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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영, '벤처 음악인'의 끝없는 도주

1995년 삐삐 밴드의 'TV 사기극(hype)'이 진행되고 있을 때 강기영의 모습을 알아보는 일은 흥미 만
빵이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해서 5년 전 나는 그가 어떤 록 콘서트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
을 보았다. 또 5년 뒤인 지금은 극장 스크린에서 그가 조각한 사운드를 듣고 있다. 다들 알겠지만 영
화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거짓말]이다. 강기영은 그렇게 한국의 대중음악에 대해 '거짓말'을 해대고
있다. 그는 영원한 '벤처 뮤지션'이다.

흰소리같지만 강기영은 내가 '평론'이란 일을 하면서 주절주절 말로 해댄 것을 '소리'로 만들어 내었다.
'후진국'의 평론가의 속물적 쾌락이 '우리나라 애들은 이런 걸 왜 못할까'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써대는
거라고 하면, 그는 정말 '재수없는' 인간이다. 의사소통용 용어를 사용하여 정리하면 '정통 록에서 펑크
록으로, 펑크 록에서 테크노로'라는 부단한 이동은 강기영에 의해 '파악'되고 '실행'된다. 그것도 단지
유행을 따르는 것 이상의 내공을 섞어서 말이다.  

'잘나가는 세션 맨'으로 그냥 있었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없는 그는 왜 이렇게 변화를 '일상처럼' 추구
하는가. 그게 고상하고 찬란한 예술혼의 발로인지 아닌지는 그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조금이나마 명확해 보이는 것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못할 것 같은' 과(科)에 속한다고 보이
는 점이다. 시나위와 H2O로 시작하여 삐삐밴드와 삐삐롱 스타킹을 거쳐 DJ 달파란으로 바뀌는 과정
은 싫은 걸 그냥 하고 있지는 못하는 그의 성격의 자연스러운 산물이지 그 역은 아닌 듯하다. 이걸
두고 일관성을 결여한 변덕스러움이라고 평하거나 '아방가르드 예술의 미래로의 도주(fuite en avant)
에도 함정은 있다'라고 평하는 것은 '평론가'의 일이지 일반적 관심은 아니다. 그래서 그의 테크노 앨
범 [휘파람별]에 대해 '조금 더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이라는 말이 나오더라도 그에 대한 관심은 좀
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강기영은 '음악을 들을 때 후속작업이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음악인'이라는 이
야기를 괜히 빙빙 돌려 얘기했나보다.

하지만 찬사 일색으로 끝나면 맹숭맹숭하니 시비 하나. 태생으로 인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언더 끼'
때문인지 강기영의 쇼는 '완전히 홀딱 벗는' 건 아니다. 그와 절친한 김형태(와 황신혜 밴드)의 막가파
식 음악과 다른 점이다. 파격과 실험이 신중한 제어를 동반하는 모습은 때로는 얄미워 보일 때가 있
다. 아마도 그가 '히트 가요'까지 만들어낸다면 정말 입을 딱 벌릴 것 같다. 그래서 불길하다. 올해 안
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아님 말고.

* 웹진 [어금니]에 게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