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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 대중음악, 대중문화

아동과 대중음악의 관계는 밀접하다

이번 호 [문화예술]의 특집주제과 '아동'이라고 해서 '아동과 대중문화'를 주제로 글을 쓰려고 했지만, 막상 글을 시작하려고 하니 갑자기 난감해진다. '요즘 애들은 대중문화에 너무 익숙해 있다. 어쩌구...'하면서 대충 메꾸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글을 진행하면서 '아이들보다 대중문화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 않다'는 자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는 경험적인 자각이다. 한 명의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관찰할 때 '아동'의 대중문화에 대한 지식이 '성인'보다 작다고 할 수 없다. 지식을 얻는 주요 경로가 TV나 비디오같은 영상매체일 경우에는 아동의 지식이 성을 능가한다. 단적인 예로 연예인의 이름을 줄줄 꿰는 딸아이에 비한다면 나의 경우 '대중문화 평론가'라는 직함이 부끄럽게도 신인급 연예인들의 이름은 거의 알지 못한다.

이런 현상이 한국의 경우에만 특이한 것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이 글의 주요 주제인 대중음악의 경우 아동이 음악과 맺는 관계는 매우 밀접하고, 이는 '글로벌'한 현상이다. 불행히도 이런 사실에 대한 한국에서의 체계적 조사는 발견할 수 없으므로 유럽에서 이루어진 조사를 이용하여 논의를 전개해 보자. 즉, 오늘은 이 글의 내용을 소개하고 유럽과 한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적하는 식으로 진행할 것이다.   아래 인용할 부분은 1995년 브뤼셀에 설립된 EMO(European Music Office)에서 1996년에 발간한 자료집 [Music in Europe]에 수록된 한 연구에서 발췌된 것이다. 사족으로 미리 덧붙인다면 영어의 'teenage'라는 단어가 13살에서 19살까지를 지칭하므로 이들이 말하는 '아동(children)'이란 12살 이하를 말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대중음악(록과 팝)에 관한 관심은 일찍 시작된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6살 때까지는 동요가 인기 있지만, 4살 이상의 아동들 중 60%가 이미 대중음악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7살에 이르게 되면 40%가 음악 아티스트(한국말로는 '가수')의 사진을 벽에 붙이고 있다. 9살 경에 이르면 아동의 관심은 틴에이지의 음악 세계로 전적으로 이동한다. 아동들이 그들의 부모의 음악적 선호과 그들의 선호를 구분하는 것이 이 무렵이다. 이 무렵에는 부모가 특정한 음악 스타일을 거부하는 것도 인지된다. 대부분의 경우 12살에 이르면 대중음악(록과 팝)이 아동들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고, 장르의 구분이 선명하게 내려지고 선호들이 명료해진다"(Keith Roe, "Music and Identity among European Youth", in [Music in Europe], 1996)

이런 조사를 통해 이 연구자는 음악 취향의 발전에서의 분기점이 "7살에서 9살 사이에" 일어난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와 함께 8살 정도만 되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 부모나 교사로부터 형제(자매)나 사촌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또한 아동기에는 남자보다 여자들이 일찍 대중음악에 대한 선호를 드러낸다는 '성차'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아동은 대중음악의 가사를 이해할까

이런 이야기는 우리에게는 새삼스럽지 않다. 앞서 인용문에서 '록과 팝'을 '가요'로 대체한다면 요즘 한국의 아동들의 음악적 선호나 취향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국인이 '10대'라고 지칭하는 단어는 통상 '중고생'을 지칭하지만 이들의 음악 취향은 '7살에서 9살 사이에' 이미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고생 시절에는 선호와 취향이 확실해지면서 '표현방법'이 적극적으로 되는 것일 뿐이다. 초등학교 2-3학년만 되어도 대중가요의 가사와 멜로디를 따라 부르고 대중음악에 관해 서로 이야기하는 일은 과거와 달리 몇몇 특별한 아이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이런 '요즘 아이들'에게 동요란 '애기들'이나 듣고 부르는 '유치한' 것이며, 학교의 음악시간에 배우는 노래들은 '심심한' 것 이상이 아니다. 조금 도발적으로 말하면 요즘의 아동들에게 '동심'이란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 의문이 있다. 대중음악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거나 멜로디를 흥얼흥얼 따라부르는 것은 그렇다 치고 아동들은 가사에 담긴 메시지나 내러티브를 이해하는 것일까. 대중가요의 가사 대부분은 '성인의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것이고 이는 한 세기가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 속성이다. 그렇지 않은 대중음악들도 존재하지만 이런 음악들은 아동이 접할 수 있는 매체에서 접하기는 힘들고, 이런 음악들의 가사 역시 아이들이 이해하기는 더 힘들므로 지금의 논의에 큰 지장은 없다. 이들은 그런 가사를 '이해'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멋도 모르고' 따라 부르는 것일까.

아마도 이 점이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일 것이다. 한편에서는 아동들이 대중음악을 향유하는 것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음악에 때이르게 노출되는 것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이런 주장을 조금 더 밀고 나가면 대중음악이란 기본적으로 상업적이고 유해한 음악이며, 따라서 '좋은', '가치있는' 음악을 감상하려는 욕망이나 감상 능력을 없앨 뿐이라는 지적이 나올 것이다. 이는 플라톤(Platon)이나 공자(孔子)까지 소급할 수도 있는 주장이다.

그 반대의 견해도 있다. 다름 아니라 지금 인용하고 있는 글의 주장이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해 보자.

"아동들이 가정 내에서 자신의 사적인 자기영역을 창조하는데 있어서 음악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는 부모들이 훑어보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 음악을 듣는 것은 아이들이 혼자 있을 때의 중요한 전환(diversion)이고, 그들이 외롭고 슬프거나 현재의 상황을 순간적으로 잊고 싶을 때 선택하는 것이다. 그 자체로서 음악은 아이들을 위한 중요한 '무드 콘트롤(mood control)'을 수행한다"

이런 견해는 '유럽의 가정'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문화적 컨텍스트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연구는 아동들에게 음악이 차지하는 중요한 기능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음악의 미학적 질을 가리는 일 못지 않게 음악의 문화적 기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음악의 여러 장르들 사이에서 들어야 할 음악('좋은 음악')과 듣지 말아야 할 음악('나쁜 음악')을 구분하기보다는 아동들에 의해 '어떤 음악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의) 클래식 음악이나 국악처럼 '좋은' 음악이라도 따분하도록 느껴지게 들려주는 것은 아동의 '무드'를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다. 반면 대중가요처럼 '하찮은' 음악이라도 아동의 무드를 전환하기 위해 유효하게 사용될 수 있다.

이런 견해를 수용한다면 '아동은 음악적 선호나 취향이 미성숙한 상태이고 따라서 성인의 지도 하에 두어야 한다'는 경직된 발상보다는 아동 역시 이미 존재하는 여러 가지 음악 형식들을 자신의 용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주체라는 점을 인정하는 유연한 발상을 가져야 할 것이다. 즉, 그들 역시 나름대로 '좋은'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을 구분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중문화가 포화상태에 이른 것 같은 현대 사회에서는 문화형식에 접근하는 경로는 도처에 널려 있고 아동들은 그들 사이에서 '좋고 나쁨'을 결정해야 하는 고독한 상황에 내던져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앞서 제기한 문제가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다. 앞서 인용한 문구의 키워드인 '무드 콘트롤'이라는 음악의 기능은 청소년이나 성인들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성인들에게는 적절한 음악적 텍스트가 있는 반면 아동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위 글의 저자 역시 "여기서 고려할 문제가 있다. 아동들은 그들보다 나이가 많은 수용자를 겨냥한 세계 속으로 증발된다는 점이다. 그들은 들려오는 가사를 이해하는데 실패한다는 점이다"라는 말로 모호하게 마무리하고 있다.

이는 아동들의 가사에 대한 '독해력'이 뒤떨어져서라기보다는 그들의 정서를 표현하는 가사가 없기 때문이다. 한글을 깨친 아이들이 문법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중가요의 가사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아동들은 음악의 세계에서 가장 '왕따'당하고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20세기 음악의 역사를 보면 1950년대 로큰롤이 탄생하고 뒤이어 틴아이돌 팝이 탄생하면서 '청년'과 '청소년(틴에이저)'들은 음악 수용자의 주류로 부상했다. 성인용(및 노인용) 음악과 아동용 음악(동요)은 이전부터 존재해 왔으므로 이제 유일하게 소외된 층은 '아동'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동요와는 구별되는 '아동 음악'이 하나의 장르로 확립되어 '시장'을 성립시킬 전망은 크지 않으므로, 아동들은 당분간 10대들을 겨냥한  음악을 자신의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일을 당분간 반복하게 될 전망이다.

그렇게 본다면 최근 한국 대중음악의 '아동화' 현상은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음악산업은 '청년 시장'과 '10대 시장'에 이어 '아동 시장'이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이들을 잠재적 소비자로 개발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를 상업주의라고 비난할 수는 있지만 그걸 막는 힘이 도덕주의는 될 수 없기 때문에 현재의 아동의 '음악 문화'의 난점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동과 대중문화'라는 주제는 대중문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라는 일반적 주제로 소급된다.  

아동이 문화적 해석력을 갖기 위해서는

대중음악과 관련된 앞서의 논의는 대중음악 이외의 대중문화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인쇄 매체의 경우 학습이나 독서와 관련되어 '아동용 매체'가 많이 개발되고 있지만, 한국에서 이는 '여가'가 아니라 '노동'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할 수밖에 없다. TV의 경우 아동용 프로그램들은 요즘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기에는 지나치게 '전통적'이다. 예를 들어 '만화영화'의 경우 초등학교 3-4학년만 되어도 큰 흥미를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아동용 프로그램들은 특정 시간대에 편중되어 있고 따라서 드라마나 시트콤 같은 '성인용' 프로그램들을 부모와 같이 시청하는 일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 경우에도 아동들은 드라마나 시트콤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할 것이고, 그를 통해 자기세계를 구성할 것이다. 어쩌면 TV 드라마들이 갈수록 '만화'로 변해가는 현상도 앞서 언급한 대중음악의 아동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뉴 미디어인 인터넷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각종 상업 사이트에 들어가면 '애들도 쉽게 할 수 있는' 메뉴들을 개발하느라 여념이 없다. '올드' 미디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 뉴 미디어들이 '애들은 쉽게 하는 반면 어른들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정도일 것이다. 이런 사소한 차이를 무시한다면 각종 매체에는 '아동용 대중문화'라고 할 만한 것은 없는 반면 아동이 나름의 방식으로 수용할 수 있는 대중문화는 여기저기 널려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아동들로부터 대중문화를 차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중문화의 수용을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아동기에는 모방 심리가 강하고 비판적 사고가 부족하다'는 것이 우리의 통념이다. 이런 통념이 상대적으로 타당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으므로 아동들을 대중문화에 무차별적으로 노출시키는 것도 적절한 대안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문제는 '대중문화를 비판하는 훈계'를 가지고는 모방 심리를 치유할 수도 없고 비판적 사고를 배양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아동들의 해석 능력을 배양하는 것 이외에는 적절한 대안이 없어 보인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는 상호적이므로 이는 부모에게도 적용된다. 부모의 역할은 엄격한 제재도 무원칙한 방임도 아니고 친절한 해석일 것이다. 물론 해석자 역할을 충실히 한다고 해서 자기 자식이 잘 되라는 법은 없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자식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나을 것 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식과 나 사이의 음악적 취향의 차이를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는 '대중문화의 아동화' 현상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일이다. 아동들의 대중문화 현상이 제고되어야만 이런 '문화의 아동화' 현상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하라고 애들을 '잡는' 최근 한국의 현실에서 이런 말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는 '냉소적'인 말로 글을 마칠 수밖에 없다. 성인들이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유흥업소에서 '순수한 오락'을 찾는 것과 비슷하게, 공부에 지친 아동들은 TV와 인터넷에서 순수한 오락만을 찾아 헤매이고 있다. 그건 대중문화가 특별히 상업적이고 유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현대 한국의 문화적 지형 자체가 그렇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대중문화에 대한 해석력의 제고' 운운하는 이 글의 주장이 얼마나 현실적일까는 의문이다. 그저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라는 구호가 아직 사라진 것은 아니기에 던져보는 말 이상은 아니다.

* [문화예술]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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