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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의 최고 이슈는 '스승'도, '어린이'도, '5.18'도 아닌 '여성'이다. 난데없이 왜 그러냐고? 특별히 인상적인 두 가지 문화 행사 때문이다. 하나는 '미스 코리아 이데올로기'를 반대하는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였고, 다른 하나는 여성 음악인들의 음악 페스티벌인 [女樂女樂(여악여락)]이이었다. [여악여락] 대기실에서 만난 한영애 누님이 "왜 여성이 억압받고 있다는 말만 하라고 그러지?"라고 마뜩찮다는 말을 건네기도 했지만, 취재진의 그런 '억지(?)'도 이해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단군 이래 최초로' 대안적 여성성을 표현한 문화 이벤트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날 '여성과 관련된 남성의 스캔들' 제 3탄이 터졌다. 이른바 '부산 호텔방 사건'이다. 제 1탄인 '린다 김 몸로비 사건'은 썬글래스 장사만 도와주고 '예상대로' 유야무야되어 버렸고, 제 2탄인 '5.17 광주 룸쌀롱 사건'은 진작부터 낌새가 보이던 인간들이 저지른 일이라서 '연예인 성상납 사건'을 접했을 때처럼 그러려니 했다.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몇몇'의 문제임이 분명했고, 게다가 잘/잘못이 명백한 일이라서 속으로는 '쌤통이다'하면서 고소해 하기도 했다. 반면 '부산 호텔방 사건'은 미묘한 사안이라서 파장이 더 크고 오래 지속되었다. 지금은 잠잠해져서 뒷북치는 감이 없지 않지만. '온갖 선정적 표현을 써대다가도 결론은 엄숙한 도덕주의'인 방송과 신문의 보도에 짜증이 날 무렵부터는 PC 통신과 인터넷을 들락날락하면서 온라인 논쟁을 지켜 보았다. 대부분의 논쟁은 '그 남자가 쳐죽일 계획적 범죄자다'는 의견으로 시작하더니, 조금 뒤에는 '그 여자도 이해하기 힘들다',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 같다'는 반론이 나왔고, 다음에는 그 여자를 욕하는 사람이 욕을 먹은 뒤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유감스러운 것은 그와 그녀 '개인'의 문제로 시작하여 뒤에는 '남자들이...', '여자들이...'라는 일반론으로 비화되었다는 점이다. "그가 남자란 이유로 남자들은 너무나 당연히 그 자의 편을 든다"는 말이 한쪽의 의견을 대변했고, "여자들은 얌전한 척 하다가 나중엔 꼭 뒤통수 친다"는 말이 다른 쪽을 대변했다. 뭐, 다 좋은데 특정 개인의 문제를 그가 속한 성의 본질이라고 간주하는 모습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그러다가 결국은 '도 아니면 모', '내편 아니면 니편'이라는 완강한 구도에 피곤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주장도 있었다. 그 여자의 '행실'을 문제삼는 글에 대해 "만약 당신의 누이나 딸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반문 말이다. 남의 가족이면 덤덤하고, 내 가족이라야 심각하다? 나도 '딸 가진 부모'에 속하지만, 이런 주장은 대한민국 사회를 푹푹 썩어 문드러지게 하는 가족주의의 변종 같아서 선뜻 동의하기에는 뭔가 찜찜했다. 그러다가 다른 글을 보고는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의 부인이 방송에 출연해서 했던 발언을 옮긴 게시물인데, 그 글에 따르면 "당신의 딸이 이런 꼴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그녀가 "내 딸을 혼내겠어요"라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이때 확인한 사실은 '남자 편을 드는 여자도 있다'는 점이 아니라 한국형 가족주의가 굳세고 튼튼하다는 점이었다. 이제 결론을 내릴 차례다. 뭐라고 쓰지? 책을 뒤져서 "섹슈얼리티는 두 개가 아니라 여러 개(D모 철학자에 의하면 'n개의 성')이며, 그러므로 여성성(및 남성성)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라고 베껴 쓰고, "양성적이고 유아적인, 전(前) 오이디푸스적인 섹슈얼리티를 이상으로 삼는 나같은 사람은 생식기 중심적인 성인적 섹슈얼리티에 아무 취미 없다"라고 쓸까나. 이것도 추상적 일반론이라 재미없을까. 그때 통신에서 캡춰한 신문기사를 다시 훑어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광주 룸쌀롱 사건을 제보한 L모양의 발언이었는데, "이번 파문이 능력있는 젊은 분들의 정치적 미래에 위협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조선일보] 5.26)는 대목을 보고는 씁쓸하게 웃어야 했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신문에 그녀가 기고한 글을 자세히 읽기 전에는 깔깔거리고 웃었다. 이 글에도 "선배들이 다시 일어서실 것을 진심으로 바랍니다"([한겨레], 5.30)라는 문장이 있다. '운동권 가족주의'는 보통 가족주의보다 더 '징한' 거구나. 그래, 허물이 있으면 덮어주는 게 '동지애'였지. 그러니까 구치소에 계신 J씨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능력 있고 인맥 빠방한데 '다시 일어서는' 거야 시간 문제 아니겠어요? 20000609 * <씨네 21>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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