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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은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된 이야기들로 지나갈 듯하다. 나같이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고 개겼던 인간마저도 냉랭하게 있지는 못했으니 말이다. 김정일을 성격파탄자나 인간말종 정도로 다루던 언론에서 "편견을 고쳐야 한다" 어쩌구 떠드는 게 웃기더라도, 카리스마적인 남북의 지도자 두 명이 수천만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듯한 상황(新양김시대?)이 거슬려도, 북한 관련 서적을 포함하여 '북한으로 한 몫 챙기려는' 장사치들이 재수 없어도, 어쨌든...어쨌든 2000년 6월은 '감동스럽게' 기억될 듯하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감동의 강도가 지금 못지 않았던 13년 전 6월의 사건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니 말이다. 1987년 6월이야말로 1980년대 내내 고대했던 '그날'이었는데도 말이다. 그걸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익숙하다. 5.18이라는 (어쨌든) 국지적 항쟁은 떠들썩하게 기념해도 6.10의 전국적 항쟁은 조촐한 행사 소식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처절한 패배의 사건은 새록새록 기억하면서 찬란한 승리의 사건은 쉽게 묻어버리는 이유는 뭘까? 6월의 꿈이 12월의 악몽으로 끝나버린 일 때문에 기억조차 하기 싫은 것일까? 아이러닉하게도 악몽을 안겨준 장본인 중 한 명은 지금 국민적 염원의 전지전능한 대리인이 되어 있다. 혹시 그에게는 1987년 6월을 기념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괜한 덮어씌우기는 시간낭비이므로 집어치우자. 1987년 6월에 대한 평가도 '후대의 사가'들이 밥벌이할 대상이지 여기서 떠들 일은 아니다. 그때든 지금이든 '가열차게 투쟁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 감당 못할 이야기를 꺼낸 게 실수다. 하지만 이런 뜬금없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그건 정말 '감당 못할' 사건이었기에 일부러 꺼리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 기억이 맞다면 1987년 6월에는 어떠한 통제도 불가능한 상황이 있었다. 이전에 존재하고 있었던 조직이나 사상은 이런 상황에 대해 무력했다. 공식적 요구는 "대통령 직선제"나 "군부독재 타도" 등 묵은 것이었지만, 실제 양상은 그와는 사뭇 다르게 전개되었다. 공적 공간에 나선 사람들의 욕망(이든 '소망'이든 '원망'이든 '염원'이든)이 똑같을 리 없고, 욕망들은 눈덩이를 굴리듯 커져 가면서 어디로 굴러갈지 알 수 없는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에는 '자기통제'마저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여러 갈래로 분기하던 욕망들은 '민주화'라는 이름의 마약이 투여되면서 눈 녹듯이 사라졌다. 6월의 사건들을 '시민 항쟁'이라고 못박으면서 '조국통일 운동'의 준비 단계로 본 사람도, '노동해방 운동'의 낮은 단계로 본 사람도 오십보 백보였다. 특정한 프로그램을 짜서 다기한 욕망들을 그 아래 포섭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그리고 모든 프로그램의 약발이 떨어진 지금은 '통일'이라는 초강성 마약이 사람들을 TV와 인터넷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곤 해도 1987년 6월은 꿈이었다. 꿈인 이유는 '정말로' 그리고 '단번에' 목표가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꿈이다. 만약 꿈이 실현된다고 해도, 그것은 미리 짜여진 계획에 따라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 없이 흘러 다니면서 목적지와의 거리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1987년 6월의 자식들은 그때의 영웅적인 주역들이 아니다. '그때의 주역들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흐느적거리고 비틀대고 머뭇거리면서 자기통제를 생리적으로 거역하는 이들이다. 또한 자식이 부모에 반항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6월의 자식들은 현 시스템이 조만간 끝장나고 새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품지 않고서 '매번' 그리고 '끝없이' 꿈꾸는 이들이다. 6월의 자식들은 한반도 긴장완화가 '탈냉전 시대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의 산물'이라고 과학적으로 인식하는(그리고 그걸 공부하고 암기하는) 이들도 아니라, 그 전략의 실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신체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들이다. 1987년 6월에 대해 황당한 미련을 품고 거기에다 '생색'까지 내고 있는 이따위 글에 대해 신경쓰는 이들이 아니라, 공적 공간에서 욕망을 창조적으로 증식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시스템이 방치하는 틈새의 공간에서 '욕망을 욕망하고 있는' 이들이다. 20000624 * <씨네 21>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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