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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언더' 페스티벌 감상기

몇 일 전 잠시 나이를 잊은 채 젊은애들이 노는 음악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물론 나이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니라서 페스티벌 전체를 무대 가까운 곳에서 '스탠딩'으로 관람하려는 계획은 애초부터 없었다. 몇 번 다녀왔던 곳이라서 뒤편에 있는 '경로석'을 찾아 맥주나 마시고 오징어나 씹으면서 한두어 시간 지켜보다가 슬슬 자리를 떨 생각이었다.

이 날 공연은 주최측과 관객 사이의 궁합이 잘 맞아보였다. 이 행사의 주최측은 유명 브랜드 기업으로 자리를 굳힌 국내 중견기업이고, 이들은 몇 년 전부터 전부터 인터넷 방송, 음악잡지(이건 하도 안 팔려서 접었다), 공연장 등 '언더(그라운드)'나 '인디(펜던트)' 등으로 불리는 음악문화에 투자해 왔다. '어딘데요?'라고 물어볼지 모르지만 이런 글에다 그런 홍보를 하면 안 된다고 하니 각자 알아보도록. 저 회사 사장님이 <성공시대>에도 출연한 적이 있으니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냥 http://www.ssamnet.com 이라는 암호만 남긴다. 참고로 아저씨는 저 곳과 절대로 무관함.

이 기업이 생산하는 감각적 제품들처럼 무대 셋팅도 트렌디했고, 공연을 찾은 관객들의 차림새도 마찬가지였다. '쟤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저렇게 비싼 옷을 입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가 주축이었지만 '중고딩'으로 보이는 애들도 눈에 띄었다. 토요일 오후라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화장품도 찍어 발랐지만 티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이날 공연 현장에서는 주최측과 청중 사이의 관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냉혹한 관계'같지는 않았다. 물론 공연이 거의 공짜였다는 점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만.

아마도 아빠한테 공짜였다고 말하면 '공연에 지출한 비용만큼 제품 가격 올린다. 순진하긴...'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 말씀이 사실이라도 그날은 그런 것쯤은 잊어버려도 좋을 분위기가 지배했다. 나만 해도 '그렇게 해서라도 '문화'에 지출하는 기업이 어디 흔하냐'라는 생각이 앞섰다. 이런 기업이 없다면 유명 가수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관중들이 운집할 리가 없다. 모처럼 많이 모인 관중 앞에서 연주한다는 사실에 고무되서인지 '인디' 혹은 '언더' 음악인들도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누구냐고? 위 암호를 참고하라.

그런데 그날 잘 놀고 난 뒤 괜한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건 '댄스 음악을 좋아하는 것과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과연 뭐가 다를까'라는 의문이었다. 립씽크와 라이브의 차이? 방송국 스튜디오와 라이브 클럽의 차이? TV를 보는 것과 CD를 듣는 것의 차이? 그런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공연장을 찾아 인디 음악을 듣는다고 TV를 때려부수고 가요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것도 아니고, 댄스음악을 주로 듣는다고 해서 "말 달리자"와 "챠우챠우"를 모르지도 않을 것이다. 모른다고? 그러면 대학생과 중고딩의 차이? 그것도 일반화시킬 수 없다. 요즘 대학생 언니, 오빠들 대다수의 취향은 중고생과 별 다를 바 없고, 인디 음악의 공연장을 가 봐도 중고생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얼까. 아마도 주류 가요는 '기획사가 시키는대로 하는' 것인 반면, 인디 음악은 '자기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는 차이가 제일 중요할 것 같다. 조금 문자를 쓰면 주류 가요는 '작위적 연예'인 반면, 인디 음악은 '창조적 자기표현'이다. (물론 개중에는 사이비도 있으니 주의할 필요도 있다). 그렇다면 인디 음악이 아직도 인기가 없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창조적 자기표현에 인색하다'는 말이 될까? 그런 것 같다. 왜냐하면, 12년 동안 '정답과 똑같이 따라 해야 '잘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라온 사람의 인성이 갑자기 개성적이고 창조적이 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라건대 혹시 이런 말 들었다고 해서 갑자기 '개성적이고 창조적'이 되려고 '오버'하지는 말고, 'TV에 나와서 춤추는 멋쟁이 언니 오빠들이 곡마단 원숭이와 뭐가 다를까'부터 곰곰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나는 과연 그 사람 및 원숭이와 뭐가 다를까라는 생각도. (따지고 보면 아저씨도 '남 따라하는' 것이 '창조적으로 하는' 것보다 편할 때가 있다. 그러는 내가 너무 싫지만).   20010114

* 계간 <포브틴>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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