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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의 '영화음악'과 '팝 음악'

* 이 글은 에세이에 올린 인도(에 기원을 둔) 음악 시리즈 다섯째 편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앞에 최근에 본 인도영화 몇 편에 대한 평을 추가했고 뒷부분은 윗 글에 올린 글을 수정하고 축약했습니다. 기고를 요청받는 측의 요구에 맞추다보면 비슷한 글을 여러 개 써야하는 상황이 종종 있습니다. 단행본 책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니 너그러운 양해 부탁합니다.

인도의 영화음악

작년에 '진짜' 인도 영화 [춤추는 무뚜(Muthu)]가 국내 개봉되었다. '진짜'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동안 한국에 선보인 인도영화들이 '정통' 인도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카마 수트라](1996)와 [밴디트 퀸](1994)같은 경우가 그런 예다.  

[카마 수트라]의 메가폰을 잡은 미라 네어(Mira Nair)는 인도 태생이기는 하지만 하바드 대학교로 유학을 가서 영화를 공부하고 그곳에서 미국인 남자와 결혼하는 등 '토종 인도인'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영화 자체도 배경은 16세기 인도이지만, 헐리우드의 장르 컨벤션에 충실하게 삼각(혹은 사각) 관계를 그린 멜로드라마다. 1989년 깐느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오스카상에서도 지명된 데뷔작 [Salaam Bombay!](1988)를 보지 못해서 더 이상 할 말은 없지만, 이 영화도 '네오리얼리즘'이라는 장르가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인도의 '대중영화'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그녀가 만든 영화의 국적은 'UK/India'라고 되어 있으므로 인도의 영화제작 시스템의 외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국내에서는 [옥보단] 정도로 생각하여 수입했고, 지금도 '에로물'로 분류되어 비디오 숍에 놓여 있다.

셰하르 카푸르(Shekhar Kapur) 감독의 [밴디트 퀸]은 인도에서 제작되기는 했지만 인도의 '대중영화'는 아니다. 지난 달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한 풀란 데비(Phoolan Devi)의 일대기를 다룬 주제도 그렇거니와 기법도 매우 사실적이라서 인도 영화의 주류와는 거리가 멀다. 이 영화는 1995년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어 영화 부문 후보작에 올랐으며 '[타임]이 뽑은 세계 10대 영화'에도 선정되는 등 국제적 호평을 받았지만, 정작 인도 국내에서는 '상영금지'라는 비운을 맞았다.

[카마 수트라]와 [밴디트 퀸]이 인도 내에서 '찬밥' 신세인 이유는 '정치적' 이유도 있겠지만 '문화적' 이유도 있다. 한마디로 인도 대중의 취향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가 인도 영화에 대해 상세히 설명할 자리는 아니지만 전반적 특징에 대한 지적은 필요해 보인다. 간단히 말해서 인도의 대중영화 대부분은 사랑, 우정, 모성, 운명 등 보편적인 테마를 담은 '멜로드라마적 뮤지컬'이다. 그래서 영화의 테마는 보편적이지만, 스타일이나 기법은 부자연스럽다. 스토리 역시 일관된 순서 하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두서없이' 진행된다. 인도 영화에 나타난 이미지가 현실이 아니라 허구라는 사실을 인도 사람들이라고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도 영화의 중요한 기능은 '팬터지의 제공'이고, 이는 엔터테인먼트와 도덕적 교화를 모두 수행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인도 영화의 장르와 기법을 '양념'이라는 뜻의 마살라(masala)라고 표현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이는 음식을 요리할 때 양념을 넣듯이, 영화의 흥행을 위해 춤, 노래, 멜로드라마, 스턴트, 전투, 카바레 장면, 과장된 유머를 '주어진 공식대로' 배합한다는 뜻이다. [춤추는 무뚜]를 보면 한국식으로 말하면 각종 스펙터클들이 맥락없이 뒤섞여 있음을 볼 수 있다. 마차를 달리는 장면은 [벤허]같은 블록버스터의 고전이 연상되며, 합창이 나올 때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연상되며, 격투 장면에서는 홍콩 무협영화마저 연상된다.

인도의 영화음악과 '인도 팝(indipop)' 음악

여기서 인도 영화에서 노래와 음악은 단지 '배경 음악'이 아니라 영화의 내용과 그것의 욕망을 표현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도 알 수 있다. 인도 영화의 히트 공식이 "한두 명의 스타, 여섯 곡의 노래, 세 개의 춤"이라는 말도 이런 점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따라서 인도의 대중음악은 대중영화와 밀접하고 최근까지도 인도의 대중음악은 '영화 음악(film music)'이 거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즉, 인도의 대중음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중음악과는 '팝 음악'과는 상이한 시스템을 통해 생산되고 소비된다. 개별 아티스트의 음반을 구매하여 음향기기로 재생하는 것을 듣는 것보다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면서 배우가 부르는 노래들 듣는 것이 인도인들에게는 훨씬 더 익숙하다. 시장의 통계를 보더라도 1999년 인도 음악산업의 매출액에서 영화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70%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인도의 영화음악은 앞서 언급한 [카마 수트라]나 [밴디트 퀸]과는 사뭇 다르다. [카마 수트라]의 사운드트랙은 인도의 '클래식 음악'을 뉴에이지풍으로 편곡한 것이며, [밴디트 퀸]은 파키스탄의 누스라트 파테 알리 한이 만든 이른바 수피 음악(sufi music)이다('수피'란 이슬람 중에서 신비주의적 교파를 말한다). 반면 [춤추는 무뚜]에 나오는 사운드트랙은 인도 전통음악의 영향도 있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영미 팝의 영향이 가미되어 만들어진 '노래' 중심이다.  

특이한 사실은 인도 영화에 나오는 노래의 목소리가 실제 배우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배우는 '플레이백 가수(playback singers)'가 미리 녹음된 것에 맞추어 '립씽크'를 할뿐이다. 마치 동시녹음 이전의 한국 영화에서 배우의 목소리들을 성우가 '더빙'했던 것이나 비슷하다. 물론 모하메드 라피(Mohammed Rafi), 무케시 쿠마르(Mukesh Kumar) 같은 남성 보컬리스트들, 지타 두트(Geeta Dutt), 라타 망게스카르(Lata Mangheskar) 같은 여성 보컬리스트들은 슈퍼스타의 지위를 누려왔다. 이들은 '골든 보이스(Golden Voice)'라는 칭호를 들으면서 인도 영화의 황금시대인 1940-50년이래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네스북의 'The most recorded artist' 항목에는 라타 망게스카르가 "솔로, 듀엣, 코러스 등을 합하여 30,000여 곡을 레코딩했다"는 기록이 올라 있다. 그러나 한 저널리스트에 의하면 인도 40년의 영화 역사에서 레코딩된 곡은 35,000여 곡 '밖에' 없다고 하므로 기네스북의 기록은 다소 과장으로 보인다. 또한 라타 망게스카르보다 레코딩을 더 많이 했다고 인정되는 인물이 있는데 다름 아니라 그녀의 여동생인 아샤 보슬(Asha Bhosle)이다. 1933년생인 아샤 보슬은 10살 때부터 레코딩을 시작해서 극히 다양한 창법과 음색은 물론 여러 가지 언어로 된 가사를 소화해낸 인물로 유명하다.

이런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최근 앨범 [Janam Samjha Karo](1997)에서 보듯 아샤 보슬이 영화에 의존하지 않는 '팝 스타'로서의 경력도 개척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그녀는 "인도의 할머니 마돈나(The Grandma Madonna from India)", "로큰롤 할머니(Rock'n'roll Grandma)"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나이가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신예 팝 스타들과 경쟁하고 있다. 물론 이때 '할머니'나 '로큰롤'이라는 단어는 한국어 단어가 주는 어감과는 조금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방그라 그룹 알랍(Alaap)이 자신의 앨범 [Chham Chham Nachdi Phiran](1990)에 그녀를 초빙하여 함께 작업한 사실이나 코너숍(Cornershop)이 자신들의 히트곡 "Brimful Of Asha"에서 그녀를 칭송한 사실만 보더라도 그녀의 영향력이 인도 국내의 기성 세대를 넘어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운을 띄운 셈이지만 인도의 '팝'이란 영화음악에 의존하지 않는 시스템에서 제작되는 음악을 말한다. 영화음악이 인도의 '전통적' 대중음악이자 '주류' 대중음악이라면 인도 팝이란 상대적으로 최근에 탄생한 음악이다. 한 사이트의 설명처럼 인도 팝이란 '서양의' 트렌드를 흡수한 새로운 대중음악이고, 이는 이제 음악산업의 15-2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예를 들어 달러 메헨디(Daler Mehndi)는 방그라에 레게와 랩을 믹스한 스타일을, 수흐비르(Sukhbir)는 방그라에 하이 에너지와 테크노 등 댄스 리듬을 섞은 스타일, 바바 세갈(Baba Sehgal)은 힌두어와 영어를 뒤섞은 힝글리시(hinglish) 랩을 각각 선보이고 있다.

새로운 인도 팝은 지난 번에 살펴보았던, 영국과 북아메리카 대륙에 사는 인도계 이민자들의 음악적 성과를 흡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의 음악에서 알랍(Alaap), 아파치 인디언(Apache Indian), 말키트 씽(Malkit Singh) 등 인도계 영국인 팝 스타들의 영향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물론 새로운 인도팝은 영화로부터 TV로 미디어를 바꾸었을 뿐이라는 내부의 지적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외국에 사는(이른바 '탈영토화된') 자국계 음악인들과 국내에 거주하는 음악인들 사이에 활발한 교류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이제 '아시아'에 속하는 일부 지역의 음악 문화도 지구화의 파고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는 징후다. 그동안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사이에서 주로 발생하던 문화적 교환이 이제는 인도양까지 건넌 셈이다. 동아시아에도 그런 물결이 닥쳐 올까? 이미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고, 아시아는 '동양' 중에서도 '극동'이기 때문에 끄떡없다는 주장도 있다. 아마도 후자는 '샤크라의 1집은  인도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다. 20010820

 * 웹진 [Pencil]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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