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OVERVIEW:

대중문화: 미국화를 넘어 문화적 충돌과 변이를 향하여

대중문화에서 미국화의 영향이란 너무나도 자명한 것이기에 이 주제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다. 과감히 말한다면 미국이란 이제 더 이상 '외국'이 아니다. '외국'이라면 무언가 낯설어야 할 텐데 미국이라는 나라(의 문화)는 낯설기는커녕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970-80년대 권위주의 정권이 '양키의 저질, 퇴폐문화'를 차단하려고 노력했던 일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미국 문화는 더 이상 저질도, 퇴폐도 아니고 지금 만약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대착오적'이라는 면박을 받을 것이 뻔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이란 단지 '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지리적 '실체'가 아니다. 문화 영역에서 'Made in U.S.A'는 첨단과 현대와 젊음의 상징이다.

문화적 미국화란 단지 미국에서 만들어진 문화적 생산물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져간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내에서 만들어진 문화 생산물 대부분이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들의 변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쉬리]는 할리우드 영화의 변종이며, '댄스 가요'는 아이돌 팝(idol pop)의 단순 변조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우리 영화', '우리 가요'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때 '우리'란 말은 문화적 개념이 아니라 경제적 개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화라는 용어를 '생활양식'이라는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면, 가옥구조, 의복양식 등 모든 것이 '미국화'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전반적인 생활양식이 이미 미국화된 상태에서 특정 문화형식의 미국화를 지적하는 것은 그렇게 때문에 우스운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화"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1970년대의 정권처럼 '민족문화의 타락'을 우려하면서 미국화에 '저항'해야 할까. 그런 태도는 결국 이슬람 국가들이나 북한(!)처럼 '우리 식대로 살기'와 비슷한 것일텐데, 사실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정작 '국민들이 원하지 않을' 것이다.

결론은 잠깐 미루고 우선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미국의 대중문화에도 다양한 형식이 있듯이 미국화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미국 문화 중에서도 가장 상업적인 주류 쇼비즈니스만을 수입하면서도 '대안적(alternative)'이고 '독립적(independent)'인 문화에는 무관심하다. 단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미국 문화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한 채 미국화되고 있는 것이다. 시쳇말로 한국에는 미국 대중문화에 관한 '전문가'조차 없다. 그러면서도 미국 문화의 트렌드를 유입하여 소비하는 실천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도 신속하다.

물론 미국 문화에 대한 파악이나 '대안적'이고 '독립적'인 문화를 영유하는 것만 가지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금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 문화적 충돌이 불가피하다면 '우리 정서에 맞게 가공하여' 귤을 탱자로 만드는 것보다는 적극적 충돌을 통해 창조적인 문화적 변이를 도출하는 것이 하나의 길이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것'과 '외국 것'의 구분부터 없애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더 따진다면 국민문화와 대중문화가 '동질적'이라는 환상부터 버리는 것이 먼저겠지만. 200100717

* [동아일보] 사외보에 수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