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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그러니까 이래저래 우왕좌왕하던 무렵 책을 읽다가 귀에 들어온 단어 중의 하나는 '일상생활의 심미화'라는 것이었다. 누가 한 말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도 말이 멋있어서 말을 한 사람도 까먹은 모양이다. 뭔 말이냐고? 그러니까 일상 생활이라는 '비루한' 영역에서도 나름대로 미적 원리를 적용하는 게 새로운 시대의 징후이고, 그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소중한 권력이라는 것이라고 이해해 두었다. 또 '미(美)'라는 게 정신보다는 신체에 해당된다는 이상한 고정관념이 겹쳐져서 저 심오한 말을 '신체의 심미화'라고 편협하게 이해했다. 이런 이해란 가슴 깊이 새겨두는 '진정한 깨달음'같은 것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나름의 이해'였다. 글을 읽고도 실천하지 않는 한국 아저씨들의 습성이 어디 가겠나. 또하나의 습성은 자기는 실천도 못하는 주제에 과감히 저지르며 사는 사람들을 보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이다. 그 무렵부터일게다. 한국인의 머리칼 색깔은 서서히 울긋불긋해졌으며 '코디'에 신경을 많이 쓴 선남선녀들이 늘어났다. (성)기완이마저도 귀를 뚫어 귀걸이를 하고, 머리를 기른 채 주황색으로 물들였을 때는 염색까지 했을 때는 부러움마저 들었다. '겉멋일지도 몰라'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건 나름의 멋을 추구하는 그와는 달리 그렇게 할 엄두도 못냈던 자의 시기심이었던 듯하다. 이런 신체의 심미화 현상에 대해 '원인이 무엇인가'는 따지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런 현상에 '반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적 질서에 위계가 있는 것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주워들은 말로는 미학은 본래 수직적이란다). 문제는 미의 위계가 절대적이고 종교적이라는 점이다. 1등부터 꼴등까지 서열이 있고, 모두들 1등을 향하여 일로매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건 원인이 무언지 따져보아야 한다. 일등부터 꼴찌까지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하는 대한민국 제도교육의 간접적 영향 때문일까? 애들 키우면서 '아이, 예뻐라'를 연발하며 왕자, 공주로 키워대는 엄마·아빠들 가정교육 탓일까? 아냐아냐, 예쁜이들 데리고 한철 장사하는 연예 비즈니스가 만병의 근원야. '예쁜이 환장병'은 '뷰티 캐피탈리즘'의 동전의 양면이요, 그 효과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콤플렉스의 포로로 만드는 거야. 이렇게 생각한 나는 단지 더위를 피하기 위해 기능적으로만 입던 나의 패션을 나름대로 미학화하고자 했다. 2년 전부터 살내복으로 입었던 꼬질꼬질한 '나시'(일본말 써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게 일본말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더라구요)와 반바지를 갖다버리고 새 옷을 사서 섬머 패션으로 입고 다니기로 했다. 물론 주위의 테스트를 거쳐 보았는데 거개의 반응은 "차마 보기 민망하다", "아무나 입는 것 아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런 말은 차마 시도하지 못하는 자의 자책에서 나오는 것임을. 그래서 썩은 이빨을 치료하러 치과병원에 갈 때도 '코디'를 고집했다. 그런데 웬걸? 서울의 가장 트렌디한 장소에 위치해서 그런지 치과는 아픈 이빨 고쳐주는 일이 주 업무가 아닌 듯했다. 치열 교정, 치아 미백, 니코틴 제거 등등이 '의료 행위'였다. 마치 성형외과를 온 듯한 기분이었다. 다 좋아, 그런데 왜 썩어서 아픈 이빨을 덮어 씌우는 건데 왜 의료보험이 안되는 거지. 금으로 덮어 씌우는 게 사치라면 싸구려 쇠라도 덮어주고 그건 보험을 적용시켜야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나도 악에 받쳐서 이렇게 말했다. "제일 예쁜 걸로 해주세요". 20000719 * [씨네 21]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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