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 IC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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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시한 화창한 날 / 그래서 나는 너를 묘지 문에서 만났지 / 키이츠와 예이츠는 네 편에 있고 / (오스카) 와일드는 내 편에 있지". 1980년대 영국 인디 음악의 '국가 대표' 밴드 스미스(The Smiths)의 「Cemetry Gates」의 후렴구에 나오는 가사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 스미스의 프론트 맨으로 작사와 노래를 맡았던(뒤에는 솔로로 독립) 스티븐 패트릭 모리씨(Stephen Patrick Morrissey) - 예명은 모리씨, 애칭은 모짜(Mozza) 혹은 모쯔(Mozz) - 는 '영국에서 특별히 중요한 인물'인 듯하다. 물론 모던 록이나 인디 록에 남다른 취향을 지닌 사람이라면 외국인이라도 그의 의미가 각별하겠지만 존 레논(John Lennon), 믹 재거(Mick Jagger),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같이 '영국적이면서도 국제적인' 팝 스타들에 비하면 영국 내부와 영국 외부에서 명성과 평판이 다소 다르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왜 모리씨라는 인물을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은 '당신이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있는가'라는 질문과 똑같을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멀대 같이 큰 키에 짧게 자른 머리칼을 한 모리씨는 '보통 영국인'으로만 보일 것이다. 느끼하고 능청맞게 칭얼거리는 노래를 들으면서 '특이하다'는 생각이야 들겠지만 '뭐가 그리 대단하지?'라는 의문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채식주의자, 독신주의자, 금욕주의자라는 수식어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비참주의자(miserabilist)', '슬픔의 친자식', '흐느낌의 태수(Nabob of Sob)'이라는 단어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것이다. 게다가 글라디올러스와 수선화가 여기저기 어질어져 있고 스타와 팬 사이의 포옹이 난무하는 공연장의 광경을 직접 보았다면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을 것이다. 한 마디로 그는 '가장 영국적인 남자'다. 이때 영국이라는 단어는 "날마다 일요일 같은 나라", "세상에서 가장 멀쩡한(=따분한) 나라", 조금 과장하면 "아침에 일어나 하루 종일 TV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다. 그는 이런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을 묘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닌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위트, 아이러니, 새타이어(satire)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촌철살인하는 가사로 영시(英詩)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평판을 획득했다.
그 점에서 모리씨가 직접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그를 시인이자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1854~1900)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동성애 혐의를 받아 2년간 옥살이를 하고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외국으로 추방당하여 파리에서 외롭게 죽은 와일드의 파란만장한 삶도 모리씨의 '은둔하는 비참주의자'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진다. 유죄 여부를 가리는 법정에서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 줄 아십니까"라는 뜬금 없는 발언을 했다는 오스카 와일드이고 보면 그럴 법도 하다. 영어 실력과 지면 부족으로 모리씨의 가사를 소개하기 힘든 것이 아쉬울 뿐. 그렇다 보니 모리씨는 끝없는 구설수에 시달렸다. 하나는 동성애나 아동 학대를 다룬 듯한 그의 가사에 대한 것이다. 이 문제는 그의 가사가 워낙 모호하다 보니 슬렁슬렁 넘어갔다. 문제는 흑인계(아프리카계)와 아시아계에 대한 그의 거부감이었다. 그는 일찍이 레게를 "흑인의 우월성을 절대적으로 찬양하는 세계에서 가장 인종주의적 음악"이라고 말하고 "DJ 들을 교수형에 처하라(Hang the DJ)"라고 노래했다.
"Bengali in Platform(플랫폼에 내린 벵골인)"에서는 아시아계 이주민을 도마 위에 올렸는데 급기야 1993년에는 핀즈베리 공원에서 스킨헤드 문화가 '영국적' 가치를 찬양한다는 발언을 했다. 스킨헤드족이 반드시 '파시스트'거나 '인종주의자'는 아니라곤 해도 뭔가 찜찜한 행동이었다(사족 : 나 같은 뺀질이 서울내기가 속으로 가끔씩 '남쪽에서 개나 소나 기어 올라와서 서울을 조져 놓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심사인지 곰곰 생각해 봐야겠다). 아니나 다를까 이 사건 직후 인도계 록 밴드인 코너숍(Cornershop)이 기자 회견장에서 모리씨의 초상화를 불태우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다음 호부터는 백인의 영웅들의 세계를 돌아보는 일을 잠시 접어두고 '제3세계' 출신의 아이콘들을 돌아보기로 하자. P.S. - 3년 전인 1998년 11월 30일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 오스카 와일드의 동상이 건립되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 극장주가 꾸준히 '운동'을 전개한 끝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여담이지만 혹시 아프리카계나 인도계 주민들이 거기다 낙서나 하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 인터넷 서점 Yes24에서 발행하는 웹진 <Bookian>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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