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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논란을 빚었던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표절(plagiarism)' 문제였다. '표절 시비 발생→ PC 통신 등에서의 논란 → 여론 재판 → 가수와 작곡가의 잠적 → 몇 달 뒤 슬쩍 컴백'이라는 수순으로 문제의 발단부터 해결에 이르는 관행까지도 정착했다. 표절은 한국 대중음악의 창조성과 실험성의 부재를 입증하는 사례이고, 더군다나 표절의 대상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외국의 음악이라는 점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런데 표절이 왜 1990년대 들어서 '이처럼 쉽게' 이루어졌는가는 질문해봄직한 일이다. 물론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기술적 조건'의 변화가 결정적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이는 '디지틀 테크놀로지의 발전'이라는 말로 총칭될 수 있다. 이의 파장은 의외로 깊고 넓으며, 표절물 뿐만 아니라 창작물 전체도 예외일 수 없다. 1970년대 이래 신시사이저와 샘플러 등의 전자 '악기'의 개발 뿐만 아니라 1982년 전자 악기 간의 통신 규격인 MIDI(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가 체결되면서 디지틀 테크놀로지는 음악의 생산과 수용에 깊숙이 개입하게 되었다. 음악은 점차 순수한 '정보', '데이타'가 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 결과 '작곡'이라는 예술적 과정과 '신호 처리'라는 공학적 작업도 통합되었다. 아날로그 레코딩 단계에서 테이프를 통해 멀티트랙킹(multitracking)하는 기법도 한때는 놀라왔지만 이제는 과거의 유물일 뿐이다. 레코딩된 각 파트는 컴퓨터나 시퀀서의 기억장치에 그대로 '저장'되고 따라서 각 파트를 다른 파트와 동시에 재생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믹싱을 비롯한 사운드 프로듀싱은 그자체 하나의 '예술'이 되었다. 비교적 최근의 음악적 실천인 하드 디스크 레코딩(및 에디팅) hard disc editing은 한 걸음은 더 나아간다. 이를 위해 고가의 장비가 산적한 스튜디오에 갈 필요도 없다. 퍼스널 컴퓨터와 몇 가지 주변기기, 그리고 관련 소프트웨어만 구비하면 집에서도 가능하다. 컴퓨터라는 가상 공간 속에서 각종 음악 정보들이 이펙트들을 통해 잘라 붙이고, 이리저리 배열하면 음의 조합은 무한해진다. 워드 프로세서가 글쓰기라는 실천에 미친 영향과 비슷하게 이제 '완성본', '최종본'은 사리지고,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모사본(이른바 '리믹스')들이 무수하게 탄생한다. 힙합이나 테크노 같은 음악은 이런 기술적 도움 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고, 다른 대중음악 장르도 '정도의 차이'가 있는 정도다. 이는 단지 음악 생산에 그치는 문제도 아니다. mp3나 리퀴드 오디오 등의 최종 소비자용 레코드 포맷은 이미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일반화되어 있다. 음악은 컴퓨터를 통해 '다운로우드'받은 뒤 마우스를 '클릭'해서 들으면 된다. 싫증나면 '리무브'하면 그만이므로 '나중에 언젠가 듣겠지'하는 마음으로 레코드를 신주단지 모시듯 보관할 필요도 없다. 다운받은 파일을 믹싱하고 마스터링하여 자기 취향껏 즐길 수도 있다. 이른바 디지틀 배급(digital distribution)은 이미 궤도에 올라 있다. 물론 이상의 장미빛 환상은 '잠재적 가능성'에 그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음악이 '산업'에 의해 생산되고 매스 미디어에 의해 '전파'되는 한, 음악산업과 대중매체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현재로서 이에 대한 답변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 음악산업의 이해를 대표하는 미국 음반협회(RIAA)의 경우 mp3 등 소비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결사 항전의 의지를 보이고 있고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정작 자기들은 샘플링 등 디지틀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돈을 벌어들이면서 말이다. 또한 뮤지션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출판이나 저작권 관련 단체들도 권리를 주장하고 있고, 음악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의 이해관계도 끼어들어간다. 표절 문제로 돌아가서 글을 마치자. 표절이란 오직 값싸고 쉽게 음악을 만들어서 거대한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이는 테크놀로지를 보수적으로 사용하여 대중음악의 '기성의 관행'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이다. 위와는 달리 새로운 음향의 가능성을 창조하기 위해 테크놀로지를 사용한 사례는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고, 한국의 경우도 아직은 드물지만 없지는 않다. 결국 음악에서 테크놀로지가 개방한 가능성을 개방하는가 억압하는가, 소수가 독점하는가 다수가 향유하는가는 테크놀로지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의 '문화'의 문제다. 990419 * <미래의 얼굴>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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