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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예술을 중심으로 다루는 잡지에 '대중' 문화계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은 대중문화에 '빌붙어 사는' 사람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이다. '대중문화계'라는 표현마저도 점잖은 편이다. 보통은 '연예계'라고 말하는 데 익숙하다. 연예계라는 곳은 '화려하면서도 지저분하다'는 양면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화려하다'는 이미지가 앞서는가 '지저분하다'는 이미지가 앞서는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래서인지 연예계는 늘 뜨겁고, '핫 이슈'를 준비해 놓고 있다. 그렇지만 2001년 여름처럼 뜨거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늘 다룰 주제는 연예계 중에서도 '가요계'의 이슈다. 6월이 박진영의 음반 [Game(놀이)]를 둘러싼 '섹스 논쟁'으로 뜨거웠다면 7월은 '연제협 사건'로 뜨겁다. 참고로 말하면, 연제협이란 연예인제작자협회의 줄임말이고, 한국에서 제작자란 '연예인 매니저'를 말한다. '사건'이란 연예인과 그들의 매니저들이 한 방송사의 보도에 항의하여 '출연 거부'라는 집단행동을 결행한 것이다. 진행과정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보도되었고, 이 글이 발행될 즈음이면 사건이 일단락되었을 지 모르지만 몇 가지만 추려서 정리해 보자. 연예제작자 대 MBC 사건의 절정은 7월 10일이었다. 서울 여의도의 63빌딩의 컨벤션 센터에서 기자회견이 열렸고, 주축은 김건모, 김현정, 디바, 문차일드, 박진영, 박지윤, 베이비복스, 샤크라, 샵(S#arp)신승훈, 신화, 유리상자, 유승준, 유엔(UN), 이지훈, 자두, 제이(J), 조성모, 지오디(g.o.d.), 캔, 컨츄리 꼬꼬, 캔(Can), 클레오, 클릭비 등(이상 가나다 순)의 가수들이었다. 인기가수들 가운데 올 사람은 다 온 셈이고, 몇몇 개그맨과 탤런트들도 참여했다. 120명의 연예인과 200여명의 매니저들이 한데 모이는 일은 그 자체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다. 단상 위에는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는
커다란 글자가 쓰여진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노예가 아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연예인들이 매니저들의 전횡에 반대하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자리라고 정반대로 이해할 지도 모를 문구였다. 강병규의 모습으로
인해 '연예인들도 스포츠 선수들처럼 무슨 이익단체를 구성하는구나'라고
오해가 더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상황은 정반대였다. 기자회견은
MBC의 시사 프로그램 [시사매거진 2580]이 6월 17일에 방영한 <한·일
비교, 연예인 대 매니저>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항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항의 주체인 연예인과 매니저들은 적어도 겉보기에는 한 마음으로
뭉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장면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 사건의 대립구도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위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 중에는 '연예인 매니저들이 무슨 폭력배같다'고 생각한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말하면 이들이 무슨 폭력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행동 양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진상이 어떤 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관심도 없다. 그에 반해 방송사측의 대응은 사회의 엘리트들이 속한 곳답게 '합리적 대응'을 유지했다는 것이 현 시점에서 지배적 여론으로 보인다. 실제로 사건의 진행을 지켜 보면 MBC의 차분한 대응과 연제협의 소란스러운 반응이 대조적이다. 사건은 7월 3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MBC의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가수 김건모가 1위 후보로 올랐다가 2위에 그치고 만 일이 사건의 하나의 발단이었다. 김건모는 "음반 판매량에서 훨씬 앞서는데 2위는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반발했고, 이 일로 인해 김건모는 자의반 타의반 이날 모임의 '주동 인물'처럼 되었다. 실제로 그렇다면 실소를 자아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7월 10일의 기자회견에서 김건모는 "밥 먹고 공부해야 하는데, 공부만 하라고 그러면 공부하기 싫어진다"는 비유를 사용하여 입을 열었는데, 어떤 상황을 표현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그래서인지 저 말이 끝난 뒤 "비유가 적절했는지 모르지만..."이라고 멋적게 말을 이었다. 게다가 가수이자 제작자인 박진영은 "불공정계약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일부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라고 말해서 내부 분열의 양상마저 보여주었다. 더군다나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가수와 연예인들이 '무슨 자리인 줄도 모르고 불려 나왔다'는 후문까지 나왔다. 연제협이 공식적으로 요구한 조건들도 '지나치게 무리한' 것이었다. "MBC의 간판 프로그램인 9시 뉴스데스크를 통해 공개 사과할 것"이라든가, "해당 프로그램을 연제협과 합의 하에 다시 제작하여 방송할 것"이라든가 "해당 담당자들을 징계할 것"이라는 요구는 일반 시민의 호응을 얻기는 힘든 것이었다. '한번 밀리면 끝장이다'는 식의 단순한 입장이라서 연제협측이 이런 형식의 '투쟁'에 영 익숙치 못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전략은 '대화와 타협'을 염두에 두지 않고 '강경일변도'로 나가는 것인데, 상대방이 타협이 불가피한 존재라는 점을 의식한다면 적절하다고 보기 힘들다. "기업체들과 CF 계약을 할 경우 MBC엔 방송하지 않는 조건을 붙이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저런 조건을 들어줄 기업체가 과연 있을까'라는 의문이 나올 뿐이다. 한마디로 연제협이 '경솔'했고 '오버'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론이 그다지 좋지 않음을 의식했는지 연제협 측은 7월 12일 서희덕 대변인(음반사 뮤직 디자인 대표)을 통해 '폭로전'을 펼쳤다. 서 대변인이 CBS 라디오의 뉴스 프로그램에 나와서 "문제의 발단은 지난 5월 MBC PD가 모 신인가수로부터 촌지를 받은 사건"이라고 주장했고, "MBC는 물의가 빚어지자 PD의 사표를 수리한 뒤 근본적 대책을 세우지 않고 신인가수들의 출연만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밝힌 것이다. 즉, MBC에 대한 연예인과 매니저들의 불만은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 말 역시도 상대방의 비리에 대한 폭로라고는 하지만 '제 얼굴에 침뱉기'이이다. 매니저들이 PD들에 대한 '로비'를 통해 신인을 스타를 만드려고 한다는 '속설'을 사실로 입증해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연제협이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대변인에 의하면 "제작자들은 MBC가 자기들 잘못은 반성하지 않고 은폐하면서 의도적으로 제작자들을 매도해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연제협 측은 매니저들로부터 이득을 누렸으면 누렸지 손해볼 것은 없던 MBC가 자신들을 '연예인 등쳐먹는 사람들' 정도로 취급하는 데 대해 억하심정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MBC 대 조선일보 그렇다면 "보도 내용에 아무 잘못이 없다"고 일관하는 MBC 측은 어떤가. 여기가 MBC라는 방송사에 대한 일반적 평가를 내릴 자리는 아니다. 단지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절차를 밟아라"라는 식의 요구, 이른바 '법대로' 하라는 요구가 상대방의 감정을 격하게 만드는 '냉정한' 반응이라는 점만은 지적하고 싶다. '자존심을 건드려 놓고 법대로 하라'는 태도는 제 3자가 보기에는 공정해 보일 지 모르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힘든 대응이다. '법대로 하라'고 말하는 측이 잘 조직되어 있고 사회 각계에 '연줄'도 많은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떤 일간지는 "대학 나오고 음악이 좋아 이 일 하는 후배도 많은데, 나이 비슷한 PD들조차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조선일보], 2001.7.15)는 한 매니저의 발언을 옮겼는데, 현 사태가 '감정대립'으로 치닫는 이유의 단면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결자해지의 차원으로 마련한 7월 15일 [시사매거진 2580] 프로그램에서는 소속 연예인의 출연거부를 종용한 연제협의 행동이나 표준계약서 양식이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소지가 있다"는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하여 연제협을 비판했다. 역시 '법대로'다. 'MBC 측에 압도적으로 우세한 네티즌의 반응'이라는 것도 자사 홈페이지에서의 반응이라면 '무조건 객관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프로야구 선수협과의 비교도 연예인 매니저들이 프로야구 구단처럼 '재벌기업'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다지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은 MBC의 대응 역시 감정적이라고 오해받을 만한 순간들도 없지는 않았다. 이런 점을 무시한다고 해도 '현재 가요계 시스템의 중추인 방송사가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시각도 있다. 어쨌든 문제 제기가 시의적절하고 사회적 파장도 컸던 만큼,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는 일까지 MBC의 몫이 된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문제를 풀기는커녕 더욱 꼬이게 만드는 집단 때문이다. 위에서 인용한 문구를 포함하여 MBC측의 반응을 문제삼는 선두주자는 [조선일보]와 [스포츠조선]이다. 7월 12일자 [스포츠조선]의 <기자석>이라는 칼럼은 "공영방송임을 자처하면서도 민영방송 SBS보다 상업성을 추구, '왕국'의 명예를 이어오던 MBC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라고 시작한 뒤 "이럴 바에야 지상파의 특권을 반납하고 케이블 채널을 자청, '지지든지 볶든지 맘대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결론을 내고 있다. '1등'을 지향한다는 신문사의 엘리트 기자가 쓴 기사치고는 졸렬하기 짝이 없다. 이런 기자가 만약 이 글을 본다면 특정 내용만 첨삭하여 '편집'하고, 데스크는 "대중음악 평론가, MBC의 대응 비판"이라는 제목을 달 것이다. 실제로 [스포츠조선]은 문화개혁시민연대라는 '재야' 시민단체의 성명서를 이런 식으로 활용하여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데 공헌했다. [스포츠신문]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정론지'라는 [조선일보]도 만만치 않다. 문화면 헤드라인을 보면 "MBC, 시사매거진 2580 프로의 PD비리 부분 축소방송 의혹"(2001.7.13.), "극으로 치닫는 연예제작자협·MBC 갈등"(2001.7.15), "MBC 뉴스 '날개 없는 추락' 6~7월 평균 시청률 11.9%.. 창사후 최대 위기" 등이다. 기사를 읽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쉽게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7월 11일자에서는 MBC측이 발표한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 성명서'에 대해서도 "KBS-SBS PD 협회장이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제하의 가서를 쓴 데 이어 15일에는 "KBS와 SBS는 이번 사태를 'MBC가 풀어야 할 문제'라고 규정, 불개입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논평도 결들였다. 이 신문이 이런 논조를 유지하고 있는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신문의 주장대로 KBS와 SBS가 정말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몇 개의 징후만 있을 뿐이다. KBS에서 15일에 방영한 [열린 음악회]에는 박진영, 샵 등의 '댄스 가수'들이 나와서 '립씽크'를 했는데, 이 프로그램이 라이브 공연 중심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례적이었다. SBS의 [생방송 인기가요]는 '하던 대로' 진행되었고 이번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건모에게 1위를 주었다. 양사 모두 경쟁사가 곤욕을 치르는 것에 대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려는' 심산인 것처럼 보였다. 하긴 1년 전 쯤 SBS가 '연예인 성 상납'에 관련된 보도를 했다가 곤욕을 치렀을 때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 필요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연예계와 방송계 전체가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성찰이 여론화되었지만 결실을 맺을 지는 미지수다. 더구나 연예계와 방송계는 서로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의외로 일찍 타협할 지도 모른다. 이런 판단은 '한국인들이 다시 얼굴 볼 일 없다는 듯이 싸우다가도 감정이 풀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쉽게 화해한다'는 보다 일반적 판단을 근거로 한다. 연제협측은 여론이 불리하기 때문에 감정만 누그러뜨릴 수 있는 명분이 주어지면 다시 브라운관으로 돌아올 것이고, MBC 측도 사건이 확대되면 예능국으로 불똥이 튈 지 모르기 때문에 현재의 '소신있는 입장'이 후퇴할 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TV 중심의 홍보와 매니저 지배형 음반제작 등 오래 전부터 지적된 대중음악계의 고질병은 끝내 개선되지 못할 것이다. 정반대의 상황, 즉 양측이 상대방의 비리와 추문을 폭로하여 사태가 장기화하는 시나리오도 상정해 볼 수 있지만, 양자 모두 패자가 되어 공망하는 상황은 서로 원치 않을 것이다. 연예계와 방송계의 개혁이라는 주제는 한번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이야기다. 주체가 누구냐, 방식은 어떠해야 되느냐에 대해서도 격론을 벌여야 하고, 실천은 말에 비해서 훨씬 더디게 진행될 것이다. 게다가 시스템의 개혁에 대해 합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새롭게 개혁된 시스템의 상(像)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과격한 생각이 든다. 한국의 언론계나 연예계는 '개혁'될 수 있는 곳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 '그냥 그러려니'하면서 자괴감을 가지고 살거나, 아예 몇 군데를 없애 버리거나 해야지. 아, 너무 더워서 그런가 보다. 아니면, '대중음악계 문제가 많다. 이제부터 머리를 맞대고...'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막상 사건이 터지자 너무 조용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20010716 * [문화예술]에 수록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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