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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게임 평론가'다. 무심한 탓에 그가 이 잡지에 기고하는 줄도 몰랐는데, 일간지 서평란에서 그의 소식을 들었다. "운동권 출신 게임평론가", "다른 형태의 현실을 꿈꾸는 운동권" 등의 활자가 눈에 띄었다(한국 언론에는 확실한 '코드'가 있다. 깬다). 취재를 핑계삼아 e-메일을 띄워서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이제 30대 중반이 된 그의 이마는 더욱 넓어졌고, 신세대의 원조같기만 했던 그의 '걸(?) 프렌드'도 벌써 서른이란다. 각설하고, 책 제목은 [게임, 세계를 혁명하는 힘]이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기저기 들춰보았지만 '나중에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갤러그 이후로는 '전자오락'에 빠져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펠릭스 가타리나 로널드 랭 같이 한 시대를 풍미한 급진적 정신분석가들의 이름, 그리고 플라워 무브먼트, LSD 등 급진적 운동에서 사용했던 단어가 '추억'을 떠올릴 뿐이었다. 그런데 혁명? 게임이 웬 혁명? 그래서 "요즘 세상에 무슨 얼어죽을 혁명이냐", "'바로 이거야'라는 말은 이제 믿어. 무슨 종교냐?", "그냥 즐기면 됐지 무슨 책까지 내냐"라고 농반진반 이기죽거렸다. 그러자 그의 목소리가 자뭇 진지한 톤으로 바뀌었다...(중략. 궁금하면 책 사세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게임이야말로 '재미 자본주의(fun capitalism)의 첨병'이자 '일본 문화산업의 세계정복 수단'라는 나의 선입견 - 이건 누군가 내 머리에 주입시킨 것이다 - 이 사라지고 있었다. 내 귀가 얇은 건지, 세상이 많이 변한 건지. 그는 구체적인 삶의 전략까지 설정하고 있었는데, 그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돈만 벌고, 게임을 즐기면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었다. "사회의 기생충이 되는 것"이 개인적 삶의 목표이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면 "건강성과 생산성을 목표로 하는 사회가 보다 부패할 것"이라는 사회이론적 전망도 곁들였다. '개인적 경험을 통해 해방을 달성한다'는 주장은 미국에서 히피들이 30년 전에 했던 얘기 아니냐고 딴지를 걸자, "게임은 직접 개입하고 판단해야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격이 다르다"는 단호한 말이 이어졌다. 어, 그렇게 '센' 주장을 예상했던 건 아닌데. '세계를 혁명하는 힘'이라는 제목이 '장난이 아닌' 것이었네. 그 뒤로 '유쾌한 옛날 이야기'를 나누다 그들을 돌려 보낸 뒤 묘한 느낌이 밀려왔다. 별 게 아니라 문학이나 영화는 물론 음악이나 만화처럼 오래된 장르에서 '평론가'의 시효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이었다. 설사 생명이 연장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나같은?) '평론 귀족'도 생겼으니 '매니아 평민'들한테 '*도 모르면서 잘난 척 한다', '더럽게 재수 없다'는 말 듣는 건 시간 문제일 거라는 생각도. 혹시 또 알아, 몇 십년 뒤에는 [게임 22]라는 잡지가 [씨네 21]을 인수·합병할 지. 아냐, 게임이나 만화도 조만간 약발이 다할 거이고, 더 참신한 게 있을 거야. 내가 머리가 굳어서 떠올릴 수 없을 뿐이지... 아무튼 '업종 전환'을 신중히 고려해 봐야겠다는 다짐이 마음 속 어딘가에 싹트고 있었다. 속물적 '직업 정신'이 마음을 휩쓸고 지나간 다음은
단순한 발상이 심오한 사상으로 둔갑할 차례다(이게 '지식인'의 병인지
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혁명이든 뭐든(그게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그건 '최종적 승리'가 아니라 '간헐적 몰입'이며, 결과가 아니라 과정인
게 분명하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사람들한테 애써 정치 의식을
고취할 필요없다는 평소의 소신도 재확인했다. 솔직히 요즘은 '진보',
'해방', '좌파' 등의 단어를 계속 사용하는 주장이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차라리 '탈정치적'(이라고 분류되는) 분야에서
나름의 정치가 전개되는 양상에 개입하는 일이 흥미롭다. 게임이 '세계를
혁명하는 힘'이라고 말하는 (일반인이 보기에) '또라이'까지 생겼으니
말이다. 그게 체 게바라의 전기가 잘 팔린다는 소식, 한심할 건 없지만
진부하기 짝이 없는 소식보다는 훨씬 흥미롭다. * [씨네 21]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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