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 ICONS:

 

  • 유쑤 은두르: 1980년대 '젊은 아프리카'의 국제적 아이콘

월드컵이 다가오니 월드컵 본선 참가국들의 대중음악을 훑어보는 식으로 연재를 계속해보자. 이제까지 중남미의 음악인들을 대충 훑어보았으니 이제 아프리카로 발길을 돌려보자. 아프리카 대륙에서 예선을 통과한 나라들 가운데 세네갈, 카메룬,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튀니지는 '월드컵의 신흥강호'들이자 '월드 뮤직'에서도 나름의 강국들이다. 나이지리아에 대해서는 고(故) 펠라 쿠티(Fela Kuti)를 다루면서 훑어보았으니 오늘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나라인 세네갈을 찾아가 보자. 세네갈은 1980년대 말 이후 아프리카 출신의 음악인들 중 최고의 국제적 스타인 유쑤 은두르(Youssou N'dour)의 고향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서쪽'이라는 말은 '아메리카 대륙과 가장 가깝다'는 뜻이다. 게다가 수도인 다카르(Dakar)는 세네갈에서도 가장 서쪽에 위치해 있다. 지도를 보면 이곳이 일찌감치 국제화된 지역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지만 영국도 호시탐탐 노리던 곳이라서 그 덕분(?)에 프랑스어가 통용되고 영어도 사용된다. 물론 도시화되고 교육받은 계층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여 대통령 권좌에 오른 레오폴드 셍고르(Leopold Senghor)라는 인물이 20년 동안 통치하여 '안정'을 이룩한 나라이기도 하다(단지 비꼬는 게 아니라 연발 쿠데타로 얼룩진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낫다는 이야기다).

유쑤 은두르(1959년생)는 다카르의 빈민촌인 메디나(Medina)에서 월로프(Wolof: 세네갈의 다수민족)족의 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리오트(griot)라고 불리는 서아프리카 구술 음악의 전통(oral tradition)을 어머니로부터 전수 받아 4옥타브 이상을 오르내리는 음역의 목소리를 갖게 된 이 인물은 10대 무렵부터 숙련된 뮤지션이 되어 12살 때부터 무대에 올랐다. 물론 출발은 댄스 클럽 밖의 주차장 같은 곳이었다. 명징하면서도 소울풀(soulful)한 소년의 목소리는 처음에는 지나가던 행인의 주목을 받는 데 그쳤지만 나중에는 당시 세네갈의 스타 밴드 오브 다카르(Star Band of Dakar)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기에 이르렀다. 에뜨왈르 드 다카르(E'toile de Dakar)를 거쳐 수퍼 에뜨왈르(The Super Etoile)로 밴드 이름이 정착할 무렵인 1979년 경에는 유쑤 은두르가 밴드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이때 그는 이미 12종의 카세트 앨범을 레코딩한 상태였고, 1984년부터는 '유럽 투어'도 시작했다. 이것 역시 처음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세네갈 이민자들의 택시기사 동업조합의 도움을 받은 초라한 것이었지만, 그의 음발라흐(mbalax) 음악*이 서양의 팝 스타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아프리카 산(産) 월드 뮤직이 국제적으로 알려진 1980년대 중반이다. 남아프리카 음악을 실험한 폴 사이먼(Paul Simon)의 [Graceland]에도 참여했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피터 게이브리얼(Peter Gabriel)의 [So](1986)에 수록된 "In Your Eyes"를 듀엣으로 부르고, "Shaking the Tree"를 공동으로 작곡한 일이었다. 곧 게이브리얼의 '동지'이자 국제적 스타가  된 유쑤 은두르는 1988년 엠니스티 인터내셔널에서 개최한 "Human Rights, Now!"의 세계 순회공연에 공동 헤드라이너로 참여했다. 피터 게이브리얼은 물론 브루스 스프링스틴, 스팅, 트레이시 채프먼 등 '인권과 정의'에 성의를 아끼지 않는 음악인들과 동급으로 무대에 선 것이다. 같은 해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 고희 기념 공연]에서 피터 게이브리얼과 함께 "Biko"**를 부르는 등, 유쑤 은두르는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개최된 대중음악의 메가 이벤트들에서 '아프리카 출신으로서는 유일하게 참여하는' 존재가 되었다.  

또 한 명의 국제적 동지는 미국의 흑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Spike Lee)다. 스파이크 리는 "위대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악의 유산을 확대하는" 취지로 자신의 레이블 40 에이커스 앤 어 뮬 뮤직웍스(40 Acres & A Mule Musicworks)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유산의 확대'의 하나로 유쑤 은두르의 앨범 [Eyes Open]을 제작한 것이다. 이 앨범은 '미국 흑인'과 '아프리카 흑인' 사이의 교류라는 새로운 장을 여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고 그래미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이 음반의 성공으로 인해 유쑤는 1993년 유니셰프(UNICEF) "세계 아동의 해"의 대사로 임명되었다.   

1994년에 발표한 [The Guide]에서도 서양 뮤지션들과의 파트너십은 계속되었다. 재즈 색서포니스트인 브랜포드 마샬리스(Branford Marshalis)의 참여는 음악의 품격을 더해 주었고, 스웨덴 태생의 여성 혼혈 뮤지션 네네 체리(Neneh Cherry)와의 듀엣인 "Seconds"는 음악의 인기를 도와주었다(이 곡은 싱글로 발표되어 200만 장 판매되었고, 1995년 모나코에서 개최된 월드 뮤직 어워드(World Music Awards)에서 '유럽의 올해의 노래'로 지정되었다.

유쑤 은두르는 모국의 팬들에게는 '지나치게 서양화된' 스타일을 선보인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실제로 몇몇 앨범은 '영어권 청중'에게 호소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그렇지만 세네갈에 남아 자신의 스튜디오인 히피(Xippi: 'Eyes Open'이라는 뜻)를 근거지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그가 자신의 뿌리를 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프리칸 팝의 스타들이 국제적 성공을 거둔 뒤에는 아예 선진국으로 이주하여 활동하는 경우가 많은 사실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또 하나의 비판은 유쑤 은두르의 메시지나 활동이 '저항적'이라기보다는 '타협적'이라는 것이다. 유럽 제국의 오랜 식민통치로 인해 피폐해진 아프리카의 현실을 볼 때 그의 계몽주의적이고 낙관주의적인 메시지는 때로 '명사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대체로 "외국인들에게 아프리카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니까. 그렇지만 1990년대 초 그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청년들이 "Set-Setaal(Be Clean)"이라는 기치 아래 환경 청결, 주거 개량, 수도공급 개선 등의 시민운동(이자 생태운동)을 전개하여 실질적 효과를 거두었다는 엄연한 사실도 있었으니 그리 쉽게 재단할 일은 아니다.

이제 40줄을 넘어선 유쑤 은두르의 영향력은 1980년대에 비한다면 조용해 보인다. 그렇지만 그가 1980년대 '젊은 아프리카'를 대표했던 문화적 아이콘이라는 점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물론 그의 국제적 명망이 높아진다고 해서 세네갈과 아프리카의 산적한 경제적, 정치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명망이 쇠락한다고 해서 이 문제들이 더욱 꼬이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011231   

주)

* 음발라흐 음악이란 1970년대에 형성된 '세네갈의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음악'을 가리킨다. 따라서 세네갈의 토속음악이 아니라 1950~1960년대부터 국제적 영향과 지역의 전통이 혼합되는 문화적 과정의 산물이다. 서아프리카의 전통적인 그리오트의 가창과 월로프(Wolof)족의 타악기(특히 사바르sabar와 부가라부bugarabu)를 기반으로 하고, (역)수입된 '아프로쿠반 음악'의 리듬과 악기편성 그리고 미국의 재즈, 소울, 록의 영향을 흡수하고, 때로는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음악의 전통도 가미되어 형성되었다. 음발라흐 음악은 1980년대 유쑤 은두르를 통해 '서양화'되고 '국제화'되어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악이 되었다. 참고로 1970년대 이전까지 서아프리카의 주도적 음악 장르는 가나(Ghana)의 하이라이프(highlife)였다.

** 스티븐 비코(Stephen Biko)는 아파르트헤이드 시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젊은 흑인 운동가로서 1977년 기관원들에 의해 수사 받는 도중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비코와 관련된 이야기는 영국의 영화감독  리처드 아텐보로(Richard Attenborough)의 [Cry Freedom](1987)에서 묘사되고 있다(이 영화는 한때 국내에도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P. S. 세네갈 출신의 국제적 음악인으로는 유쑤 은두르와 더불어 음발라흐를 대중화시킨 체이흐 로(Cheikh Lo)와 이스마엘 로(Isamel Lo)를 들 수 있다. 체이크 로는 재즈, 살사, 수쿠(콩고의 대중음악)를 뒤섞어 댄스지향적 스타일을, 이스마엘 로는 기타와 하모니카 중심의 '포크' 성향의 스타일을 각각 선보여 팝 청중에게 익숙한 편이다. 투레 쿤다(Toure Kunda)는 음발라흐와 유사하지만 자브동(djabdong)이라는 종교의식에서 연주하는 전통음악의 영향이 강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투레 쿤다는 산타나의 [Supernatural] 앨범에 수록된 "Africa Bamba"에서 코러스를 맡았다). 이들은 모두 월로프의 음악 전통을 기반으로 하지만 바아바 말(Baaba Maal)처럼 북부 세네갈의 소수민족인 풀라니(Fualni)의 전통음악, 특히 코라(kora)라는 하프를 닮은 악기를 사용한 음악을 구사하는 인물도 있다. 최근에는 세네랩(senerap) 혹은 타수(tassou)라고 불리는 세네갈 힙합도 탄생했고, 그중 포지티브 블랙 포스(Positive Black Force)는 국제적으로 유명하다.

 * 인터넷 서점 Yes24에서 발행하는 웹진 <Bookian>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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