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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에세이에 올린 꾸바음악 시리즈 두 번째 편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그때 상세히 쓰지 못한 룸바에 대한 기원을 추가했고, 재정렬했습니다. 기고를 요청받는 측의 요구에 맞추다보면 비슷한 글을 여러 개 써야하는 상황이 종종 있습니다. 한번 쓴 글 이상으로 쓸 말이 없을 때 새로운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닐 테구요. 단행본 책을 준비하는 마음으로너그러운 양해 부탁합니다. 꾸바 음악 = 유럽의 우아(elegance) + 아프리카의 정열(passion) + α [라틴 아메리카 문화의 이해](학문사, 2001)라는 책을 들춰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1774년 경 꾸바에는 96,430명의 백인과 78,180명의 흑인이 살고 있었는데, 흑인 중 44,360명은 노예였다. 다시 말해서 인구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숫자가 흑인의 피를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이 시기가 꾸바 국민과 음악의 성격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민과 음악의 성격'이라는 표현이 '꾸바 국민과 꾸바 음악 각각의 성격'인지 '꾸바 국민의 음악의 성격'인지 혼동스럽지만 대략 이때가 꾸바 사회의 문화적 특징의 원형이 만들어진 때라는 점을 확인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백인, 흑인이라는 표현에서 백인은 '유럽계(주로 스페인계)', 흑인은 '아프리카계'라는 점도. 아무튼 이런 정보에서 꾸바 음악을 포함한 문화 전반이 유럽과 아프리카의 혼종(hybrid)이라는 사실을 유추해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혼종이라는 '편리한' 표현만 가지고 꾸바에서 아프리카에 기원을 가진 문화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를 설명하기는 불충분하다. 미국 등 북아메리카와 비교하면서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미국에서는 아프리카계의 문화가 기원의 흔적을 점차 소실하면서 백인문화와 '나란히' 존재했다면, 꾸바에서 아프리카계 문화는 기원을 추적할 수 있는 상태에서 백인문화와 '뒤섞여' 존재했다. 꾸바는 브라질과 더불어 아프리카로부터 가져온 문화가 '보존'된 케이스에 속하는데, 두 나라가 '음악 강국'이라는 사실은 이 점과 무관치 않다. 여기에는 노예제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작용한 것 같다. 중남미를 지배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라틴계 백인이 북미를 지배한 앵글로계 백인에 비해 아프리카계 노예에 대한 태도가 상대적으로 관대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이다. 또한 식민지 개척 단계에서, 가족 전체가 이주한 앵글로계와는 달리 라틴계들은 부인과 자식을 고국에 놓아두고 혈혈단신 이주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인간 본성' 상 잡혼(miscegenation)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이 뒤섞이는데 사람의 생활양식인 문화가 뒤섞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물론 꾸바 음악에 스페인과 아프리카의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1804년 아이티가 프랑스의 지배로부터 독립하자 꾸바로 망명한 프랑스계 '보트 피플'의 영향도 있었고, 중국계 이민자들이 가져온 악기나 이탈리아의 오페라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주었다. 게다가 19세기 말부터는 뉴 올리언스와 아바나 사이의 항로를 통해 미국과 꾸바의 음악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이렇게 뒤섞이는 과정을 겪으면서도 '아프로꾸반'이라고 불리는 아프리카계 꾸바인의 음악적 정체성은 지금도 명확하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대무(contradanza)의 영향을 흡수하여 만들어진 아바네라(habanera)나 이를 계승하여 19세기 말 - 20세기 초를 주름잡은 단손(danzon)은 분명 아프리카보다는 유럽의 영향이 강한 음악이었지만, 음악의 리듬에서 아프리카의 영향이 은근히 묻어있는 것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아무리 유럽지향적이라고 하더라도 꾸바에서 연주되는 음악에는 아프리카에 기원을 둔 퍼커션(percussion)의 '불가향력적 리듬(orresistible rhythm)'이 깔려 있다. 물론 아프로꾸바 음악이 이렇게 순화된 음악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이제 그것들을 찾아가 보자. 아프로꾸바 음악의 원형(1): 룸바 꾸바에서 룸바라고 부르는 음악과 1930년대 세계 각국의 댄스플로어를 달구었던 룸바는 조금 다르다. 꾸바에서 룸바는 꾸바의 서부 지역, 특히 마탄사스(Matanzas) 지역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지는 '길거리 댄스 음악(street dance musi)'이다. 봉고, 띰발레, 꽁가같은 북들, 박스 모양의 까존(cajone), 두 개의 나무막대기인 끌라베(clave), 나아가 접시와 술병도 룸바의 '악기들'이다. 룸바는 한국의 '도롯도'처럼 '언제 어디서나 존재했다(ever-present)'고 표현되는 서민의 음악이다. 물론 룸바에도 지역별로 다양한 변종이 있는데, 혹시나 꼴룸비아(columbia)나 얌부(yambu)라는 단어를 들으면 룸바의 하위장르로 생각하면 된다. 이런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룸바는 '대중'음악과 '토속'음악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음악이다. 현대의 대중음악이 '직업적 음악인'이 만들고 연주하는 음악이라고 한다면, '동네 사람들'끼리 춤추고 두드리면서 즐기는 음악인 룸바는 이런 정의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룸바의 기원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싼떼리아(santeria)라고 불리는 아프리카식 종교 의례나 오리샤, 예만자 등 아프리카의 신(神)들을 만나게 된다. 룸바는 아프리카에 기원을 둔 종교음악이 세속화된 형태인 것이다. 물론 직업적 음악인이 연주하는 음악에 룸바가 영향을 주는 경우는 많다. 빅 밴드로 편곡되어 연주되는 구아구앙꼬(guaguanco)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경우에 따라서는 구아구앙꼬를 룸바의 하위장르로 포함시키기도 한다). 또한 '직업적' 룸바 그룹도 존재하는데, 무네뀌또스 마탄사스(Los Munequitos Matanzas)는 '월드 뮤직'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1992년 이후 네 차례 전미 순회공연도 가졌으며, [Congo Yambumba](1994)는 룸바의 여러 하위장르를 망라한 퍼커션 가득한 사운드로 '토속적 리듬'을 좋아하는 월드 뮤직 애호가들을 사로잡았다. 룸바는 때로 엉뚱하게도 현대적 사운드와 결합되기도 하는데, 꾸바 음악인으로는 드물게 '록 밴드'로 활동한 신테시스(Sintesis)가 대표적인 예다. 아프로꾸바 음악의 원형(2): 쏜(son) 쏜은 꾸바 동부 오리엔떼(Oriente) 주의 산악지대에서 탄생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만자닐로(Manzanilo), 관타나모(Guantanamo), 산띠아고 드 꾸바(Santiago de Cuba) 등의 도시가 쏜의 고향이다. 쏜은 1차 대전을 겪고 난 뒤인 1920년대 전국적 대중음악으로 성장했다. 처음에 쏜을 연주하던 그룹은 7인조(septet)였는데, 기타, 베이스(콘트라베이스), 뜨레스(기타와 비슷한 9현 악기), 트럼펫에다가 봉고, 마라카스, 끌라베의 퍼커션이 추가된 편성이다. 룸바에서 사용된 타악기에 재즈로부터 영향받은 악기들이 추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에서 '원 투 쓰리 / 원 투' 식으로 두들기면서 타임 키퍼(time keeper) 역할을 수행하는 끌라베(clave)가 가장 인상적인 소리다. 룸바가 보컬과 퍼커션 중심의 무정형적(으로 들리는) 음악이라면, 쏜은 '악기'와 '보컬'에 어느 정도 정형화된 형식이 있는 음악이다. 즉, 아프리카의 리듬과 퍼커션이 스페인의 멜로디와 화성 패턴과 결합한 것이 쏜이다. 쏘네로(sonero)라고 부르는 리드 보컬이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르면 쏘네오(soneo)라고 부르는 합창이 나오면서 '선창과 후창(call and response)' 형식을 만든다. 쏜이야말로 유럽의 우아함과 아프리카의 열정이 가장 잘 결합된 형식이었다. 그래서 쏜은 1930년대가 되면 꾸바의 상류 계급까지 확산되었고 미국 등지로도 수출되어 댄스 광란(dance craze)을 야기했다. 당시 꾸바 외부에서 '룸바'라고 알려진 음악 스타일 중에는 쏜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이렇게 전국적·국제적으로 확산되면서 쏜은 '아프리카의 기원'을 잃고 매끄럽고 온순하게 변해갔다. 아르쎄니오 로드리게스와 쏜 몬뚜노 영화 [부에나 비스따 소셜 클럽]에서 루벤 곤살레스가 아르쎄니오 로드리게스라는 인물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맹인이면서 여러 악기를 다루고 밴드리더를 겸했던 그는 꾸바 음악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인물일 것이다. 그는 1940년대를 풍미한 쏜 몬뚜노(son montuno)라는 장르, 그리고 꼰준또(conjunto)라 불리는 악단의 선구자다. 꼰준또란 앞서 말한 쏜의 7인조 편성에 트럼펫, 피아노, 그리고 꽁가 드럼을 추가한 것이다. 트럼펫은 파워를. 피아노는 섬세함을, 꽁가는 깊은 톤을 확보해주었고, 뒤에 쏜이 재즈와 결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르쎄니오 로드리게스는 '쏜 음악인'이지만 마탄사스 출신이다. 앞서 보았듯 마탄사스는 룸바의 고향이고, 쏜의 고향은 동부였다. 여기서 그의 음악이 '룸바의 영향을 흡수한 쏜'이라는 점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데 그건 어느 정도 그건 사실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음악은 구아구앙꼬를 도입한 쏜이고, 이 새로운 스타일을 지칭하는 용어가 쏜 몬뚜노다. 사실 이 용어는 처음부터 '장르'가 아니라 '선창/후창'의 형식에서 나오는 즉흥연주를 말한다. 즉, 소네로의 리드 보컬이 후렴을 반복하고 소네오의 합창과 선창과 후창을 하는 과정에 트럼펫, 피아노, 트레스의 솔로 즉흥연주가 삽입되는 형식이 쏜 몬뚜노다. 이 형식이 로드리게스에 이르러 보다 '자유로운 형식'으로 자리잡았고, 그 결과 자연발생성, 즉흥성 등의 수식어로 표현되는 아프리카 음악의 특징이 부활된 것이다. "A Belen le Toca Ahora", "La Yuca de Catalina", "Juventud Amaliana"같은 쏜의 고전, 그리고 "La Vida es un Sueno", "Bruca Manigua"라는 구슬픈 발라드(이른바 '볼레로')가 그의 작품이다(뒤의 곡은 부에나 비스따 소셜 클럽의 히어로 이브라임 페레르가 그의 솔로 앨범의 첫 트랙으로 수록했다). 아르쎄니오 로드리게스는 1953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여기서도 그는 쏜에 다른 음악적 요소들을 도입하는 음악적 실험을 계속하다가 1970년 12월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미국에서 그의 활동이 꾸바에서처럼 빛나는 업적을 남긴 것은 아니지만, 그의 업적은 '뉴욕 살사'와 '아프로꾸반 재즈'라는 두 장르에 고루 영향을 미쳤다. 국내에 들어온 음반들 중에는 [Roots of Afro-cuban Jazz](Blue Note, 2001)에서 그의 꽁가 연주를 잠깐 들을 수 있을 뿐이지만. 최근 발표된 모음집으로는 [Aresenio Rodriguez - Con Su Conjunto y Chano Pozom Machito Orchestra](IMC, 2000)이 있다. 단손, 볼레로, 과히라 그리고 또... 순수한 아프로꾸반 음악은 아니지만 단손을 연주하는 차랑가(charanga)라는
악단 편성에 대해서도 알아둘 필요는 있다. 차랑가는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클라리넷, 플롯, 우드 베이스, 드럼(더블 드럼)과 귀로(guiro)와
팀발레스(timbales) 등의 퍼커션이 추가된 오케스트라인데, 쏜과 비교해
볼 때 피아노와 멜로디의 역할이 크고, 분위기가 우아하고, 템포가 느려서
천천히 춤추기 좋은 스타일이다. 195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유행한 맘보와
차차차는 모두 '차랑가가 연주하는 단손'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오르꿰스뜨라 아라공(Orquestra Aragon)은
원형에 가까운 차랑가 악단으로 부에나 비스따 소셜 클럽과 더불어 꾸바산(産)
월드 뮤직'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 외에도 "Guantanamera"라는 곡으로 유명한 과히라(guajira),
6/8박자 리듬을 가진 스타일인 아프로(afro), 맘보의 직접적 기원인
파창가(pachanga), 아프리카 토속 리듬이 강한 꽁가(la conga) 등이
'혁명 이전의' 꾸바 음악의 다양한 스타일을 이루고 있다. [The Music
of Cuba: 1909-1951](수입: 소니, 2000)에는 쏜과 룸바를 포함하여 이런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물론 혁명 이후에도 쏜 몬뚜노와
단손을 합성한 로스 반 반(Los Van Van)의 쏭고(songo), 엘리오 레베의
창구이(changui)를 거쳐 NG 라 반다(NG La Banda)와 마놀린(Manolin)의
띰바(timba)에 이르기까지 아프로꾸바 음악의 영향은 맥이 끊기지 않고
있다. 왜일까. 다음 인용문을 음미해 보자. * 월간 [객석]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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