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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그랬지만 오늘도 뒷북. 일주일 전쯤 앗셈인지 뭔지 하는 국제회의 기간 동안 시행된 '승용차 홀짝제 운행'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 조치를 접했을 때는 '귀찮은 일 하나 더 늘었네'라고 반응했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분노가 일었다. 요즘 국제회의들의 정신(?)이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이고, 그건 자유시장 원리, 국경 없는 무한경쟁, 정부의 규제완화, 민간 중심의 경제운영 등등 아닌가. '잘 나가는 놈 더 잘 나가게 하고, 못난 놈은 아예 깡통 차게 하자'는 재수 옴붙은 이야기지만 그게 대세라면 '정부'가 '민간'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 아닌가. 이렇게 속으로 씨불거리면서 '나는 복종할 수 없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분이 잘 서지는 않았다. '까라면 까는' 데 익숙한 기성세대야 그렇다 치고 주위의 젊은 놈들조차 호응이 없었다. 하긴 승용차는커녕 오토바이 한 대 없는 놈들한테 자동차를 '가진 자'의 분노를 이해하기 바라는 게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1년 전만 하더라도 "한 집에 차 두 대 있는 뱃대기 부른 놈들만 살 판 나겠군"이라고 투덜대던 인간이 어느덧 '1가구 2차량 소유자가 되어버려서 설득력이 반감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내가 아니지. 서울에 직장 가진 맞벌이 부부가 경기도로 밀려났는데 차 1대 가지고 어떻게 먹고 살라고? 그래서 다시 화살을 대한민국 정부에 겨누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든 적은 별로 없었지만, 이번에도 정부의 '자세'는 구제불능이었다. 국민의 일상생활의 불편을 초래하는 조치를 취하려면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호소합니다'라고 캠페인을 벌여도 시원치 않을 판에 걸핏하면 협박조로 명령만 한다.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벌금이 한 번에 그치는 게 아니라 2시간이 지나면 다시 부과된다는 '방침'을 들었을 때는 어안이 벙벙했다. 멀쩡한 도로를 주행할 권리를 공권력이 방해할 법률적 근거가 과연 있는지도 의심이지만, 대한민국 법이야 '귀에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정도로 알고 있는 나 같은 인간은 '법대로' 한다는 말도 믿을 수 없다. "배도 많이 나온 사람이 운동도 할 겸 그냥 전철 타고 가라"는 주위의 충고에 대해서도 "이건 인권에 관한 신념의 문제지 일신의 안락의 문제가 아냐", "외국 정상들에게 서울의 '진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줘야 돼"하면서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D-데이가 다가오면서 마음속에는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고, 겉으로는 계속 강경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경찰이 차를 단속하면 당당히 따지겠다던 마음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차가 별로 없을 테니 자유로로 쌩쌩 달리다가 골목길로 빠지면 단속을 피할 거야'라는 탈출 계획을 짜고, '서울에 진입하기 직전 어딘가 주차해놓고 전철이나 버스로 갈아탈까'라는 절충안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렇게 잔머리를 굴리다가 우연찮게 도계를 넘지 않는 누군가와 차를 바꿔 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날은 겉으로는 유유히 지나갔지만, 속은 여간 멋적은 게 아니었다. 큰소리 쳐 놓고 이렇게 비굴해지다니. 나 역시 힘센 사람이 '까라'고 그러면 일단 깐 다음에 뒷다마까는 보통 한국인의 습성에서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깠으면 아예 조용히 있든가(일본인처럼?), 못 까겠다고 개기든가(프랑스인처럼?) 하는 편이 차라리 나을 뻔했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종종 있을 테니 걱정된다. 특히 2년 뒤 월드컵이 개최될 때까지 서울의 교통사정이 나아질 전망은 없고 그때는 하루 이틀이 아닐 테니 말이다. '그때 가서 시민운동이나 전개할까'라고 비굴함을 만회하려는 얄팍한 생각을 품으면서 수북히 쌓인 주차위반, 신호위반, 과태료 고지서를 괜히 북북 찢어발기면서 화풀이를 했다. 그래도 개운치 않아서 '러브호텔 난립을 반대하는 주민운동'의 일환으로 벌이는 재산세 납부 거부 운동에 열심히 참여하기로 했다. 오늘처럼 약한 모습은 보이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그런데 재산이 쥐뿔이라도 있어야 재산세를 거부하든 말든 하지. 20001029 * <씨네 21>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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