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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기: 김민기론, 김민기놈, 잡놈, 짬뽕, 딴따라

1. intro

'공익 광고'라는 게 있다. 있는 줄 누가 모르냐고? 거기에 김민기의 노래가 나온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꺼냈을 뿐이다. 1998-9년 경에는 "상록수(원제: 저푸른 하늘에 푸르른 솔잎처럼)"가 나오는 공익광고의 주연은 박세리였다. LPGA라는 국제 골프대회에서 공이 연못에 빠지자 신발을 벗고 맨발의 투혼을 발휘하는 유명한 장면이다. 이른바 '역경을 극복하고 최후의 승리를 차지하는 당당한 한국인의 모습'이다. 그런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사운드트랙으로 김민기의 노래가 사용되었다. 웅장하고 비장한 사운드와 함께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 헤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라는 양희은의 힘찬 목소리는 영화 비평 용어를 빌면 '서술적으로' 삽입되었다. 박세리와 김민기라...


다들 알다시피 이 공익광고가 등장한 것은 'IMF 구제금융'이라는 국난(이라고 간주되는 사건) 직후다. 김민기의 노래가 '국난 극복의 국민가요'가 되었다? 노래에 대해 한 명의 수용자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소유권을 주장할 필요는 없지만 아이러니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사실확인이 불가능한 루머지만, 박세리의 튼튼한 두 다리와 억센 팔뚝은 아파트 15층을 오르내리게 한 아버지의 훈련방법 때문이라고 한다(그녀의 아버지가 '터프'한 직종에 종사한다는 루머는 무시하자).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딴 선수를 소개하면서 익히 들어왔던 한국식 성공담이다. 이렇게 '최선을 다해', '아득바득', '하면 된다'는 식의 이야기에 질리도록 질린 나로서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민기의 노래는 최근에도 한 곡 더 공익광고에 삽입되어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공중파를 타고 있다. "내 나라 내 겨레"라는 노래다. 정확히 말하면 '김민기 작사, 송창식 작곡'이고, 이번에도 노래는 김민기가 아니라 송창식의 몫이었다. 카세트에서 배터리가 방전되자 노래가 느리적거리게 나오다가 다시 배터리를 갈아끼운 뒤 제대로 나오는 장면이다. 힘찬 기타(아마도 '거트 기타' 혹은 '클래식 기타')의 스트러밍과 더불어 젊은 시절의 송창식의 우렁차면서도 청아한 목소리가 다시 흘러 나온다. 문제는 노래가 잘 나오지 않던 순간은 정치불안, 노사분규 등 이른바 '집단 이기주의'의 현상들을 지칭한다는 점이다. . 김민기가 "공장의 불빛"이라는 '노래극'을 창조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때 민중가요였던 김민기의 노래들이 관제가요로 이용되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이런 말을 꺼낸 것일까. 물론 여기에는 단순하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 현재 한국의 정권의 성격을 규정하는 문제부터 (쉽게 말해서 좋은 정권인가, 나쁜 정권인가) 현대사회에서 노래(혹은 음악)의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의  복잡한 관계도 해명해야 한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좋았던 시기'가 지나갔다는 점이다. 그걸 서양의 비평 담론을 이용한다면 '저항과 예술이 함께 했던 시기가 지나갔다'고 해도 좋고, 아니면 단순하게 세월의 흐름을 음악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변화시킨다라고 해도 좋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저녁 뉴스 시간에 김민기의 모습이 나오는 장면을 보았다. 장소는 한국이 아니라 독일이었다. 많은 그가 각색과 연출을 맡은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독일 공연 소식이었다(다들 알다시피 이 작품은 독일 작품의 번안물이다). 그곳의 기자와 평론가들이 김민기의 작품 해석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한때 민주화 투사가 직업적 연극인으로 변신한 사실에 대한 인터뷰가 쇄도한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하지만 그가 '음악인'으로부터 '연극인'으로 변신한 게 언젯적 이야기인데.... 또 '변신'했다는 것은 맞는 말일까. 그러다가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는 왜 '번안물'에 대해 그토록 애착을 갖는가라는 질문은 부차적이다. 나의 의문은 그가 왜 '직업적 음악인'의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혹은 못했을까)?'라는 것이다. 이는 그가 겪어온 삶이나 현재의 지위를 고려한다면 부당하고 황당한 질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질문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면, 어떤 '환상'을 안겨주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게 순전히 개인적 차원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보편적인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2. 어떤 싸이키델리아에 대한 회상  

김민기에 대해 논하는 것은 '감히'라는 단어를 머리 속에 맴돌게 한다. 1970-80년대에 대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럴 것이다. 게다가 자의반 타의반 '평론가'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사람이 '예술가'에 대해 갖는 감정은 그럴 수 밖에 없다. 남이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일이 그다지 훌륭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과거를 떠올리는 편리한 방식을 택하게 된다.

아마도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교 1학년 때일 것으로 기억난다. 대학교에 다니던 형 덕택으로 나는 사춘기 시기에 김민기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대학생들만의 '은어'였던 그의 노래를 일찌감치 접했던 사실은 나중에 대학교에 들어갔을 마치 무슨 특권처럼 작용했다. 그건 그렇고... 보라색 표지에 점묘화처럼 그려진 젊은이의 초상을 담은 음반 표지는 내게 선명하지 않은 이미지에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느꼈던 경험을 안겨주었다. 왜 그렇지 않았는가. 1980년대 중반까지 나온 한국 대중음악의 음반 표지는 거의 실물 크기만한 가수의 '증명사진'을 담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음반 표지는 가수의 얼굴을 담고 있기는 했어도 모호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지질이 나쁜 종이를 사용해서 음반 표지 가장자리는 너저분하게 닳아 있었지만, 그 모습마저도 이미지의 풍경의 하나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천일사표 전축에 음반을 걸었을 때 들려온 플루트 소리는 내게 처음으로 몽환적 음향을 들려주었다. 곡의 제목이 "아하 누가 그렇게"라는 점이나 플루트를 연주한 사람이 정성조였다는 점은 나중에나 줏어들은 정보였을 뿐이다. "친구"의 그 유명한 기타 인트로가 나올 때 은은히 깔리던 오르간 소리는 당시의 '진보적' 록 음악의 상징이었기에 다시금 나를 몽환에 빠뜨렸고, 마침내 "바람과 나"에 이르러서 나는 무아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기타 반주로만 이루어진 "저 부는 바람"도 무언가 뿌연 듯한 소리의 풍경을 전해주었다. 당시 스튜디오의 자연적 조건이었는지 아니면 리버브나 에코우 등의 음향 효과를 의식적으로 입힌 것인지는 모르지만.

김민기의 노래는 메시지가 뚜렷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엔가 홀린 사람의 입에서 무의식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들렸다. 당시의 가수들은 참 또렷또렷한 발음으로 노래했고 이는 김민기가 만든 많은 노래를 레코딩하고 연주했던 양희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이 '가수'의 발성은 매우 '다른' 것이었다. 나중에 '평론 용어'가 된 그의 창법은 '나직이 푸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푸념은 무겁게 가라앉은 상태에서 절망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붕 뜬 분위기에서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이상한 것은 명료한 발음임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긴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완시킨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 시간이 내가 김민기를 처음 접한 시간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그랬듯 양희은이 부르던 "아침이슬", "작은 연못", "백구"를 들으면서 음반 표지에 "김민기 작사·작곡"이라는 문구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또박또박 부르는 양희은의 노래를 부담스러워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더욱이 그 당시 음악산업이 돌아가던 시스템에서는 가수란 '작곡가 선생님' 밑에서 노래나 부르는 존재였고,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TV에 나오지 않았기에 관심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 음반은 당시 대학교를 다니던 나의 형이 친구에게서 빌려온 것이었다. 나는 음반을 테이프로 녹음해 둔 뒤 틈틈이 들었다. 그렇지만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테이프는 늘어져버렸고 나는 더 이상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알다시피 그때 이후 그의 음반을 정상적으로 구매하는 일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송창식처럼' 활동해주기를 바랐지만 그의 소식은 아무 데서도 접할 수 없었다. 양희은의 음반에 그가 작곡한 곡이 실렸다는 정보는 알아낼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양희은의 목소리가 김민기가 만든 음악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부적절하다는 견해를 지우기 힘들다. 소수의 견해이자 지독한 편견일지 모르지만.

요약하면 김민기는 나에게 처음으로 '싸이키델리아'를 안겨준 사람이다. 내가 마약을 하면서 김민기의 음악을 들었다거나 김민기가 마약을 했다는 말은 아니다(한국에서는 지금도 이런 말을 붙이지 않으면 조마조마해야 한다. 제기랄). 그의 음악은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건 그때까지 '좋은 음악'을 들을 때의 반응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음반 뒷면에 있는 마지막 트랙에서 "종이연 날리자 하늘 끝까지"라는 가사를 들은 뒤에는 정말 하늘 끝에라도 갈 듯 무작정 집에서 뛰쳐 나와야 했다. 그 뒤의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말 태양이 뜨거웠고 찌는 듯한 더위였고....(중략)...그 순간은 나의 삶에서 가장 보헤미안적이고 유토피안적이었다. 먼 훗날 나는 팀 버클리(Tim Buckley), 닉 드레이크(Nick Drake), 까에따누 벨로주(Caetano Veloso), 루치오 바띠스띠(Lucio Battisti) 등을 들으면서 비슷한 감흥을 받게 되었다. 물론 '당대적'인 경험이 아니었기에 느낌은 순화된 것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김민기의 음반을 들었을 때의 느낌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김민기의 음악이 몽환적 싸이키델리아를 안겨주었다는 말은 적잖은 이들에게 엉뚱하게 들릴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의식이 깨어있는 노래'를 만든 사람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그 뒤로 정규 스튜디오에서 레코딩 작업을 하지 않았고, 20년이 더 지나서야 음반을 발표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새롭게 레코딩한 작품들에서는 그때의 느낌이 남아있지 않다. 시대가 변했거나, 나의 귀가 변했거나, 그의 음악세계가 변했거나라고 따져 볼 수 있겠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3. '한국 포크'와 '한국 뮤지컬'

10여년 전 문승현은 "'한국 포크송'이라는 단어 자체가 매우 유감스럽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 말은 '민속음악'이라는 뜻의 '포크'라는 단어가 한국에서는 '영미의 음악으로부터 영향받은 음악'을 지칭하게 된 사실에 대한 반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지금 '포크'라는 단어에서 '민속'이라는 어의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오랜만에 다시 모인 포크 음악인들의 모임도 포크 '가수' 협의회가 아니고 포크 '싱어' 협회라고 이름지었을 정도로 '영미 문화에 대한 집착'은 여전해 보인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1970년대의 악보집들은 한국 음악이면 '포크송', 영미 음악이면 '팝송'이라는 분류법을 가지고 있었다.  포크송이란 트로트와 '신민요'를 제외한, 즉 왜색이 없는 음악 장르였다.

이 자리에서 이런 이상한 조어법이 정확한가 아닌가를 따지는 일은 적절하지 않다. 어쨌든 '한국 포크송'은 중요한 역할 수행했고, 김민기 역시 본인이 원치 않을지라도 '포크 싱어'로 수용되었다. 과감하게 말한면 그의 음악을 좋아하게 된 동기는 그의 음악이 '한국적 정서'로 가득해서가 아니라 한국적 정서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한대수와 신중현처럼 '양키 냄새'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도 말이다.

1980년대 초 대학 캠퍼스에서 김민기의 노래가 수용되는 방식은 사춘기 소년이 혼자 골방에서 수용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의 노래는 개인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집단적 합창(보다 정확하게는 제창)의 대상이었다. 내가 속했던 동아리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곳은 그때까지는 다른 동아리들보다 개인적이었고 보헤미안적이었다. 이 말은 그때는 '민중적이지 않다'는 말을 듣기 딱 좋은 것이었다. 묘한 것은 그의 노래가 집단적 제창에도 잘 어울렸다는 점이다. 모든 노래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음악을 '포크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런 '공동체적'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포크란 민속음악(민요)도, 예술음악(가곡)도 아니라 대학생 공동체의 송가였다.
혹자들은 1970년대 중후반에 알려지기 시작한 <밤뱃노래>, <가뭄>, <소금땀 흘리흘리>, <고향 가는 길> 등에서 표현된 '한국적 음악 정서'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음악들도 한국의 순수한 음악적 뿌리를 찾으려는 시도라기 보다는 서양음악의 어법과 한국의 전통음악의 어법을 '가볍게' 결합시킨 작품들이고, 요즘 유행하는 문화연구의 용어를 빌자면 잡종화(hybridization)이고 사생아만들기(bastardization)다. 묘한 것은 이런 '이단적' 실험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한국 포크송의 '정통', '적자'로 간주되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중년 이후 가수도, 작곡가도, 제작자도 아니고 연극인이자 뮤지컬 연출자로 정착한 뒤에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최근 그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난 연극인이 아니었거든. 미대를 나왔지만 '딴따라'였고. '잡놈'일 수밖에 없지. 그래서 '짬뽕'인 뮤지컬에 끌렸지"라고 말했다. '옐로우' 신문과의 인터뷰이기 때문에 촌철살인으로 끝내 버렸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이 말에는 모종의 진실이 담겨 있는 듯하다. 이 답변에서, '다른 사람이 자기에 대해 고정되게 규정하는 것을 싫어하는 예술가'의 면모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는 정말 '짬뽕'을 추구하는 '잡놈'일지 모른다. 어쿠스틱 기타라는 '양악기'와 민요와 국악 가락을 결합시켰을 때 그의 최상의 작품이 나왔던 것처럼 그의 독창적인 뮤지컬도 록 뮤지컬이라는 서양의 양식에 마당극의 영향을 가미했을 때 탄생할 수 있었다.  

어쩌면 바로 이런 점이야말로 '진정한 노래', '진정한 음악', '진정한 예술'을 추구했던 사람들, 지금도 추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김민기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인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민중가요'나 '노동가요'에 직간접적으로 종사하는 사람들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음악인들은 장르와 무관하게 '순수성의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순수한 클래식, 순수한 국악, 순순한 포크, 순수한 블루스, 순수한 헤비 메탈, 순수한 펑크 록 등등. 그리고 주류 연예인들은 '순수한 연예'를 추구하고 있다.

김민기는 이런 점에서 아주 드문 예외로 보인다. 그의 음반 표지에는 "국산품 노래를 외고집하던 일"이라는 음악평론가 최경식의 평이 적혀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앞에는 "뭇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가면서도"라는 말이 적혀 있다. 당시에는 '외산품'을 추구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던 것일까. 이런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데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일까.  

4. '인디 음악'에 반대하는 김민기?

1999년 11월 어느 날 '인디' 음악인 성기완이 학전 소극장을 찾아갔다. 밀레니엄 행사의 음악감독을 맡은 성기완은 "철망 앞에서"를 편곡해서 녹음한 데모 테이프를 들고 원작자인 김민기를 만나러 간 것이다. 김민기는 그걸 듣더니 "애들 장난하냐?"라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아티스트가 괴퍅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은 흠이 될 수 없지만, 평소에 존경했던 대선배와의 첫 대면을 그런 식으로 맞은 성기완으로서는 퍽 난감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김민기의 언술에 대해 사전 정보가 없었거나. "철망 앞에서"가 진짜 철망 앞에서 연주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야 했다.

성기완은 뒤에 나를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거기에는 김민기에 대한 실망감까지 묻어 있음을 눈치채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의 요지를 해석하여 옮기면 "(김민기가) 인디 음악의 최근 동향에  대해 너무 모른다"라는 것이다. 그의 상실감은 매우 커 보였다. "김민기가 인디 음악을 알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무색해지는 말이다. 실제로 한국의 인디 음악이 '별 것 아닌' 수준에 머물고 있는 지금에서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1990년대 초 한때 '김민기야말로 진정한 록커'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대다수에게는 어리둥절한 말이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어떤 기대를 품고 있는 곳은 '인디'나 '록'이라는 이름과 무관치 않으므로 몇 마디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주목하는 쪽은 고(故) 김광석과 안치환과 윤도현처럼 김민기의 적자로 간주되는 '소극장의 스타'들이 아니다. 하지만 인디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젊은 음악인들 중에 김민기의 영향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들은 '영미 팝'의 숭배자들이다. '한국 포크'로부터 영향받은 이들이 없지는 않지만 이들의 포크는 김민기보다는 조동진, 조동진보다는 하덕규와 조동익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향받았다. 그래도 이런 말을 하는 친구가 있기는 하다. "반면에 김민기 선배 노래는 너무 좋아해요. 그분은 일단 편곡이나 작곡 능력이 너무나 탁월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연주 능력도 그렇구. 기타를 치는 기타 보이싱을 들어보면 클래식 기타를 원래 하셨던 분이라서 그런지 너무 예쁘게 소리를 잡아 내더라구요"

발언의 주인공은 미선이라는 밴드의 이름으로 한 장의 음반을, 루시드 폴이라는 이라는 이름으로 솔로 음반을 낸 조윤석이다. 앞에 '반면에'라는 말이 들어간 것은 이 말 앞에 정태춘의 음악을 그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짐작하듯 1990년대 이후의 젊은 세대들은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라고 하더라도 정태춘처럼 메시지가 직선적인 음악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루시드 폴은 내성적이고 개인적이고 '탈정치적' 음악이다. 그리고 김민기의 영향은 문화적이라기보다는 미학적으로 남아 있다.

반면 김민기의 적자라고 생각하는(오해하는?) 대학가 노래 동아리의 노래는? 2년 전 찾아간 모교 동아리 후배들의 임시공연에서 들은 "길"을 들었을 때의 느낌이 생각났다. 전기 기타와 드럼 등 영미 록 스타일의 악기 사운드가 러시아 스타일의 혼성 합창과 뒤범벅된 스타일로 편곡되어 있었다. '짬뽕'이고 '잡종'이라고 해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그걸 '자유분방해서 좋다'고 말하지 못하는 내가 늙은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김민기의 영향이 다양하게 분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책임이 그들의 적자들에게 있다는 어렴풋한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그 책임이 나에게도 있을까라고 물을 때가 있지만, '한 게 없으니 책임도 없다'고 질문을 거둬들 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주위에서 접하는 이들이 두 부류로 나뉠 때마다 짜증이 앞서고 저런 질문이 부활하게 된다. 한 부류는 영미 대중문화의 트렌드에 아주 민감한, 그리고 쿨(cool)한 문화적 첨단주의자들이다. 다른 한 부류는 '우리 것', '우리 정서'를 강조하는 문화적 민족주의자들이다. 어쩌면 이건 김민기가 1970년대에 처했던 문화정치적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앞에서 인용했던 문구들을 다시 한번 차근차근 읽어보고 조그만 변형을 가해본다: 영미 문화를 숭배하는가, '우리 것'에 집착하는가라는 이분법적 질문을 넘어 외래의(혹은 '글로벌'한) 영향을 기꺼이 수용하면서도 살아가는 곳의(혹은 '로컬'한) 뿌리를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는 국산품 예술을 외고집하던 김민기. 그는 '딴따라'였고. '잡놈'이었고 그의 걸작들은 대부분 '짬뽕'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문화적 야만의 시대에 그 이상(以上)을 향해 나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최경식이 쓰려다가 끝내 못쓰고 있는 김민기론은 '김민기 = 잡놈'이라는 화두로부터 출발해야만 할 듯하다.

* 김창남 편, [김민기]에 게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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