라서 이들이 무대에 함께 선다는 것은 다소 의아한 일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언젠가 글을 쓰면서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의 그룹 사운드를 '캠퍼스 그룹 사운드'와 '밤무대 그룹 사운드'로 구분한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들국화는 전자에 가깝고 사랑과 평화는 후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오해를 줄이기 위해 부연하면, 이런 구분은 다른 두 유형의 밴드 사이에 우열을 가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밤무대 그룹 사운드'에 속하는 음악인들을 만나면 음악을 '직업'으로 해온 사람에게서 느끼는 어떤 신실함이 존재한다. 그에 비해 캠퍼스 그룹 사운드들이 대부분 '딜레탕트'에 지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니까. 들국화가 데뷔 앨범을 발표하기 전 이태원을 비롯하여 서울의 나이트클럽에서 '팝송'을 연주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그런 상업적이고 '구린' 곳에서 연주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보다는 '이들이 그토록 많은 라이브 공연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 저런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밤무대 그룹 사운드와 캠퍼스 그룹 사운드를 구분했던 처사(?)를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선입견을 주는 것 같아 이제는 '밤무대'라는 표현을 '직업적'으로 바꾸고자 한다. 실제로 1970년대 중반 대학교를 다니던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약간 늙수그레하고 초췌해 보이는 '악사'가 캠퍼스 그룹 사운드를 지도하기 위해 학교에 찾아오곤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1976-7년 경,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반세기 전 TV에 나오는 그룹 사운드들은 두 유형으로 선명히 구분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대마초 사건이 휘몰아친 다음 대중음악계가 무주공산이 된 다음이었다. 그 빈자리를 메운 가수들 대부분은 '작곡가 선생님' 휘하에 있었지만, 남자 가수들 중에는 '그룹 사운드 출신'이 적지 않았다. 트리퍼스 출신의 김훈, 히 식스 출신의 최헌, 양키스 출신의 함중아, 템페스트 출신의 장계현, 그리고 윤수일, 장욱조, 조경수 등등. 그러고 보면 한국에도 '그룹 사운드의 시대'가 있었다. 이미 사어가 되었으므로 이 단어가 일본에서 만들어졌는가 여부에 대한 시비는 접어 두자. 어쨌든 서양의 '록 밴드', '기타 밴드(guitar band)'의 동아시아 버전인 그룹 사운드는 정작 이 단어를 만들어낸 일본에서는 1960년대 후반 태동했다가 단명했지만, 한국에서는 1970년대 내내 붐을 이루었다. 신중현이 이끌었던 <그룹 사운드 연합회>라는 단체도 있었고, 빌린 체육관에서 <그룹 사운드 경연대회>라는 연례행사도 개최될 정도였으니까. 그렇지만 이들의 음악은 평론가 강헌이 '변종 트로트'라고 표현한 음악 이상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때 대학생의 전위였다면 이들의 음악을 '긴급조치 시대 대중의 의식을 마취시키는...'이라고 주장했을 것 같다. 하긴 나 같은 틴에이저가 듣기에도 그들의 음악에서는 '밤무대 냄새'가 풍겼다. 그곳을 '퇴폐적이고 향락적'이라고 못박았다기보다는 내가 살아가고 있던 세계와는 영 다른 세계로 보였다는 뜻이다. 그래서 1977년 한 방송국의 주최로 <대학가요제>가 개최되었을 때 거기에 '출전'한 그룹 사운드의 모습은 직업적 그룹 사운드와는 다르게 보였다. 비슷한 시기 산울림의 "아니 벌써"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을 때도 마찬가지의 느낌이었다. 그 이후의 스토리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가요제가 경쟁적으로 개최되었고, 그룹 사운드는 통기타 그룹과 더불어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그 중에서도 캠퍼스 그룹 사운드의 인기가 유난히 높았던 이유는 그들이 반드시 '어느 대학교 출신'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사가수'라는 존재가 예외적으로 취급받던 시대에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특별한 것이었다. 음반을 발표한 경우 캠퍼스 그룹 사운드와 직업적 그룹 사운드의 구분은 더욱 쉬웠다. 앨범 표지에 나온 인물이나 의상도 그렇지만 멤버를 소개하면서 '무슨 대학교, (심지어) 무슨 과, 몇 학년'이 적혀 있으면 캠퍼스 그룹 사운드였고, 그렇지 않으면 캠퍼스 그룹 사운드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캠퍼스 그룹 사운드라는 단어는 '대학생들이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문화적 용어임과 동시에 대중음악의 일반 팬들에게 '이 음악인들은 고학력 출신입니다'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한 마케팅 용어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정작 대학생 공동체 내부에서 그룹 사운드의 의미는 모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생 문화의 전위들이 추구했던 문화형식은 탈춤과 마당극 등 '전통문화', '민족문화', '민중문화'에 속하는 것들이었고, 따라서 이들에게 그룹 사운드는 '미국 물먹은 애들의 자기도취' 정도로 비춰졌다. 조금 더 심하게 얘기한다면 '부잣집 애들이 놀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정치적 폭압이라는 상황에서 "구름아 너는 어디로 가느냐 나는 달린다 파란 그곳으로"(블랙 테트라, "구름과 나")라는 '메시지'는 추상적이었고, 때로는 "오 그대여 한 마디만 해주고 떠나요 / 지금까지 나를 정말 사랑했다고"(피버스, "그대로 그렇게")같은 '사랑타령'까지 있었다. 드물게는 "탈춤"과 "불놀이야"같이 전통 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음악들도 존재했지만 한편으로는 '전기 기타로 그런 걸 한다고 전통의 계승이냐'라는 힐난을 받기도 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지금도 일부 대학교에는 남아 있지만 캠퍼스 그룹 사운드는 대학 당국으로부터 간접적 지원을 받는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1기, 2기, 식의 기수가 있거나 아니면 연도별로 기수를 매겼다. 이는 '특권'처럼 비쳐졌고, 무언가 '관제'라는 인상마저 주었다. 실제로 1981년 내가 다니던 서울의 한 대학교 축제에서는 그룹 사운드의 공연을 '저지'하기 위해 계란을 던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때 대학생들의 주장은 '관제 축제 거부'였다. (지나고 보니 그것도 그리 잘한 짓 같지는 않다) 캠퍼스 그룹 사운드가 영향을 미친 세대는 오히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10대로 자란 세대일 것이다. 그렇지만 영향력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앞에서 나는 '마케팅 용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 단어를 '나쁜' 뜻으로 이해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그룹 사운드는 제대로 마케팅되지 못해서 문제였다. 솔로 가수를 스타로 만드는 데는 어느 정도의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었지만 그룹 전체를 스타로 만드는 길은 그때까지 미개척상태였다. 1980년대 초 오버그라운드에서 성공을 거둔 송골매나 언더그라운드에서 파란을 일으킨 들국화가 아직도 그리워지는 것은 그 때문일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발매된 젊은 인디 밴드들의 음악에는 이때의 흔적이 담겨 있다. 노 브레인과 크라잉 넛같은 '펑크 록' 밴드나, 위퍼나 은희의 노을같은 '모던 록' 밴드들이 그렇다. 무의식적으로 남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추구한 흔적이 보인다. 이제 20살을 갓 넘긴 젊은이들이 그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래서 당시 그룹 사운드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을 만나 이것저것 물어보고 현재의 흐름과 다리를 놓고 싶은 욕망이 들 때가 있다. 실제로 몇 번은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때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꽤 있다. 왜일까? 추측이지만, '1980년대'라는 시기에 그들 역시 '최전선에 있던 사람들'과는 상이한 방식으로 아프고 쓰라린 체험을 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옥슨 80의 보컬이었던 홍서범이 저런 모습이 되어 있을 리가 없을 것 같다. * 웹진 <창작과 비평>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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