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 IC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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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통 음악 팬들에게 루 리드(Lou Reed), 그리고 그가 이끌었던 밴드인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는 '발라드 가수' 정도로 알려져 있을 것 같다. 영화 [접속]의 삽입곡인 "Pale Blue Eyes" 그리고 영국 영화 [Trainspotting]의 삽입곡 "Perfect Day" 말고 이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은 후대에 깊은 영향력을 미쳤다. 그들을 커버한 밴드들이 800여개에 이른다는 자료를 보면 과장은 아니다. 그쪽 평론가들이 즐겨 쓰는 표현으로는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영향력있는 unpopular but influential' 경우에 속한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이른바 '플라워 무브먼트'가 한창이던 1960년대 후반의 낭만적이고 알딸딸한 시기에 활동했지만 록 커뮤니티의 주류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들이 소속된 곳은 사랑과 평화를 낭만적으로 외치던 록 커뮤니티가 아니라 맨해튼 다운타운, 이른바 로워 맨해튼(Lower Manhattan)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커뮤니티였다. 루 리드는 비트 시인(Beat poet) 출신이고, 존 케일(John Cale)은 아방가르드 클래식 앙상블에서 비올라를 연주했다. 이들의 데뷔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의 '프로듀서'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이었다. 앤디 워홀은 '음악'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인물이고 실제로 그가 음반을 프로듀스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워홀은 당시 '익스플로딩 플래스틱 인에비터블 Exploding Plastic Inevitable'이라는 이름을 가진 '팝 아트 로드쇼'을 제작하고 있었는데 이 음반은 이 로드쇼의 일환이기도 했다. 물론 바나나 하나가 댕그러니 그려있는 음반 커버 역시 그의 팝 아트의 일부였다. 유심히 보면 바나나의 주위는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남근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리고 바나나는 껍질이 잘 벗겨지는 과일이다. 무슨 의미인지는 각자 상상하는 수밖에 없다(껍질이 벗겨지지는 않은 상태라는 것이 힌트일 듯하다) <마릴린 몬로>, <캠벨 수프>에서 표현된 워홀의 '팝 아트(Pop Art)'는 이른바 '재생산된 것들의 재생산(reproductioning reproductions)'을 기본 컨셉트로 가진다. 그는 현대 대중문화의 손길이 미치는 곳들을 찾아가서 그것들의 이미지와 테크닉들을 빌려오는 별난 취미(?)를 가진 사람이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워홀은 '팝' 문화(≒대중문화)와 예술 작품을 서로 충돌시켰다. 지금 시점에서 '캠벨 수프와 같이 대량복제된 일상의 생산품이 우아한 갤러리 안으로 들여와서 예술의 '창조'라는 관념을 허물어 뜨렸다'고 평하는 것은 진부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에 그가 한 작업은 혁신적으로 충격적이었다. 그는 산업사회의 각종 생산물들이 가지는 끝없는 재생산의 가능성을 찬미한 셈인데, 그렇지만 그 찬미는 차가운 냉소를 동반하는 묘연한 것이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 역시 고의적으로 원시적이고 단순함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워홀의 팝 아트의 컨셉트와 맥을 같이 한다. 실험적임과 동시에 야생적인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은 '예술'이 반드시 복잡하고 화려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공격한 것이다. 당시는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로 상징되듯 팝 음악(혹은 록 음악)이 '예술'로 완성되는 시점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던 존 케일이 한낱 팝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에 가담하여 연주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비트, 폭력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가사, 곡조를 무시하는 보컬,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불협화음과 소음... 워홀의 팝 문화의 찬미가 냉소적이었듯이 야생적 에너지의 찬미는 절망적이고 고독한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주류 록 평론지인 [Rolling Stone]조차 음반을 리뷰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하니까. 루 리드는 "누구나 이 노래들을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내가 이 노래들을 좋아하는 이유다"라고 자신들의 의도를 밝혔다. 게리 맥거번 Gerry McGovern이 "엘비스 프레슬리가 록의 로제타 스톤이라면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모든 '얼터너티브'한 것의 뿌리이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이런 인용문을 소개하면 그 다음에는 1970년대 후반의 '펑크'나 1980년대 이래의 '얼터너티브'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 정석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또다른 스토리다. 그들로부터 직접적인 영향력을 흡수한 집단은 뜻밖에도 (구)체코슬로바키아의 반체제 인사들이다. 여기에는 뒤에 대통령을 역임했던 극작가 바츨라브 하벨(Vaclav Havel)도 포함된다. 이에 대한 이야기도 복잡하다. 단지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시민 혁명을 '벨벳 혁명'으로 부르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만 지적해 두자. 오늘은 1987년 워홀이 죽은 뒤 오랜만에 리드와 케일이 만나 공작한 앨범 [Songs for Drella](1990)나 들어보자. "Style It Takes"라는 곡만 듣고 '발라드 가수'라는 생각을 굳히지는 말고.
* 인터넷 서점 Yes24에서 발행하는 웹진 <Bookian>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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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한 개가 댕그러니 그려있는 음반 커버 역시 그의 팝 아트의 일부였다. 유심히 보면 바나나의 주위는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남근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리고 바나나는 껍질이 잘 벗겨지는 과일이다. 무슨 의미인지는 각자 상상하는 수밖에 없다(껍질이 벗겨지지는 않은 상태라는 것이 힌트일 듯하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 역시 고의적으로 원시적이고 단순함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워홀의 팝 아트의 컨셉트와 맥을 같이 한다. 실험적임과 동시에 야생적인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은 '예술'이 반드시 복잡하고 화려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공격한 것이다
앤디 워홀에 대한 추모 음반 [Songs for Drella] (1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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