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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최와 츠이 지엔: 마지막 '로컬' 영웅들

빅토르 초이와 츠이 지엔을 함께 다루는 이유는 '없다'. 이들이 각각 '까레이스끼'와 '조선족'이라는 사실에 힘입어 평소에 없던 애국심을 발휘해 볼까나. 하지만 '의병장이 많았던 최씨 가문의 후예'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이들이 출연한 영화가 최근 한국 땅을 찾아왔다는 시의성도 신통한 이유는 못된다.

어쨌거나 '쏘련'과 '쭝국'에서도 국민적 록 영웅이 실존했다는 점은 록 음악이라는 영미산(産) 바이러스의 막강한 전염성을 증명한다. 러시아의 경우 1960년대부터 록 바이러스가 '밀수'되었고, '브레즈네프 시기(1964-1982)'를 거치면서 '체제의 기생충들'을 만들어냈다. 영미의 사운드를 모방하는 일을 필생의 목표로 삼은 존재들이 형성되는 '글로벌'한 현상과는 별도로 러시아의 음유시인(bard) 전통을 숙주로 삼아 록 시인(rock poet)들이 탄생하는 '로컬'한 현상도 있었다. 페테르스부르그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이 그 온상이었고, 보리스 그레벤시코프(와 그의 밴드 아쿠아리움)은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이들의 추종자들은 추운 겨울 보드카에 쩔어 지내고, 근로시간이 짧은 직업을 택하고, 취업한 뒤에도 결근을 밥먹듯 하고, 손가락을 다치게 해서 징병을 기피했다. 탈정치적인 방식으로 '공식 사회와의 절연'을 실천한 언더그라운드 록 커뮤니티에 관한 이야기는 꽤 알려졌다.

1980년대 초 데뷔한 빅토르 최와 그의 밴드 키노는 러시안 록의 1세대가 아니라 '뉴 웨이브'에 속한다. 초기의 키노의 음악은 '통기타 코드'에 기초한 범상한 것이었지만, 저음의 카리스마적인 보컬에 실린 가사의 메시지는 심상치 않았다. "시간은 있지만 돈이 없어", "손과 발은 얼어붙고 앉을 데가 없어"라는 가사는 '소비에트 청년들의 일상의 경험과 진솔된 감정을 표현한다'는 반응을 얻어냈다. 1980년대 중반 '페레스트로이카'가 진행되면서, 키노의 음악도 전자 음향의 실험을 포함하여 일렉트릭 사운드로 변해갔고 가사의 메시지도 변화를 위한 행동의 필요성을 담았다. 1988년의 앨범 <<혈액형>>에 실린 '시대의 송가' <우리는 변화를 원한다>를 통해 '낭만적 게으름뱅이'가 '마지막 영웅'이 되었고, 1990년 7월 모스크바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콘서트에는 모스크바 올림픽 이후 두 번째로 10만 관중이 운집하는 '전설'이 만들어졌다.. 그 직후인 8월 15일 빅토르 최는 교통사고로 사망했지만,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에는 '빅토르 초이의 벽'이 있고 보고슬로프스키 묘지에는 교대로 무덤을 지키는 '컬트 추종자'들을 볼 수 있다.

빅토르 초이의 1주기 즈음인 1991년 MTV의 뮤직 비디오 시상식에서는 '국제 시청자의 선택 상'으로 츠이 지엔의 "wild in the snow"가 선정되었다. 츠이 지엔이 국제적 록 스타로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세계 평화의 해> 기념 오프닝 공연에서 <일무소유 一無所有>를 연주하여 '뻣뻣하게 앉아있던 청중의 몸을 들썩거리게 만든' 지 5년, 천안문 광장에서 학생 시위대가 <일무소유>를 합창한 지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베이징 오케스트라 단원의 트럼펫 주자가 '철밥그릇'을 걷어차고 "무로부터 새로이 시작"한 지는 6-7년만의 일이다. 베이징 대학가의 지저분하고 담배연기 자욱한 자취방에서 싸구려 카세트로 록 음악을 듣는 후레자식들이 태어난 지는 근 10년만의 일이다.

츠이 지엔은 <Say, Say, Say >등의 팝송을 번안하여 취입하는 것으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점차 '진지한' 록 음악에 접근하면서 단지 록 음악의 국지적 변종이 아니라 록의 새로운(아시아적?) 형태를 만들어냈다. 당국의 집요한 '훼방'에도 불구하고 데뷔 앨범 <<새로운 대장정에 나서는 로큰롤>>(1989)부터 최근의 4집 앨범 <<무력한 자의 힘>>(1998)에 이르기까지 음반 발표와 공연 활동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중국의 전통악기인 수오나, 구젱, 타즈 등이 색소폰, 트럼펫 등의 서양 관악기와 결합되고, 중국의 '토속' 리듬이 록, 훵크, 레게, 힙합 등 서양의 리듬과 어우러진 록 음악('야오군 인위에')는 '글로벌'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급변하는 중국 사회를 살아가는 감정을 은유적이지만 할 말 다하면서 표현한 가사는 여전히 '로컬'한 가치를 갖는 데 머물고 있지만.

이들만이 아니라 영미 외의 국민적 록 영웅의 이름이 '로큰롤 명예의 전당'같은 곳에 올라갈 전망은 없다. 게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 러시아나 중국의 대중음악계도 '한국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혁명가, 군인, 과학자가 '인민 영웅'이었던 나라에서 마지막 영웅마저 사라진다면, 그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다국적 문화산업의 식민 지배의 재림을 한탄해야 할까, 아니면 문화적 잡종화(hybridization)를 통한 변이를 다시 한 번 기대해야 할까. 아무도 고민하지 않는 질문은 집어치우는 편이 낫다. 영웅시대여, 안녕!

* 연보

1961년(추정) 베이징에서 츠이 지엔 탄생

1962년 페테르스부르그에서 빅토르 초이 탄생

1981년 빅토르 최, 페테르스부르그의 <<록 클럽 Rock Club>>에서 듀오로 연주.

1982년 키노의 '비합법' 데뷔 음반 <"45"> 발표.

1984년 키노 4인조로 재편성하여 <<캄차카의 매니저>> 발표. 츠이 지엔, 베이징 오케스트라를 나와 밴드 七合版 결성.

1986년 츠이 지엔, <세계 평화의 해> 개막 공연에서 아도(Ado)의 전신이 되는 밴드와 함께 <일무소유> 연주.

1988년 키노, <<밤>>, <<혈액형> 발표.

1989년 츠이 지엔, <<새로운 대장정 위의 로큰롤>> 발표.

1990년 빅토르 초이, 교통사고로 사망. 유작 앨범 <<블랙 앨범>> 발표. 1991년 8월부터 매년 페테르스부르그에서 추모 공연 개최. 츠이 지엔, 아시아의 10개 도시에서 베이징 <아시안 게임> 자선 공 연 개최.

1991년 츠이 지엔, <<해결>> 발표.

1991년 MTV 뮤직 어워드에서 츠이 지엔의 "wild in the snow"가 '국제 시청자의 선택' 상 수상.

1993년 츠이 지엔이 주연을 맡은 영화 <<베이징의 후레자식들>> 제작.

1994년 츠이 지엔, <<붉은 깃발 아래의 알>> 발표.

1992-1995년 츠이 지엔, 일본, 미국, 스위스 등의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가짐

1997년 츠이 지엔, 한국을 방문하여 KBS의 <<빅 쇼>>에서 강산에와 합동 공연.

1998년 츠이 지엔, <<무력한 자의 힘>> 발표.

1999년 츠이 지엔, 뉴욕 센트럴 파크의 여름 무대(summer stage)에서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