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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요 죽이기'의 음모? '가요'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말자'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논란이 많다. 이 글을 쓰는 사람 역시도 저 단어는 별로 탐탁치 않다. 하지만 별 수 없다. 내가 탐탁하게 생각하든 탐탁치 않게 생각하든 그건 개인적 견해일 뿐이고, 사람들이 저 단어를 사용하는 현실 앞에서 용빼는 재주는 없다. 그런데 잘 나가는 줄로만 알았던 가요가 '죽었다'는 말들이 들린다. 배후에 무슨 '음모'가 존재한다는 말까지 있다. TV만 켜면 지상파에서는 '꿋꿋이'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케이블 TV의 전문음악 채널에서는 뮤직 비디오가 줄창 나오고, '한류'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국위도 선양하고 있는데, '가요가 죽었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사실 '죽었다'라든가 '죽이기'라는 말은 너무 선정적이다. 그래도 그런 말이 있으니 좀 알아보기는 해야겠다. 이건 미스터리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것과 비슷하다. 진범이 누구인지를 찾기 위해 수상한 용의자들을 불러 모아 꼼꼼히 조사해야 하고, 알리바이가 진실인지 거짓인지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 전에 뭘 보고 가요가 죽었다고 말해야 하는지를 간략히 짚어 보아야 할 것 같다. 2. 뭘 보고 가요가 죽었다고 하는가 가요가 숨통이 끊어진 것은 아니라고 해도 '빈사 상태'에 빠졌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은 많다. 이건 무엇보다도 가요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더 잘 아는 것 같다. 한마디로 요즘은 음반이 잘 안 팔린다. 1996년 경 4,000억원을 넘으면서 절정을 이루었던 한국의 음반시장은 IMF 사태로 된서리를 맞더니 좀처럼 그때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통계상으로는 시장 규모가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건 '금액' 규모로 따진 것이고, '개수'로 따지면 그렇지가 않다.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라 값비싼 CD의 비중이 증가하고 값싼 MC(카세트 테이프)의 비중이 작아지다 보니 팔리는 음반 개수가 줄어도 매출액은 증가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시장이 침체를 거듭하다 보니 요즘은 한 달에 5만개만 팔리면 10위 안에 들고, 1만개만 팔리면 30위권에 든다. 이 중에서 각종 편집음반들, 예를 들어 [연가]같은 컴필레이션 음반이나 [명성황후]같은 사운드트랙을 제외한다면 순위는 더 올라갈 수도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발매되는 음반 종 수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1996년에는 1년에 1,200 종 정도의 음반이 발매되었다. 하루에 서너 종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요즘은 500종이 넘는 것 같지 않다.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양적인 추세야 그렇다치고 질적인 변화는? 이는 주관적 취향이 개입할 문제이지만 객관적으로 지적할 수 있는 점 하나가 있다. 한마디로 시장이 침체인 상황에서는 신인이 등장할 여지가 그만큼 작다는 것이다. 현재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가수들 대부분은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한 '베테랑(?)'들이다. 브라운 아이즈, 성시경, 장나라 정도가 예외일 뿐이다. 이런 상태에서 새로운 사운드로 귀를 확 트이게 만드는 음악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결국 현재 가요가 죽었다는 말은 가요가 '문화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의 한 단면이다. 그러니 '죽이기'니 '음모'니 라면서 선정적으로 말하지 말고 이렇게 가요에 대한 평판이 나빠진 이유를 따져 보도록 하자. 누가 가요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3. 혹시 기성세대의 기득권자들이? 여기서 내 나름대로 '가요'를 정의해 보겠다. 요즘 가요란 'TV에 나와서 화려한 옷을 입고 조명을 받으면서 춤을 추는 가수들이 부르는, 아니 립씽크하는 노래'일 것이다. 이런 가요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비판하는 견해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이들 대부분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평론가이거나 신문사나 방송사에 있는 기자들 중에서 '양심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것으로 자부하는 사람들이다. 잡지나 신문 등 지면에 글을 쓰거나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가요계의 비리를 고발하는 것'이 이들의 주요 실천이다. 아마도 그 절정은 지난해 여름 MBC의 [시사 매거진 2580]에서 <한·일 비교, 연예인 대 매니저>를 방영한 사건일 것이다. 방영 직후 제작진은 연제협(한국연예제작자협의회) 측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그때 가요계를 대변한 연제협은 '나름대로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을 활성화시키 위해 애쓰는 음반산업 관계자들을 MBC 측이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이들은 위 프로그램 같은 비판적 보도가 가요에 대한 평판을 악화시키고 이는 결과적으로 '가요를 죽이는' 것으로 인식했던 모양이다. 유심히 관찰하면 현재의 10대 청소년 중심의 '가요'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 대부분은 이른바 '386' 혹은 그 이상의 숫자로 불리는 기성세대다. 이들 386세대는 한때 대중문화의 주역이었지만 지금은 '바쁘게 살아가는' 탓에 주변으로 밀려나 있다. 당연히 이들은 10대 중심의 가요에 큰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이들이 가요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보내고 때로는 '흠집내기'도 시도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가요 죽이기의 주범이라는 '혐의'를 둘 수는 있다. 여기에 그동안 이들을 중심으로 록이나 재즈나 포크 등 '흘러간' 음악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도 추가적 혐의를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이 가요를 비판하는 것이 혹시 가요에 대한 경멸은 아닐까. 곰곰 생각해 볼 문제다. 어떤 지적 허영심이나 엘리트주의가 작용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가요계가 잘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들이 '주범'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할 것 같다. 이들이 들을 만한 가요가 충분히 공급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될 것이다. 4. 그렇다면 방송사 예능국이? 앞서 가요에 대한 정의를 상기하면 'TV가 음악을 지배하는 현상'이 현재 문제의 근원으로 보인다. TV는 문화예술보다는 연예오락에 가깝고 그건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꽤 중요한 차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혹시나 방송관계자들이 가요에 대한 경멸을 자초한 것은 아닐까. 최근 폭로되는 사실을 보면 이에 대한 혐의를 둘 만한 소지가 다분하다. 다름 아니라 '홍보비'라고 불리는 '촌지' 문제다. 한 단체의 조사 자료에 의하면 대형 음반사가 쓰는 홍보비의 규모는 케이블 방송이 1천 5백만 원, 라디오 방송이 3백만∼5백만 원, 3대 지상파 TV 방송사가 1억 2천만∼2억 원이라고 한다. "한 라디오 PD는 커피 한 잔 마셔주는 값으로 300만원을 요구했다"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이런 관행이야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이지만 "도대체 그런다고 가요가 죽나요?"라는 질문이 나올 것 같다. 맞다. 그렇지만 꼭 '죽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불공정한 거래를 통해서 '나쁜' 가요가 '좋은' 가요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좋은' 가요를 만드는 작곡자나 그걸 부르는 가수는 그만큼 맥이 빠지고 결국은 음악 활동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으니, 적어도 '일부의' 가요를 죽일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노래 못하는 가수'가 양산되어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요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들은 가요에 대한 평판을 악화시켰다는 책임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이건 '시스템'의 문제이므로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개혁해야 하는 것이지, 사람을 때려잡는 문제로 끝난다면 하나마나라는 점이다. 나아가 혹시 가요들 사이의 미학적 위계를 설정하는 일도 별로 바람직하지는 않아 보인다. 시민 운동이나 관(官)의 개입은 가요 죽이기를 '막는' 것에서 그쳐야지, '우리가 침체의 늪에 빠진 가요를 살리겠다'고 오버해서는 곤란하다. 솔직히 말하면, 촌지관행의 축으로 꼽히는 몇몇 연예 PD나 신문기자들은 이 기회에 영원히 매장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다. 그들이 오뚝이처럼 재기한다면 그건 마치 한국 정치판을 보는 기분일 것 같으니까... 5. 음반산업 관계자들은?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제작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연예인 매니저'이지 '음반 프로듀서'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싸잡아 말하는 것 같지만 이 분들은 '음악'을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 연예인을 스타로 만들어서 돈을 벌겠다는 꿈이야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음악'에 신경쓰는 면이 좀 있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다. 제작자(=매니저)가 하는 일이란 행정적인 일들이다. 얼굴 반반한 가수들을 발탁하고, 작곡자와 편곡자로부터 곡을 사고, 프로듀서를 불러와서 스튜디오에 앉히고, 안무사를 고용해서 플로어에서 애들을 가르치게 하고, '코디'를 수소문해서 의상과 메이크업을 갖추는 등등. 아, 물론 음반이 나오면 방송국을 찾아가 '홍보'와 '접대'를 해야 한다. 제작자가 성공을 거두면 '기획사'를 차린다. 그런데 이 기획사는 이제 '음반 프로덕션'이 아니라 '토털 매니지먼트사'다. 탤런트도, 가수도, 영화배우도 망라해서 거느린다. '음악적 전문성'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제작자도 가수도 음악에 별 관심이 없다. 이건 가수들 스스로 더 잘 안다. 핑클의 이효리는 '연기자'가 꿈이라고 하고, 싸이의 꿈은 '음반 제작자'라고 한다. 현재의 가수들 중 '뮤지션'이 되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고, 10년 뒤에 가수로 남아있으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다. '가요'가 죽는지는 모르지만 '음악'이 죽어가는 건 틀림없다. 가요의 주체가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데 누가 그걸 존중해 주겠는가. 6. 팬들은 아무 잘못이 없나? 소비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력한 존재라는 것이 통설이다. 그런데 요즘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다름 아니라 가요의 소비자인 10대들로 구성된 팬 클럽의 힘은 막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우울한 점이기도 하다. 다름 아니라 한국에는 10대들의 음악 문화밖에 없다는 점이다. 아, 물론 이런 지면에다 밝히기 칙칙해서 그렇지 성인들의 음악 문화는 따로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10대 청소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인이라고 보기에도 힘든 '2025세대'다. 그 중에는 계속 '10대처럼' 사는 사람도 있을 테고, 아니면 벌써부터 '어른들과 함께' 살아가는 노하우를 익힌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서 개인적으로 행복하면 할 말 없지만, '청년문화'라든가 '대학생문화'라는 게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뭔가 아쉽다. 이런 아쉬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청년문화의 핵심적 요소가 대중음악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더더욱 커진다. 나이든 사람의 회고담에 지나지 않지만 1970년대에는 통기타(어쿠스틱 기타), 1980년대에는 일렉트릭 기타를 매고 다니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였다. 그건 별 것 아니었는지 몰라도 이들은 대학 캠퍼스를 비롯하여 젊은이들이 모이는 공간에서 '아마추어적인 문화적 실천'을 이끌었던 존재들이었다. 이들의 실력이 별 볼 일 없었더라도, 또 '똥폼' 잡으려는 것에 지나지 않았더라도, 이런 실천들이 당시의 음악문화의 저변을 이루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요즘 보면 음악은 '음악을 직업으로 삼을 사람'만 열심히 하고(때로는 '유학'까지 간다), 나머지는 음악의 생산과는 벽을 쌓은 채 그저 소비만 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소비 행위들 사이에도 벽이 존재한다. 내 주위의 2025세대를 보면 '10대 취향의 가요를 듣는 보통 팬 아니면 영미의 팝 음악과 국내 인디 음악만 찾아 듣는 매니아'이고 둘 사이에 원만한 소통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통 팬은 음악을 TV로 듣고 매니아는 CD플레이어로 들으니 대화가 잘 이루어질 리가 없다. 어떤 쪽이든 20대에게 '가요'란 어쩌다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놀고 오는 것으로 그치는 수단일 뿐이다. 음반을 구입한다고 해도 서너 달 듣다가 치워 버린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서 R.ef나 노이즈의 음반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 있는가.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가요를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팬들 스스로도 마치 일회용 휴지 사용하듯 가요를 대하는데 가요에 대한 세간의 평판이 좋을 리는 없다. 청년문화든 뭐든 이제 와서 갑자기 그걸 만들자고 외친다고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한국에서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자기표현'이 음악 분야에서는 유달리 작다는 점은 아쉽기만 하다.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해서 말한다면, '취향 없이' 살아가는 것도 가요 죽이기에 일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이 글처럼 가요를 '10대 취향의 대중음악일 뿐'으로 정의해도 충분한 지금의 현실을 극복하지 않는 한 가요는 계속 죽어갈지도 모르겠다. 그게 비록 2025세대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아, 그런데 누가 가요를 죽였다고? '우리 모두가 공범'이라는 모호한 말로 마무리하도록 하자. 단 범죄의 경중을 가려서 책임이 큰 사람부터 차례대로 '자수하여 광명 찾는' 아름다운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건 '가요를 살리자'는 애국적 차원의 결의가 아니라 삶을 '문화적으로' 살아가자는 인간적 차원의 호소다. * [TTL] 매거진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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