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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개인적 경험담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지금부터 정확히 20년 전의 일이다. 1981년 10월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서는 '축제'란 것이 열리고 있었다. 그런데 '축제'라고 하기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교정에 감돌고 있었다. 둘째날인가 셋째날 본관 라운지에서는 본교 그룹 사운드 갤럭시(Galaxy)의 공연(그때 말로 '연주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렇지만 이게 웬일, 거기 모인 사람들은 음악을 듣고 즐기러 온 '관객'이 아니라 연주회를 저지하려고 모인 '학우'들이었다. 여차하면 던지기 위해 계란을 손에 들고 온 학생들도 있었다. 결국 그날 공연은 열리지도 못하고 끝나 버렸다. 축제 마지막 날 대운동장에서도 '그룹 사운드 초청 공연'이 열렸다. 무대에 등장한 그룹은 건국대학교 그룹 사운드 옥슨 81(Oxen 81)이었다. 순간 1년 전 고3 수험 생활의 지루함을 잊기 위해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던 <젊은이의 가요제>를 찾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금상을 차지한 그룹은, 현재 '종합예술인'으로 활동하는 홍서범이 이끌던 옥슨 80(Oxen 80). 그러니 무대에서 준비하고 있던 그룹은 옥슨 80의 한 기(期) 후배인 셈이다. 1년 전 "불놀이야..."라는 후렴구를 박수를 치며 따라불렀던 경험이 무색하게 나 역시 공연을 저지하려는 '학우들' 중 하나였다. 내 옆에 서있던 과격한 인상의 '동지'는 어디서 구했는지 각목까지 들고 있었다. 결국 최루탄까지 터지면서 이날 공연도 취소되고 말았다. 다음 날 일간지들은 하나같이 '서울대학교 축제에서 폭력 사태, 과격 운동권 학생들 각목 휘둘러', '지성인들이 이래서야...' 운운하는 투의 기사가 실렸다. 나 역시 '지성인으로서' 예정된 공연까지 실력 저지하는 것은 심하다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대학생들의 지배적 정서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어떤 정서? 몇 마디로 간단히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 정서는 '민중적'이고 '민족적'이었으며, '관제 문화'와 '외래 문화'를 배격했다. 그러니 학교 '당국'의 지원을 받아 '외국' 음악을 연주하는 그룹 사운드가 '관제'와 '외래'의 표상으로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실제로 그해 5월에는 정부 주체의 관제축제가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이름도 생생한 [국풍 81]이었는데, 탈춤과 그룹사운드 공연이 한 자리에서 치러지고, 민속놀이 줄다리기와 스케이트보드가 같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희한한 행사였다. 관제문화와 외래문화의 황홀한 결합은 '문화의 탈정치화를 통한 정치적 이용'이라는 대한민국 정부의 일관된 문화정책의 산물이었다.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5. 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고 집권한 신군부정권의 정책을 말한다. 그러니 모처럼 해금되어 등장한 신중현이 연주하던 "아름다운 강산"도 '관제 건전가요' 정도로나 들렸을 뿐이고, 한대수의 노래조차도 '낭만적이고 도피적이고 보헤미안적'이라는 이유로 잘 부르지 않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1980년대의 문화정치적 정세는...'하고 진지한 어조로 말하는 일은 어색해 보인다. '1980년대 민중문화운동의 현재적 의미'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간이 많이 지나다 보니 뭔가 좀 억울한 심정이 남는다. 뭔고 하니 1980년대에 대학생으로서 '치열하게' 살아가려고 했던 사람들은 '젊은이'로서 누릴 것을 누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한계'가 지적되면서 '리버럴'하고 '미국적'인 것들은 설 자리를 잃었고, 일상에서 불가피하게 접하는 대중문화는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수퍼에고의 작동에 의해 견제당했다. 1980년대의 '민중문화'는 젊음의 낭만과 발산이라는 코드와는 거리가 있었고, 과감히 말한다면 1980년대의 대학생문화는 '청년 문화'가 아니었다. 청년이라는 단어가 단지 물리적 나이가 아니라 '특정한 정서'를 지칭하는 개념이라면 말이다. 그게 1980년대 대학교를 다닌 사람들의 보편적 경험이었는지, 아니면 '운동의 전위'에만 해당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중문화와 구분되는 민중문화가 존재한다는 '팬터지'가 존재했고, 그 팬터지를 쫓던 사람들은 한국의 청년문화의 역사에서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중음악 분야의 경우 1980년대는 '청년문화의 아이콘'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김광석과 안치환을 언급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들이 그런 지위에 오른 것은 민중문화와 일정한 거리를 둔 다음이었다. 대학생문화가 꼭 청년문화가 되어야 한다든가, 청년문화의 아이콘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나름대로 1980년대는 '혁명'의 시대였으니까... 그래도 뭔가 찝찝한 것은 나의 '나와바리'가 대중음악, 특수하게는 록 음악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말한다면, 똑같은 시대에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에서는 대학생의 정치적 저항과 록 커뮤니티의 미학적 반란이 그럭저럭 잘 어울리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컬리지 록 = 인디 록 = 얼터너티브 록을 말하느냐고? 그것도 있지만 소련, 중국, 아르헨티나, 브라질처럼 영미 사회와는 전혀 다른 체제와 문화를 가진 곳들에서도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전개되었다. 물론 이런 것도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일 뿐이다. 그래서 어쨌냐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운동권 대학생'들은 록 음악을 여전히 '외래 문화' 정도로 생각하고,
록 음악의 매니아들은 '정치'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면서 캠퍼스
내에서 방황하고 있는 현상이 안타깝다는 이야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문화정세'에서 대학생 '주류'의 음악 취향은 갈수록 10대들과
별다르지 않은 현상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이 '1981년'에 시작된
것만 같아서 때로는 자책과 회오의 감정이 생긴다는 씁쓸한 회고일 뿐이다.
막상 누려보면 별 것 아닐지 몰라도 누리지 못한 사람에게는 평생의
한으로 남는 법인가? * 웹진 <창작과 비평>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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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view:
200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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