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화면으로
POP ICONS:
|
|
|
하버드 대학 출신의 변호사. 대통령 선거 후보, 대중가수이자 영화배우. 이 세 가지 직업을 동시에 가지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그는 미국 시민이기는 하지만 '소수민족'에 속한다. 누굴까. 힌트를 준다면 '대중가수'라는 표현은 '살사 뮤지션'이라는 뜻의 살세로(salsero)로 바꾸는 게 좋을 것이다. 주인공은 파나마 출신의 루벤 블라데스(Ruben Blades: 1948년생)라는 인물이다. '라틴계의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라는 표현이 많은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줄 것이다. 파나마라는 나라는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가르는 '파나마 운하'가 있으며, '미국의 안마당'이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미국의 영향 하에 있는 제 3세계 나라들'이 대부분 그랬듯 이 나라도 1960-70년대에 '대학교가 폐쇄되는 등의 정치적 격변'을 겪었다. 그 격변의 효과들 중 하나는 법학도였던 파나마 청년이 미국을 왔다갔다 하다가 1974년 아예 가족과 함께 뉴욕에 정착해 버린 것이다. 그가 파니아(Fania)라는 살사 전문 레이블에 우편집배원으로 취직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버렸다. 라틴 음악의 전설인 라이 바레또(Ray Baretto)의 밴드에서 보컬의 자리를 꿰차더니 1976년부터 6년 동안은 윌리 꼴롱(Willie Colon)의 밴드의 간판이 된 것이다. 밴드 이름은 찬란하기 이를 데 없는 파니아 올스타스(Fania Allstars)였다. 앨범 [Siembra], 여기 수록된 싱글 "Sorpresa(Pedro Navaja)"은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판매된 살사 음반으로 꼽히고 있다. 루벤 블라데스와 파니아 올스타스는 정치적이면서도 문학적인 가사로 "뉴욕의 라틴 바리오(Latin Barrio: 스페인어 통용지역)의 가난한 노동계급의 정서를 표현했다"는 찬사를 들었다. 즉, 살사를 단지 '파티할 때 춤추는 음악'일뿐만 아니라 '의식있는 메시지가 담긴 음악'으로 만든 것이다. '뉴욕 살사'는 주로 푸에르토 리코계 노동계급 커뮤티니의 음악이었고 실제로 '나라없는 백성'인 푸에르토 리코계 커뮤니티를 근거지로 삼았다.* 그렇지만 루벤 블라데스는 "Tiburon"(1980)에서 강대국들의 카리브해 개입을 비판하는 등 살사를 '범(凡)라틴 의식'의 고양을 위한 음악으로 만들었다. 물론 니까라구아의 산디니스따 좌파 정권을 지지하는 발언 때문에 마이애미의 극우파 꾸바 망명자들이 그의 공연을 보이코트하는 수난도 겪어야 했다. * 1980년대 이후 루벤 블라데스의 활동은 다소 '논쟁적'이다. 1982년 자신의 밴드 세이스 델 솔라르(Los Seis del Solar)를 결성한 뒤 퍼커션과 관악기 중심의 살사에 신시사이저와 드럼 셋트 등 '미국적이고 현대적인' 악기들을 도입하고, 음악 스타일 상으로도 살사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록, 레게, (살사 이외의) 라틴 음악 등을 뒤섞어 나갔다. '살사 순수주의자'들은 불만을 표했지만, 그의 음악적 야심은 그치지 않았다. 루 리드(Lou Reed), 스팅(Sting),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 등의 곡을 레코딩한 영어 앨범 [Nothing But the Truth]를 발표하는 '외도'도 이런 야심의 일부였다. 1980년대 이후에 본격화된 '영화계로의 외도'에 대해서도 사정이 비슷했다.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Crossover Dreams](1985)에서 공동작가이자 주연을 맡은 것은 대체로 좋은 평을 받았지만, '평범한 미국 영화'에 조연급으로 출연한 일에 대해서는 논란이 벌어졌다.* 물론 헐리우드 영화에서 라틴계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인 '악당 라티노(latino-as-bad guys)'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했다는 그의 말을 존중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논란은 법조인이나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1980년대 중반 하바드 대학에 입학하여 몇 년 뒤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하고, 1994년에는 파나마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생 정당을 결성하여 대통령 선거 후보로 입후보하기도 했다(결과는 '큰 표 차이로 2위'였다고 한다). 이런 일들에 대해서도 한편에서는 '미국 내 히스패닉계의 이해를 법적으로 대변해 주고, 고국의 민주화를 위해서도 노력한다'는 호의적 시각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히스패닉계주민의 일상 생활과는 동떨어진 일이다'는 식의 아쉬움을 표현하는 시각도 있는 모양이다. 이런 논란은 그가 라틴계 주민들 중 '미국의 주류 사회에서 인정하는 것들을 가장 많이 성취한 인물'이라는 사실에서 연유하는 것 같다. 어쨌거나 그가 없었더라면 라틴계의 문화적 지위가 지금 수준도 못 되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간단히 말해서 루벤 블라데스에 의해 살사가 미국 주류 문화 속으로 돌파하지 못했더라면 마크 앤서니, 리키 마틴, 제니퍼 로페스도 없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미국 사회가 '미디어를 통한 표상(media representation)'이 그토록 중요한 사회라는점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주) 1) 푸에르토 리코는 '미국령'이며, 커먼웰스(commonwealth)라는 용어로 불린다. 독립국도, 미국의 한 주(state)도 아니므로 하와이보다는 괌(guam)과 비슷하다. 단, 푸에르토 리코 주민에게는 미국 시민권이 부여되기 때문에 미국으로의 이주가 자유로우며, 특히 뉴욕에서 히스패닉 주민의 주류는 푸에르토 리코계가 차지하고 있다. '푸에르토 리코계의 게토는 흑인(아프리카계 미국인) 게토보다 더 살벌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급진적이다. 2) 루벤 블라데스는 지난 번 소개했던 꾸바 뮤지션 후앙 포르멜과 그의 밴드 반 반(Los Van Van)의 곡 "Muevete(Anda Ven Y Muevete)"([Escenas](1985)에 수록됨)를 새롭게 편곡하고 개사해서 히트시키기도 했다. 후앙 포르멜이 '반체제'는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도 '마이애미 마피아'인 꾸바 망명자들을 자극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대가끼리는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라는 인상이 강한 에피소드다. 참고로 반 반의 원곡이 미국에 소개된 것은 1988년 [Songo]가 발표되면서부터다. 3) 1990년대 이후 루벤 블라데스가 출연한 영화 중 한국인에게 익숙한 영화는 스파이크 리(Spike Lee)의 [Mo' Better Blues](1990), 리처드 러시(Richard Rush)의 [Color of Night](1994)일 것이다. [Mo' Better Blues]에서는 도박권을 파는 사람으로, [Color of Night]에서는 형사로 출연했다. * 인터넷 서점 Yes24에서 발행하는 웹진 <Bookian>에 게재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