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VIEW:

 
  • 쾌도난담      

우리 나라에서 대중음악평론가라는 직함을 갖기 위해서는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강심장이다. 스타라고 하는 가수들을 한번 ‘잘못’거론했다가는 여러날 동안 팬들로부터 테러당하는 악몽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대중음악담당기자의 신세도 비슷하다. 스타에게 불손한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를 한줄 썼다면 전화선과 이메일 끊고 피신해 있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 대중음악평론가 신현준(37)씨 역시 몇 차례 팬클럽의 공세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의 대중음악을 이야기하려면 이 ‘뜨거운 감자’를 피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두 김씨는 ‘잔인하게도’ 팬클럽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H.O.T 이야기로 대담을 시작했다. 신씨는 곤혹스러운 듯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건 불쌍한 대중음악평론가의 팔자인 걸.

김어준:싱잉 엔터테이너라는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 아세요? 사람들이 H.O.T가 립싱크만 한다고 비난하니까 SM사 대표인 이수만씨가 동아일보에 글을 썼는데 H.O.T는 일반적 의미의 가수가 아니라 새로운 개념의 싱잉 엔터테이너다라고 했죠.

신현준:그런데 '싱'을 안 하잖아요

김어준:기계가 싱을 해주니까. 립싱크도 장르는 장르지, 코미디 장르, 동춘서커스단에서 하는 장르(웃음)

김규항:동춘 서커스를 비하하지마, 그렇지 않아도 평양교예단 때문에 타격이 크다는데.

김어준:싱잉 엔터테이너이기 때문에 립싱크하는거 고깝게 보지 말고 새로운 컨셉의 예술인으로 봐라는 논리를 편거라고요. 신기한 게 그 말을 했을 때 꽤 많은 사람한데 먹혀들었어요. 립싱크도 하나의 장르일 수 있다. 실제 제가 아는 문화관련 전공 강사도 그럴듯 하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이런 논리가 먹혀든다는 거죠.

신현준:반박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나 그게 전부 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셈이고, 듣는 사람도 저게 전부구나, 그리로 가야한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게 문제라는 거죠. 스타 시스템에 대해서도 사실 말이 많지만 결국 선택은 좋아하든가 말든가 두가지 밖에 없죠. 그렇지만 선진국 뿐 아니라 후진국 중에도 한국처럼 하나의 스타일이나 장르가 전부를 지배하고 나머지는 없는 나라는 없는 것 같아요.

김규항:글에서 ‘대중음악판을 개판 5분전으로 만들어 놓은 SM사단’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런 현상에 SM사 같은 대형기획사의 책임이 많다는 말씀인가요?

김어준:SM사단은 조선일보와 비슷한 점이 있는 것같아요. 댄스음악, 좋은데 이사람들이 일등해서, 시장 장악하고,다른 가수들은 다 죽고, 팬들은 음악적 편식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런 것을 SM이 한 겁니까?

신현준:SM만의 책임은 아니겠죠. 그런데 비슷한 면이 있어요. 조선일보가 기술적으로는 신문을 잘 만드는 것처럼 SM도 스타들 관리를 잘 하죠. 제가 알기로는 70년대 지구 레코드, 80년대 동아 기획, 90년대 SM 이런 회사들이 나름대로 가수 발굴하고, 관리까지 하는 데는 잘한 케이스인데, SM의 문제는 잘한 게 문제가 된다는 점이죠. SM이 등장한 이후 제작비, 홍보비가 올라간 건 사실이죠. 다들 SM을 표준으로 따라가니까. 요즘에는 전광판에까지 뮤직 비디오가 나오잖아요. 신인 키워서 스타 만드는 것도 이제 옛날 이야기라고 많이들 말해요. 적은 돈 들여 대박 터뜨리는 것도 불가능해졌다는 말이죠, 일정 한도 이상을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건데, 그건 쉽게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죠.

김규항:SM측이 다른 음악을 부정하거나, 일고의 가치없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음악장르가 SM때문에 억압받거나 안되는 부분이 있다면 뭐가 있을 까요?

신현준: 제대로 음악 하고 싶어하는 신인이 있다고 칩시다. 문제는 이 친구들이 실력이 있는데 시스템 때문에 못 뜨는 건지, 아니면 원래 못뜰 놈들인데 괜히 저러고 있는 건지 판단할 기회가 팬들한테 없다는 거죠. 가수들 역시 평가받을 기회가 없고, 벼락스타 이외의 출세하는 길은 막혀있는 현실 아닙니까. 넓게 본다면 우리 사회 시스템과도 통할 것같아요. 사법고시처럼 붙으면 평생이 보장되고 떨어지면 영원한 고생길로 드는…. 도 아니면 모지요. 가수도 스타시스템에 잘 포섭되면 인생이 피는 거고, 아니면 그냥 망가지다 다른 길 찾게 되는 거고.

김어준:그럼 SM만의 책임이 아니라 SM이 만들어 놓은 스타시스템으로 편하게 방송을 때우는 방송의 책임도 큰 거 아닙니까?

신현준:과거에는 방송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얘기를 많이 했는데, 요즘은 거의 대등한 것 같아요. 서로 쉽게 무시못하죠. H.O.T도 작년 앨범같은 경우 별로 방송 많이 안했어요. 머리 모양 규제하니까 아예 방송 안 나가고, 안 나가도 음반이 팔리니까요. 그래도 방송은 무시할 수 없는 힘이죠. 일전에 방송국에 한번 갔는데 매니저분들이 복도에 줄지어서 담배피우는 모습이 편해 보이지 않더라고요. 다들 복도 한쪽을 응시하고 있는데 왜 그런가 했더니 피디 지나갈 때 눈 한번 맞출려고 하는 거래요. 그때 방송의 힘을 실감했던 기억이 나요.

김어준:제 생각에 SM은 명쾌해요. 열심히 했다는 거죠, 졸라 열심히 해서 떴는데 어떡하라고, 일부러 안뜨게 하란 말이야?(웃음). 이런 항변에 대한 반박을 하자면 시장에서 독과점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럼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입을 한단 말이죠, SM은 사실 거의 독과점 기획사인데, 그러면 공정거래 위원회 역할은 방송이 맡아줄 수 있는 거잖아요.방송이 프로그램을 통해 장르나 가수 분배를 조정해야 하는 건데, 안하고 있는 거죠. 그럼 남는 건 음악을 듣는 사람 아닙니까?  팬들이 시장을 잡아주면 되죠, 안사면 되니까. 그러나 팬들도 욕할 수 없는게, 사람들이 신현준씨같은 수준의 고민할 사람들이 아닌 거죠. 그렇게 학습도 못받았잖아요. 그런 학습시켜줄 데도 또다시 방송이잖아요. 그래서 방송의 책임이 제일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규항: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산업이 공산품화된다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인데, SM처럼 산업적 이윤만 집중하는 사람들과 군소 규모의 음악지향적 대중음악인들을 구별해본다면 지금은 산업지향적인 메이저들이 판을 완전히 휩쓸고, 음악지향적 움직임들은 거의 궤멸된 상태지요. 그렇다고 SM같은 메이저사가 불법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장사꾼들이라고 비난해봤자 먹혀들어갈 이유가 없고 더군다나 그쪽에서 ‘우리 대중음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 돈벌이를 자제하고다른 장르를 키워보겠다’고 선언할 가능성을 없다고 보거든요.

신현준:그렇지만 제가 생각하는 메이저라는 건 이른바 매스 마케팅만 수행하는 건 아니예요. 한국의 메이저급 가수들은 음반 나오면 3개월안에 다 팔잖아요.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로는 메이저라면 여러 특화된 부서를 거느리고 부서들 사이에서 균형을 조율하지요, 물론 주로 먹고 사는 건 대박이겠죠, 소니(sony)라면 셀린 디옹 가지고 먹고 사는 것처럼. 그렇지만 대박으로 먹고 살면서 다른 부분에 대해서 적자를 메꾸는 방식을 써요. 그러니까 다른 장르는 당장은 적자라도 장기적으로는 흑자로 전환될 기회를 갖게 되는 거죠. 이게 무슨 고상한 동기가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청중을 극대화하려는 '장사'를 하기 위해 그러는 거죠. 장사를 어떻게 하는가의 차이죠.

김규항:댄스 음악의 주소비층은 10대잖아요. 우리 나라 10대들이 처한 특수한 상황, 대학입시에만 매달리고 구체적인 문화를 즐길 기회가 전혀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댄스 음악이 우리 10대들에게 60∼70년대 구미 노동자 계급의 록음악과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는데요. 즉자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이지요. 아이들한테 진지한 음악장르에 대한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상태가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다른 즐길 거리가 없는 주부들이 관광버스만 타면 난리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현준:10대들의 댄스음악 환호나, 중년 아줌마들의 관광버스 춤같은 것은 나름대로의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해요. 널리 알려진 예지만 레게같은 건 관광버스랑 별 다르지 않은 사운드 시스템(sounf system)이라는 제도가 낳은 음악이예요. 봉고차나 트럭으로 장비 싣고 다니는 유랑극단같은 데서 나온 음악인데, 한국이랑 다른 점은 그 음악이 굉장히 존중받는다는 거죠. 테크노도 이른바 나이트클럽에서 나온 음악인데, 발전하면서 어는 순간부터 심미화되는 계기가 있는 것같아요. 자메이카는 후진국이고, 영국은 선진국인데, 우리는 이도 저도 아니죠. 한국에서 음악 깨나 듣는다는 사람들은 관광버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내적 가치는 인정하지 않거든요. 음악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지식인들이 볼 때도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 상황이라는 거죠.

김규항:90년대 들어서 인텔리들이 대중음악부문에 진입해서, 다양한 담론을 형성했는데 대중음악 전반을 균형있게 책임지는 자세는 아니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 생각에는 이 시람들이 그럴싸하게 포장하기 좋은 음악, 즉 구미 대중음악사에 정형화된, 이념적으로 포장하기 좋은 음악, 이를 테면 록, 펑크처럼 자기들 보기에 폼나는 음악만 논했기 때문에 오히려 무책임해진 상황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지식인이 대중음악에 참여해서 록이나 다른 한 장르에 집중하는 건 가치중립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를테면 인디밴드 몇개를 음악가 본인의 의도와 관련이 없을 정도의 과도한 포장을 하고, 나머지는 완전히 배제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전체적인 대중음악판으로 본다면 오히려 불건전하게 흐르는 걸 부추긴 경향이 있지않나 싶은데.

신현준:우리에게도 실제 업적에 비해서 정당한 평가를 받을 만한 대중음악의 유산이 있기는 있어요. 다만 제시하는 방식이 개인의 취향을 보편적인 입장으로 환원해서 이 음악은 훌륭한 음악이다, 그러니까 좋아해야 한다는 식의 무언의 요구가 있었을 수는 있었다고 봐요. 더 큰 문제는 그런 과정이 옛날 음악에 대한 객관적인 정리도 부재하고 이런 논의들이 대중들의 음악적 경험과 관련성이 밀접한 상태에서 진행된 건 아니었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실제 영향력도 그리 크지 않았고, 주로 지식인 동네에서만 이야기되는 측면도 강했죠.

김규힝:바로 그건데 굉장히 자족적으로 담론이 형성됐다는 거죠. 지식인계에서는 그게 대중음악의 주된 현상인 것처럼 포장됐는데 사실 팬들을 포함한 대중음악 전반에서는 영향이 없었다는 거….

신현준: '오버'해서 말하자면 80년대 학생운동과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80년대 학생운동 역시 어떤 면에서는 이른바 '메이저 캠퍼스'의 대학생들이라는 존재가 만들어낸 국지적인 운동이었는데, 국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특징인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해야 한다라고 보편화시키는 거죠. 대중음악 평론가들도 그런 의미에서 80년대식인 것같아요. 나름대로 자기 취향은 존중받을 수 있지만 그것을 객관화시키는 과정에서 '이건 한국이라는 보편적인 상황에 맞는거다'라면서 위계서열적으로 우수한 음악을 제시했다는 게 문제라는 거죠. 국지적인 관심이나 취향을 문화라는 보편적인 담론 속에서 보편적인 힘으로 사람들에게 인식시켰다는 거죠.

 

9월에 컴백하는 서태지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신씨는 얼마전 ‘서태지 컴백 관전 요령’이라는 제목으로 서태지 이후 대중음악시장의 판도를 예측하는 글을 '장난삼아' 썼다.‘컴백 선언이 닭살이었다’, ‘한국에서의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미국에서 현지인들과 통크게 활동했다면 더 근사하지 않았을까’,‘서태지는 자폐아일지도 모른다’등등 이야기가 나왔지만 실명으로 쓰지 않는다. 대담자들의 편안한 수면을 위해서.

 

김규항:우리보다 대중음악이 발달한 나라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클럽 문화가 90년대 중반 많이 시도가 됐었죠. 그 역시 지식인 중심으로 강조되다가 요즘 침체된 상태인데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현준:그게 흔히 말하는 문화 인프라라는건데요, 문화관광부에 있는 사무관이 이런 고충을 이야기하더라고요. 내부에서 대중음악 지원책이 잘 안먹힌데요. 말만 나와도 꺼려한다는 거예요. 대중음악은 연극이나 미술 같은 예술 장르가 아니라 '연예'로 분류된데요.

김규항:문화관광부하고 이수만씨하고 생각이 같네(웃음).

신현준:대중음악은 돈벌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원과 육성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죠. 위원회분들도 대부분 순수음악이나 전통음악하는 분들이니까. 라이브 공연장만 봐도 각종 제세 부담금 때문에 많이 허덕여요. 부가가치세, 소득세 다 내야되고, 문예진흥기금까지 내야되요. 대중음악에서 문예진흥기금 거둬서 순수음악 지원해주는 거죠. 여태까지 그런 식으로 살아왔으니까 별 대수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대중음악 강국들의 경우 지방정부 차원에서 세금 경감 등의 지원을 많이 해줘요. 공연장이나, 스튜디오 같은 데가 '공공 시설'이라는 개념이죠, 세금 감면은 보통이고 여러 가지 장비 지원 같은 것도 있어요. 음악 강국이란 국민의 음악적 자질이 특별히 우수해서가 아니라, 제도와 정책의 산물인 거지요. 물론 영국이나 미국같은 데는 수출 실적이 많기도 하지만 대중음악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니까 그런 지원이 가능해지는 거겠지요. 한국의 경우 대중음악이 문화의 하나로 존중받을 만하다는 인식이 생긴건 얼마 안된 것같아요. 그전까지는 대중음악이 가치가 '없다', 가치가 0이 아니라 (-)이니까 규제하고 금지해야지, 지원이라는 말은 아예 엄두도 내지 않았죠.  음악하는 사람들 만나도 지원이란 말을 입밖에 내는 마인드가 없어요. 지금도 '더 나빠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라든가, 혹은 '방해하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정도죠.

김규항:출판시장만 봐도 전부 부가세 면제거든요, 정신적 양식을 생산한다는 이유지요. 사실 완전히 장사만 하는 출판사도 있고 장사될 가능성 없는 책을 내는 출판사들도 똑같이 면제 대상이거든요. 외국의 경우 장사가 안되는 책이라도 하드커버로 만들어낸 초판 소량의 책들이 전부 도서관으로 소화되어 수익을 맞추고 페이퍼백을 내서 약간의 보충을 한다는데, 우리 나라는 그런 구조가 전혀 없죠.

신현준:문화관광부에서 재경부쪽에 공연장의 부가세 면제를 건의 했나봐요. 그런데 재경부에서 '반응'을 보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하더군요.

김규항:관료들의 대중음악에 대한 인식부족같은거 말이죠

신현준:쉽게 말하면 미국, 유럽, 일본같은 경우 40∼50대 공무원들이 60년대, 머리 기르고 음악 듣던 사람들이예요, 적어도 자신의 청년기에 이런 게 참 중요한 역할 했다는 판단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대중음악을 지원해 줄 마인드가 생기는 건데, 우리 경우는 대부분 세상과 담쌓고 4,5년 동안 신림동 고시원에 처박혀 있지 않으면 공무원 시험에 못붙는 나라아닙니까? 그러니까 별로 음악을 듣는다든가 문화를 향수할 기회가 별로 없죠. 그러니까 농담같지만 대중음악 발전을 위한 세가지 전제조건이 첫번째는 주5일 근무제, 두번째는 입시교육 철폐, 학원폐지, 세번째는 공무원 채용고시 폐지가 돼야 할 것같아요.

김규항:향후 30년 이내는 이뤄지지 않겠군요(웃음)

신현준:학원에 있으면 음악 못들어요. 영화도 못보고, 자기 안목 절대 안 길러져요. 우리 학교 다닐 때만 해도 5시에 집에 오면 음악 들을 시간도 좀 있었잖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여유도 없더라고요. 학교 끝나면 다 학원가야 되니까.

김규항:어떻게 보면 대중음악도 예술이라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시작된 지 얼마안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죠?

신현준:70년대에 잠깐 있었죠. 금방 사라지긴 했는데... 참 그것도 궁금해요. 70년대 제가 중고등학교 때 신중현과 산울림에 환장하던 대학생 언니·오빠들은 지금 다 뭐하고 있을까?

김규항:관광버스(웃음). 연결이 안되는 것같아요, 흔히 하는 말이 클리프 리차드 왔을때 팬티 벗어던지던 여학생들도 아이들 댄스음악 하는거 마땅치 않아한다잖아요. 취향의 존중이라는 게 전체적인 사회분위기와 같이 가는 것같아요. 언제나 당대에는 한가지로 통일되는 그런 식으로,

신현준:글을 쓰면서 취향의 다양성을 강조하지만 제 주변을 제외하면 다양한 취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 나라에 몇명이나 될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70년대부터 참 이상한 문화정책이 있었고, 80년대만 해도 음반 듣고 감동받고 있다가 '건전가요'에 후딱 깨는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취향도 '보편적으로' 만들어져왔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획일적이 되고, 그에 대한 대안도 다시 획일적인 그런 상황이 되잖아요. 만약에 댄스의 대안은 뭐냐 하면 '록으로 뭉쳐야 한다' 이런 식의 생각을 저도 가끔 하게 되더라고요. 획일적인 거에 익숙한거죠.

김어준:서태지가 돌아오면 대안이 될까요?

신현준:지금도 언론이나 평론을 보면 서태지가 H.O.T의 대안이 될 것이다, 그런 글이 나오잖아요. 혼자 와서 다 평정한다면 그것도 문제지요. 'H.O.T, 아무것도 아니었네' 이러면서 다들 싹 배신하고 서태지로 돌아선다고 해도 그역시 서글픈 것 아닌가요?

김어준:제가 보기엔 다양한 취향이 실제 존재하기는 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다양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알 기회가 없어요. 텔레비전보면 다 똑같은게 나오기 때문에, 난 저거 안 좋아하는데, 나처럼 저거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있는지 못찾지요.

김규항:그럼 음악 팬들도 연대를 해야돼?(웃음)

신현준: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은 좀 특이한 인간유형이예요. 자기 소득의 80%를 음반 사는데  쓰는 사람들은 남들도 어느 정도 하겠지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죠. 1년에 시디 한장 안사는 사람들이 허다하고. 김규항씨는 가장 최근에 시디산게 언제예요?

김규항:한 2년 됐지(웃음).나는 MP3로 듣기 때문에(웃음).

신현준:따져 보면 시디 한장값 얼마 안되거든요. 미장원 한번 가는 비용보다 싸고, 대형 슈퍼가면 음료수 집듯 몇 장씩 집어올 수도 있는 건데 말이죠.

김규항:문화가 남는 시간에 하는 여가생활이라고 보는 입장은 원론적으로 반대하지만, 초인적인 노동을 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은 실제로 도무지 음악을 듣거나 공연장 갈 정신적 여유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즉자적인 10대는 댄스, 30대는 관광버스. 뭐 이렇게 되는데, 그 틀을 깨려면 무지 힘들죠. 지금이 70년대 경제 개발 기간도 아니고 이제 선진조국도 됐는데 말야(웃음) 여전히 천민적 자본주의 분위기, 필요 이상의 노동이 요구되는 분위기가 바뀌지 않으면 힘들 것같아요.

신현준:요즘 냅스터 쓰다보면 외국 애들이 쪽지 보낼 때 있어요. 우리가 졸로 보는 나라들 있잖아요, 멕시코, 나이지리아, 브라질 이런데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이런 나라들은 후진국으로서의 보편성이 있어요. 뭐냐면 일을 안해요. 일하는 사람들도 오후 네시 이후에는 절대 휴식시간이죠. 그러니까 선진국은 돈 잘벌어서 즐길 여가가 있고, 후진국은 돈을 안버니까 시간이 많고. 그러면 나름대로 진지하고 존중받는 음악 문화가 생기죠.

김규항:삶에 대한 가치관의 문제가 아닐까요. 박정희 이후에 여가라든가 여유로운 삶은 게으르고, 후진적인 악덕으로 돼왔잖아요. 몇년 전 건물 꼭대기에 있는 있는 출판사에서 일할 때였어요. 짜장면 한그릇을 시켜도 아저씨가 철가방 들고 고개를 넘어서 열심히 올라왔어요. 알고 보니 그 중국집 사장이고 굉장히 부자더라고. 그런데 왜 직접 다니냐 했더니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거예요(웃음). 열심히 일해서 보다 잘 살아야 한다 하는 경제적 가치로 모든 사람이 집중하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같아요.

신현준: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나부터도 자기 검열을 하게 되요. 부모님 세대가 '일할 데가 없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냐'고 말하면 '그건 옛날 이야기다'라고 자신있게 말이 안 나오더라구요. 한동안 '놀자주의'가 득세하더니 그것도 IMF 사태 이후에는 쑥 들어갔고...

김어준:워낙 어릴 때부터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로 근면 이데올로기를 주입받았기 때문에.

김규항:오늘의 결론을 내려주시죠.

신현준:주 40시간 노동,

김어준:공무원 시험폐지, 입시교육 철폐,

김규항:참 비애감이 느껴진다.

20000827

* <한겨레 21>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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