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로
POP ICONS:
|
|
이들에 대해 잘못 말했다가는 후환이 두려운 일이므로, 정리된 평가로 시작하는 게 안전할 듯하다. 두 인물은 각각 60년대와 90년대라는 비범한 시기에 록 밴드 비틀스와 너바나를 이끌었다라든가, 이를 통해 대중음악계에 국한되지 않는 광범한 문화적 파장을 미쳤다라든가, 구체적으로는 '베이비 부머(혹은 플라워 제너레이션)' 세대와 '베이비 버스터(혹은 X-제너레이션)'라고 불리는 청년 세대의 대변인(이른바 '세대의 목소리')이었다라든가 등등. 그런데 이런 평가는 너무 '객관적'이라서 건조하다. 한 인물에게 체현되기에는 복잡미묘한 내면 세계를 갖춘 경우에는 말이다. 외부로 드러난 빛나는 업적을 건조하게 나열하는 일도, 내면의 깊은 세계를 탐험하여 심오한 해석을 내리는 일도 '전문 서적'에나 맡길 일이다. 표면에 드러난 업적도, 내면에 침잠된 영혼도 팝 스타덤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니, 이를 압축적으로 묘사하는 일 정도나 가능할까. 변두리 소도시의 노동계급의 가정(그것도 '결손 가정')에서 태어나 섬세하고 예민한 남자애로 성장했다는 사실이 게임의 전주곡이다. 따분하고 절망적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는 통로가 '록 음악을 연주하여 팝 스타가 되는 것'이라는 충동이 발생하는 것이 다음 순서다. 록 음악은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진실한 감정'도 표현할 수 있다는 예술가적 자의식이 발생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시적 가사와 인상적인 멜로디를 만들 줄 아는 인물을 언더그라운드에 방치하는 일은 현대 팝 문화의 속성이 아니다. 더구나 사진촬영을 위한 그림이 받쳐주고, 유능한 조력자들을 거느리고 있고, 위트와 아이러니를 섞은 '말발'까지 겸비한 인물이라면 예외는 없다. 하지만 두 인물이 팝 스타덤에 대처하는 방식은 대조적이었다. 레넌은 절박한 상황에 빠졌을 때조차 진정한 표현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언젠가는 극복될 것이라고 믿었다. 프로이트의 용어를 빌자면, 레넌에게 로큰롤의 제 1원리는 '쾌락 원리'였고, 언젠가는 순수한 환희라는 로큰롤의 꿈과 이상이 실현되리라고 믿었다. 동양 신비주의로, 아방가르드 예술로, 급진적 좌파정치로, 그리고 '가사 노동'으로 좌충우돌했던 일련의 행동들은 팝 스타덤과의 부단한 싸움의 과정이자 '영원한 마인드 게임'이었다. 그래서 1980년 그가 공백을 청산하고 음악계에 컴백하자마자 '어이없이' 살해된 뒤에도 미완의 꿈이 남아있는 듯하다. 반면 코베인은 레넌같은 꿈과 이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레넌과 코베인을 가르는 것은 펑크의 허무주의적 부정이었고, 코베인은 너바나의 음악을 펑크 록(혹은 그런지 록)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코베인이 펑크로부터 전유해 온 것은 집단적 무정부상태라는 정치적 강령이 아니라 '언더그라운드의 순수성'이라는 미학적 태도였다. 이런 미학적 태도는 팝 스타덤의 게임의 법칙과는 양립할 수 없었고, 결국은 자신이 사라지는 것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프로이트를 한번 더 빌면 코베인에게 록 음악의 제 1원리는 '열반 원리'였다. 그의 유서에 남겨서 더욱 유명해진 닐 영(Neil Young)의 가사처럼 그는 이런 소멸을 적절히 관리하지도 않았다. 레넌이 팝 음악이 가장 영광스러웠던 시기에 스타덤에 올랐던 반면, 코베인은 팝 음악이 가장 불신받던 시기에 경력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런 차이는 자연스럽다. 그래서 레넌은 좋게 말하면 몽상가이고 나쁘게 말하면 허풍쟁이였다. 또한 코베인은 좋게 말하면 순수했고 나쁘게 말하면 자멸했을 뿐이다. 어찌 되었든 이들이 위대하다면 이들의 삶(과 죽음)의 목표가 위대했다기 보다는 자신이 서있는 곳에 대해 극한적으로 사고하고 부단히 싸웠다는 점이다. 하찮을 수도 있는 팝 스타가 영원한 문화적 아이콘이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팬들의 비루한 삶을 조장하는 세력과 대리전을 치른다는 상징작용을 안겨줄 때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방식은 달랐어도 레넌과 코베인이 쇼비즈니스라는 세력과 치른 게임은 가장 진실되고 극한적인 전쟁이었다. 물론 이들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더러운 전쟁'을 반대했고, 레넌은 1973년 상상의 나라 누토피아(Nutopia)를 '건국'하기도 했다. "천당도, 지옥도, 국경도, 소유도, 종교도 없다"는 누토피아의 국시는 "죽음 뒤에는 완전한 평화가 있다.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은 나의 최고의 희망이다"라는 코베인의 소망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단, 그 나라에는 왠지 백인들만 살고 있을 것 같다. * 연보(확장본) 1940년 영국 리버풀에서 존 윈스턴 레논 탄생(1969년 존 오노 레논으로
개명) * <<씨네 21>>에 게재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