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VIEW:

 

서평 :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정체성에 관한 몇 갈래의 사고들    

최준식(2000), [한국미, 그 자유분방함의 미학], 효형출판

탁석산(2000), [한국의 정체성], 책세상

조용진(2000), [얼굴, 한국인의 낯], 사계절

 

 1. 들어가며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피곤한 것이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우리 것'과 '남의 것' 등의 이분법을 야기히고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급기야는 국수주의 아니면 사대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대결구도를 낳게 된다. 거기에 '감정'까지 개입되면 '반미 아니면 친미', '애국 아니면 매국'이라는 구도로 치닫고 그러면 피곤은 극에 달한다(갑자기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된 것도 이런 이분법의 극단적 효과임과 동시에 원인도 제공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건 그렇고.  

한국적인 것에 대한 논의는 몇 년 전 한 소설가의 '영어 공용화론'에 대해서 우회적으로 표출된 바 있다. 용어는 달라졌지만 그때도 위와 같은 구도가 여전히 완강했던 기억이 난다. 위 용어를 '민족주의 대 코스모폴리탄주의'라고 용어를 바꾸면 말투가 점잖아지면서 인상이 붉어지는 정도가 완화될 뿐 내용상의 큰 변화는 없다.      

이 말을 꺼낸 이유는 글을 쓰고 있는 '나'라는 인간은 '한국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라는 말을 들으면 고개를 절래절래 돌리는 유형에 속함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그건 내가 '옳다'라는 윤리적 판단이 아니라 '그냥 싫다'라는 취향을 말한다. 굳이 이유를 따지면 한국적인 것에 대한 정의는 논리적 추론이라기보다는 선입관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변의 무엇'을 상정하는 것에 대한 철학적 반감이라고 하면 너무 주제넘은 말일 것이다. 심하게 말한다면 한국적인 것을 말하는 사람은 그걸 말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더많은 발언권을 가진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럴 땐 다른 나라에 비해서 이 나라는 왜 그토록 '우리 것'에 대한 집착이 심한가라는 볼맨 소리마저 나오게 된다. 솔직히 세계에 대해 자신있게 내세울 것도 별로 없는 나라가 말이다.

2. 한국 문화 = 우리 문화?

'정체'를 밝혔으므로 솔직히 고백하겠다. 한국과 한국인을 테마로 나온 근간들 가운데 [한국미, 그 자유분방함의 미학](최준식 저, 효형)이나 [한국 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채희완 저, 명경)같은 책들은 책을 집어들고 읽을 엄두가 안 난다. 과장하자면 '우리 것'을 다루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국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국적은 분명히 '대한민국'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매국노같은 놈이라니. 따라서 이 책들은 다 읽어내지도, 깊게 이해하지도 못했으므로 '서평'같은 걸 할 수도 없다.

아 책들에서 다루고 있는 테마들, 즉 우리 음악, 우리 무용, 우리 그림에 대해서 '제대로 접한 일도 없는' 사람으로서는 제대로 읽어내고 평하기란 무리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는 후회만 있을 뿐. '시비'를 거는 일이 허용된다면, 한국인 고유의 특징으로 '자유분방함'이라든가(최준식의 경우), '신명'이라든가(채희완의 경우) 하는 주요 개념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너무 총체적이고 거시적이라고 지적할 수 있을 뿐이다. 시비에 이어 혐의를 던지자면 이런 '전통'을 강조하는 논의는 알게 모르게 '엘리트적'이고 계몽주의적인 냄새가 난다는 점이다. 현대 한국 사회의 '대중'은 천민의 후예라는 시각 말이다. 최준식의 경우 서두에서 우리 문화의 현주소를 비판하는데, 이는 3년 전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라는 책에서 한국인이 '문화 천민'이라고 주장한 것의 연장이다. 그렇다면? 최준식은 책의 말미에 "상층문화의 복원"을 결론으로 삼는 것은 나같은 '문화적 천민'에게는 이유 모를 거부감 혹은 콤플렉스를 낳는다. (1)

물론 나는 이런 책이 불필요하다고 시건방을 떠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의 '한국 문화' 가운데 '우리 것'과 '남의 것'이 공존하고 또 뒤섞인다면, '우리 문화'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 중의 하나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물론 나는 '우리 문화', '우리 것'이라는 단어에서 '우리'라는 말의 의미 - 국민?, 민족?, 국가? - 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 속한다. '나'와는 관계없는 '우리'같아서.

3. 한국의 정체성

탁석산의 저서인 [한국의 정체성]에는 오랫동안 고민해 온 사람의 생각이 담겨있다. 철학을 전공한 사람의 저서이지만 대중용 서적이기 때문에 그다지 읽기 어렵지는 않다. 책은 '보편적인 것'과 '세계화'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다. 이는 실제로는 각각 '미국적인 것', '미국화'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또한 '한국적인 것을 세계화하는 것'의 비현실성을 지적하면서, '세계적인 것을 한국화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적인 것을 논할 때 '시원'과 '원조'를 중시하는 관행이 비판되고, 그 대신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이 정체성 판단의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들 중 주체성에 대해서는 차후의 작업으로 미뤄서 논할 수 없지만, 앞의 두 가지 논점은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현재성과 대중성에 대해서는 책 표지 뒷면에 씌어 있는 "소수의 한국인이 즐기고 부르는 판소리가 한국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조용필의 노래가 더욱더 대중적이므로 조용필의 노래에서 한국적인 것을 찾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다시 말해서, <서편제>보다 <쉬리>가 더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에 저자의 주장과 '취향'이 함축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한국학 서적'에서 전제되는 '변화 속에서도 유구히 계승되는 면면한 전통'이라는 주장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즉, '한국적인 것' 혹은 '한국의 정체성'이 불변의 것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나에게 이는 한국에 '대중' 문화의 시대가 완성되었으며, 대중문화가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장으로 자리잡았다는 징후로 읽힌다. (2) 대중문화가 미국으로부터 발원하여 전세계적으로 전파되어 뿌리내리는 문화이지만, 이런 문화적 세계화가 세계의 동질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자는 포착하고 있다.

그런데 몇 가지 의문이 있다. '한국'이나 '한국인'이라는 범주를 동질적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생각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3) 물론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답변할 것이다. 저자는 한국인을 '개인'으로, 한국을 '집단'으로 구분하고 있으니까. 한국인의 정체성이란 개인의 정체성이며, 한국의 정체성이란 집단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용어법을 문제삼고 싶지는 않지만, 한국 사회에는 '한국이라는 집단'밖에 없는가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거나 제기하지 않는 듯하다. 국민을 한국 사회의 가장 대규모 집단이라고 간주한다고 해도 산하에 존재하는 수많은 집단의 정체성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예를 들어 성, 세대, 계급, 지역 등 말이다. 한국(혹은 국민)이라는 이름 아래 포섭되어버리고 마는 차이들이야말로 정체성을 논할 때 정작 중요한 것 아닐까.

이런 차이들은 이 저서의 중심적 테마가 아니므로, 이런 비판은 불공정할지도 모르겠다. 정체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범주들 역시 국민이라는 지배적 정체성 없이는 해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점은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무언가 '큰' 정체성에 의해 '작은' 정체성이 경시되고 있다는 느낌이 남는다. 예를 들어 남자가 보는 한국적인 것과 여자가 보는 한국적인 것은 동일하지 않을 것이다. 중산층과 노동계급이 보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성인 세대가 보는 한국적인 것과 청소년 세대가 보는 한국적인 것일 것이다. 손쉬운 답변은 "성인 세대가 '더' 한국적이며, 청(소)년 세대는 '덜' 한국적이다"는 답변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앞서 말한 '전통과 현대'라는 이분법에 이미 답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성인 세대와 청(소)년 세대의 차이는 '우리 것'을 강조하고 않고의 차이가 아니라 성인 세대의 경우 '한국적인 것'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는 반면, 청(소)년 세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말도 부정확하고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혹은 성인 세대가 한국적인 것에 대해 - '순수한 우리 것'이든 '대중화된 외래의 것'이든 - 또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반면, 청(소)년들은 매우 모호하고 흐릿한 규정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4) 이런 세세한 논점들에 대해 충분한 해명이 없는 것은 이 저서의 대상을 넘어선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런 '마인드'가 눈에 잘 띠지 않는다는 점이다.

4. 한국인의 얼굴과 '유뇌론(唯腦論)'

어쩌면 극동 지방은 세계사적 예외인 '단일민족국가'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런 이데올로기가 통하는 곳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민족 = 국민이고, 1970년대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말에서 엿보듯 민족은 '국가'와도 동의어였다. 그래서 국적(natinonality)과 민족(ethnicity)은 일치한다. 전자를 법적 개념으로, 후자를 문화적 개념으로 구분하는 '보통의 외국'과는 다르다.

이런 점에 의문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인의 얼굴]라는 책을 흥미있게 볼 수 있다. 이 책은 한국인의 얼굴에 대한 인류학적 논의인데, 그 중에 '민족의 동질성'과는 상이한 주장이 들어 있다. 이 책 역시도 '한국인'을 하나의 범주로 상정하고 있지만 그건 앞의 책들처럼 '한국인 일반'이라기 보다는 '지배적 한국인'이다. 거기에 이 책의 주요 주제인 얼굴에 대해서도 '매우 다양하다'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1장과 2장에서 저자는 한국인의 얼굴을 일단 '북방계'와 '남방계'로 나눈 뒤 여기에 중국으로부터의 유민을 더하여 각각 체질형, 원주형, 귀화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반도에 먼저 이주했던 남방계보다 늦게 이주한 북방계가 한국인의 '주류'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수렵, 채취에 의존했던 북방계가 내륙형이고 어로에 의존했던 남방계가 어촌형이며 이들이 점차 뒤섞였다는 주장도 귀를 기울일 만하다. 저자는 한국인이 '좌뇌적(=이성적) 성향'이 부족한 현상을 북방계의 '우뇌적(=감성적) 성향'으로 논하고 있는데, 이런 주장은 성격 상 논리적 근거가 명확할 수 없는 것이지만 경험적 타당성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이다. 3장에서는 음악, 무용, 미술 등 예술작품의 영역을 훑어보면서 한국인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논구하고 있다. 선언적 주장에 그치지 않고 자세한 조사를 수행한 업적이 돋보이는 책이다. 여기서 자세히 언급할 수 없는 풍부한 사실들이 책에 들어 있다.

저자의 제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국인 대부분이 "좌뇌를 지나칠 정도로 사용하지 않는 점"(조용진(2000), p283)을 지적하면서, "이성 교육, 합리적 사고, 과학적 사고, 치밀성 교육"(같은 책, p283)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감성(따라서 우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21세기에도 '우뇌적 한국인'에게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저자 스스로 밝히듯 한국인의 얼굴 분석은 "유뇌론(唯腦論)"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이 역시 쉽게 동의하기는 힘들지만 '황당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의과대학에서 해부학을 연구한 미술대학  교수'의 세세한 통찰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얼굴론=유뇌론 역시 총체적인 이론, 일반화된 담론이 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입장을 유보하고 싶다. 이 책의 이데올로기적 함의에 대해서도.

4. 마치며

한국은 '단일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강력한 나라다.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판단내리기 힘들다. 좀 거창한 말이지만 1960년대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의 여느 나라와 별 다를 바 없었던 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데는 이런 민족의 동질성이 작용한 것이 틀림없다. 남북의 분단상황이라는 것도 잠재적 동질성을 암묵적으로 전제한 것이기에 그토록 치열하게 경쟁했는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 피곤함 때문인지 경쟁을 포기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하지만 동질성에 대한 강조는 문화적 획일성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문화적 다양성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거리에는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옷입은' 사람들이 오고 다닌다. 외국으로의 이주와 외국인 노동자의 이민에 따라 '한국 사회 역시 먼 장래에는 다문화(multiculture)가 되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아직은 요원하다. (5) 그러고 보면 나는 '단일 민족'이라는 사실이 문화적 다양성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한국문화'나 '우리 것'을 연구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렇지 않다'는 보다 설득력있는 주장이 나왔으면 좋겠다. 20000727

 * <문학과 사회>에 게재됨.   

앞화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