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Review:

  • 조동진 베스트 

논란은 있겠지만 조동진은 한국 대중음악에서 '대가'로 꼽힐 몇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논란이라고 표
현한 것은 대중음악인을 '대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점이지, 그럴 수 있다면 조동진이 대가라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 음반은 대가의 '베스트 음반'이다. '또 나왔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번 음반의 의미는 특별하다.

조동진은 과작(寡作)이다. 음반 데뷔 시점부터만 따져도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정규 음반은 5장이 전
부다. 그래서 거의 전곡을 모았어도 두 장의 CD로 충분하다. 물론 정규 음반 이외에 1집(1979)과 2집
(1980)을 합본한 형식의 베스트 음반이 '여러 종' 나돌았다. 이들 중 한 종을 제외하고는 본인의 의사
와 무관하게 배급된 것들이다. 요즘 기준으로 본다면 음악인이 '어수룩'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시스템을 고려한다면 쉽게 말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비합법' 음반(업계 은어로는 '삐짜')으
로 시달렸던 음악인이 자신이 직접 선곡하고 음을 다듬어서 내놓은 음반의 의미는 각별하다. 게다가
이 음반을 발표하면서 정규 음반까지도 모두 절판되기 때문에, 이제 '조동진의 음반'은 이것 하나밖에
없다.

음반은 그의 전성기였던 1979년부터 1985년 사이에 발표되었던 곡들과 1990년과 1997년 '조용히' 발표
했던 곡들이 번갈아 수록되어 있다. 발표 순서대로 배열되지 않았으면서도 세심한 매스터링으로 발표
시기의 이질감은 극소화되어 있다. "행복한 사람", "나뭇잎 사이로", "제비꽃"같은 '히트곡'만 기억하
는 사람들은 그 이후에 그의 음악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4집의 "음악은 흐르고"나 5집의
"넌 어디서 와"(장필순과 함께 부름)같은 곡은 묻혀있기 아까운 보석같은 곡이다. 초기작 중 "어둠 속
에서"나 "진눈깨비", 근작인 "그 날은 어디로"처럼 그의 음악적 뿌리를 짐작할 수 있는 곡들도 다시
감상할 수 있다. 믿거나 말거나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조동진의 음악은 록 음악, 그 중에서도 실험적
이고 영적(靈的)인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에 빚지고 있다.

음악인을 서로 비교하는 건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 음반은 몇 달 전 나온 조용필의 음반과 대비된다.
감히 두 대가의 음악적 질을 비교하여 우열을 가리려는 건 아니다. 단지, 새롭게 연주하고 레코딩한
조용필과 달리 조동진은 본래의 레코딩을 그대로 수록했다는 점을 대비할 뿐이다. 매스터링을 통해
음량 레벨도 조절하고 음색도 산뜻해졌지만, 원작의 아우라는 남아 있다. 어떤 게 좋은 건지는 가볍
게 논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단지 많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면서 나직이 읊
조리는 조동진과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 지 묻지를 마라'고 절창하는(그래서 늘 '좋
은 사운드'를 추구하려는) 조용필은 다르긴 좀 다르다. 현대 한국인들의 두 가지 윤리하고 말하면
좀 비약이겠지만.

최근 조동진은 영화 [산책]의 사운드트랙도 담당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또한번 '횡포'를 감수해
야 했다. 영화에 흐르는 조동진의 음악은 음반에는 없다. 이유는 복잡하다. 어쨌든 한국 대중음악계
에서 대가에 대한 정당한 예우는 '관행'이 아닌가보다. 20000315

* [주간조선]에 게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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