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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중음악계의 이상한 불황극복책

대중음악계가 '극심한 불황'에 빠져있다고 한다. 속설에 따르면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한 가수의 음반 판매량이 겨우 10만 장 안팎의 수준이라고 하니 심각하긴 정말 심각한 모양이다. 2001년 한 해 동안 밀리언 셀러(100만장 이상 판매된 음반)이 김건모의 7집 하나밖에 없다고 하니 좋은 시절이 지나간 모양이다. 작년만 해도 200만장 가까운 판매고를 누리면서 천하의 권세를 누리던 조성모의 4집이 '이전 음반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사실이 현재의 불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음반업계는 "사람들이 CD나 테이프를 사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mp3를 다운로드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인터넷이 없었더라면 사정이 조금은 나아졌겠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국 음반산업의 고질적 문제점 어쩌구 저쩌구라고 또 한번 입 아프게 복창할 생각은 없다. 그저 '굳이 음반까지 구입할 필요'를 못 느끼는 그만그만한 노래들이 대부분이고, 따라서 음반소매점을 찾아가서 지갑을 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일반 소비자'의 심정을 피력하는데 그치기로 하자.   

음반을 홍보하기 위한 음반제작자의 전략은 무엇일까. 먼저 뮤직 비디오가 있다. 예를 들어 조성모가 스타덤으로 도약한 하나의 수단은 이른바 '드라마타이즈드 뮤직비디오(dramatized music video)'였다. 일본이나 홍콩에서 '올 로케'하고, 스타급 탤런트나 배우가 등장하고, 스토리라인이 분명한 뮤직 비디오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는 뮤직 비디오가 영 시원치 않았다. '작품성'이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뮤직 비디오를 둘러싼 '뒷 얘기'가 없었다는 말이다. 유심히 생각해 보면 조성모를 비롯해서 한국 대중음악의 뮤직 비디오는 그걸 실제로 보는 것보다는 뒷 얘기를 듣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 대표적으로 2001년에 나온 조성모의 3집 수록곡 "아시나요"의 뮤직 비디오는 '백마부대 용사들'의 항의로 인해 오히려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물론 이 경우는 사전에 치밀하게 의도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의도적 전략은 통상 남녀 연예인들 사이의 '있지도 않은 열애설'을 흘리는 것이다. 조성모 2집의 수록곡 "For Your Soul"의 뮤직 비디오에서는 여기에 함께 출연한 최지우와 조성모 사이의 '열애설'이 흘러 나와서 관심을 증폭시켰다. 물론 이는 이내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지만 음반이 발매되고 뮤직 비디오가 방영되는 기간 동안에는 충분한 가십 거리가 되면서 홍보에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센세이셔널한 기사를 찾기 위해 혈안인 <스포츠신문> 등 연예정보지들은 경쟁적으로 부풀리기를 계속하므로 정보만 조금 흘려주면 전국적 가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건 조성모의 뮤직 비디오에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만 들어 봐도 여가수 이수영의 뮤직 비디오 때는 영화 배우 신현준과 홍콩의 여배우 종려시가, 신인가수 류이의 뮤직 비디오 때는 탤런트 고수와 하지원이 각각 '열애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지난 12월 장안의 화제를 뿌린 '손태영을 사이에 둔 주영훈과 신현준의 삼각관계'도 마찬가지다. '손태영이 주영훈과 결별하고 신현준의 품에 안겼다'라는 결론이 나오고 있는데, 신현준이 출연한 뮤직 비디오에서 연기했던 말과 행동이 '손태영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것이 이런 결론을 낳는 배경이었다. 문제의 뮤직 비디오는 가수 김정민의 노래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었고, 그렇다면 삼각관계, 열애설, 결혼임박설 등의 추측성 보도는 부풀려진 것일 공산이 크다.

문제는 적지 않은 사람들도 이를 다 알고 있다는 점이다. '신현준과 손태영의 열애설'이 스포츠신문의 첫 지면을 대문짝만하게 장식하면, 몇 일 뒤에는 '위 열애설은 김정민의 뮤직 비디오의 홍보를 위해 부풀려진 것이다'라는 식의 연예가 칼럼이 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엇에라도 홀린 듯 저런 주제를 심심풀이로 대화의 소재로 삼는다. 연예인들 사이의 열애설이야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는 '환상의 짝'에 대한 부러움을 사는 전통적 기능이 있으니 이걸 막기는 힘들다. 이런 뒷 얘기들이 마술처럼 음반 구매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음반제작자들의 고정관념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고정관념이 조성모 2집의 경우처럼 명중할 때도 있지만 매우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뮤직 비디오는 케이블 TV나 유선방송에 주로 나오는데, 한국의 시청자들은 지상파 TV에서 잘 떠나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러니 지상파 TV를 공략할 수밖에 없다. 물론 TV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기회는 지상파 방송국 당 한 두개밖에 없으므로 여타의 오락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어야 한다. 하지만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러므로 무언가 특별한 기획이 필요하다.

앞서 말한 조성모로 돌아가 보자. 이번 4집 음반의 초반 판매가 부진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것인지  새로운 이벤트가 준비되었다.  지난 11월 21일부터 방영한 지상파 TV의 오락 프로그램에서 기획한 <장애 아동 돕기 특별 기획 - 희망마라톤 337.56 km>에 출연하기로 한 것이다. 본래의 계획은 11월 16일 부산에서 시작하여 전국 8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12월 12일 서울에서 피날레를 장식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니 매주 마라톤 풀코스인 42.195 km를 8번에 완주하는 계획이었다. 곱셉을 해보면 총 337.56 km(!)였다. 그 사이 <스포츠신문>에는 "조성모, 세상 떠난 장애인 형 있었다"는 제하로 조성모의 장애인에 대한 사랑이 각별함을 보도하는 기사도 나왔다(<스포츠서울>, 2001. 10. 27).  

그렇지만 조성모는 11월 16일 부산에서 완주에 성공한 뒤 탈진 증세를 보여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고, 급기야 23일 대구에서는 중도에 레이스를 포기하고 말았다. 진짜 마라톤 선수라도 2-3개월에 한번 정도 시도하는 마라톤 풀 코스를 매주에 한번씩 뛴다는 무리한 계획이 빚은 자충수였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지만, '희망 마라톤' 기획이 조성모의 전국 순회공연과 함께 기획되었다는 사실을 접하면 놀라움이 더할 뿐이다. 조성모는 부산에서 마라톤을 완주하기 사흘 전인 11월 13일과 14일에는 서울에서 공연을 가졌고, 20일과 21일에는 대구에서 공연을 가졌고 27일에는 대전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아무리 체력이 좋은 젊은이라도 공연만 하든가 마라톤만 하더라도 힘겨운 일이다. 이 정도면 가히 철인 8종경기보다 더한 체력을 요구하는 스케쥴이다. 조성모처럼 대형스타라도 '이보다 더 처절할 수는 없는' 일을 감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안쓰러운 마음마저 생길 뿐이다.

따지고 보면 조성모가 스타로 도약하게 된 중요한 계기 역시 한 오락 프로그램에서 이른바 '드림 팀'의 일원으로 나와 스포츠 솜씨를 보여준 것이었다. 그 팀을 왜 '드림 팀'으로 불러야 하는지는 지금도 묘연하지만, 이를 통해 조성모측의 '드림'이 실현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현재의 사건은 왠지 스타덤에 오른 바로 그 이유가 그의 발목을 잡은 것만 같다. 그 사이 시점인 11월 21일 조성모가 소속사를 이적한다는 '충격적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적의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앞으로는 이런 음악외적인 무리한 활동이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다.  

조성모의 이번 음반이 부진한 이유로 앨범이 처음 나올 무렵인 9월경 연예가의 핫 뉴스가 'g.o.d. 박준형 퇴출 소동'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9.11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사건을 예로 드는 사람도 있지만, 이로 인한 영향은 연예계 전체에 미치는 것이니 논외로 하자. '박준형 퇴출 파동'이 2001년 연예계 10대 화제에 들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경우는 라이벌 관계에 있는 가수의 가십성 화제로 인해 조성모측이 피해를 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혹자에 따르면 이런 화제를 라이벌 가수의 새 음반 발매에 맞추어 터뜨리는 것도 하나의 의도적 전략이라는 '의심'을 보이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늘 사실을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타이밍 치고는 묘했다는 생각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조성모와 g.o.d.가 작년부터 1, 2위를 다투는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 왔고, 양자의 기획사가 연예계를 쥐락펴락할 정도의 힘을 갖춘 곳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상상일지언정 어떤 '의혹'을 가져볼 수는 있다.

g.o.d.의 홍보전략도 조성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름 아니라 아직 인기가 정상급에 오르지 못할 무렵 TV에 등장하여 <god의 육아일기>라는 프로그램을 맡아서 진행했던 것이다. 게다가 god는 최근에는  자신들의 소속사인 사이더스(Sidus)가 제작한 영화 <화산고>의 홍보를 자임하고 있다. 12월 14일 <화산고>가 상영 중인 시내 극장에 나타나 영화 출연진과 함께 무대인사까지 했다. 그게 자발적인 홍보인지 아닌지 사람 속을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속보인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본인들은 영화에 남우 주연으로 출연한 장혁과 무명 시절 한 숙소에서 2년간 동고동락하는 등 끈끈한 사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런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가요계에서의 경쟁이 공정하고 투명하기보다는 '더티 플레이'가 많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게다가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이런 경쟁은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인다. 문제는 그럴수록 승자도 패자도 없고 제살깎기같은 상황이 된다는 점이다. 즉, 새로운 시장의 개척 없이 더 작아진 기존의 시장을 두고 서로 아웅다웅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럴수록 비공식적 비용은 더욱 올라가고, 다른 매체에 대한 의존만 심화될 뿐이다. 그럴 경우 가수라는 존재는 더욱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그건 가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도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물론 평범한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스타의 앞날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왠지 최근의 대중음악계를 보고 있으면 '공멸할 것 같다'는 우려가 앞선다. 투자한 돈으로부터 수익이 나오지 않으면 돈이 빠져나가면서 장기침체에 빠지는 것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법칙이다. 이런 우려 속에서도 그럭저럭 시스템이 굴러왔다는 것이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의 생각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외부의 충격'에 매우 취약한 시스템이라는 것은 경험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분명하다.

대안은 없을까. 조금 더 긴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한 가지만 상징적으로 말하자. 다름 아니라 언제부턴가 가요계에서는 '반항적인 연예인'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싸이나 유승준이 반항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적어도 1997년 이후 TV에 나오는 가수들은 하나같이 착하고 고분고분한 존재들이다. "TV에 나오는 음악은 허접한 댄스음악 뿐이며, 록이나 포크같은 진지한 음악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대중음악의 대부분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층계급 출신의 자기표현'이었지만, 최근 한국의 대중음악은 '있는 집안 자제들이 공부가 안 될 때 선택하는 수단'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농담삼아 말하자면 가수들에게 '헝그리 정신'이 사라진 것 같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부연하면 이때 헝그리 정신이란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음악을 잘해야겠다'는 정신이다. 번듯하게 합리화된 비즈니스 시스템이 음악인의 '헝그리 정신'과 결합된 나라의 대중음악이 장사도 잘 되고 예술로 존중받기도 한다. 반면 한국은 시스템도 구리구리한 데다가  헝그리 정신도 사라지는 최악의 결합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건 누구 책임일까. 음악 비즈니스 세력일까. 대중음악을 경시하는 예술계와 정부일까. 아니면 뮤지션 자신들의 책임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평론가들을 포함한 팬들 전체일까. 몇 년째 생각해 보지만 답이 없다. 그러니 불황이 계속될 수밖에... 이러다가 음악산업은 머잖아 독자적 산업이 아니라 다른 산업의 한 부서, 예를 들어 방송사의 '가무부'나 영화사의 '사운드트랙부'가 될 것 같다는 걱정에서 하는 말이다. 20011221

* [문화예술]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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