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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경제학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신문 펼치면 경제면은 거들떠보지 않고 넘어간지 어언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버렸습니다. 자랑이냐구요? 긁적긁적. 하긴 학부 시절 경제학 교과서에 나온 난해한 이론들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고 객기 부렸던 인간이 그렇죠 뭐. 그때는 '시대가 그랬다'는 말로 대충 땜빵하렵니다. 그런데 최근 저 객기가 '올바른 판단'이었다는 자부심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뭘 믿고 그러냐구요? 신 경제라는 말을 들으면서부터입니다. 신 경제? 그거 최근 재기하여 뉴스메이커로 뜨고 있는 김모씨가 오래 전 했던 말 아닌가요? 아닙니다, 그건 '싱겡제'였지 신 경제는 아니었습니다(헉, 죄송합니다. 특정 지역을 비방한 건 아닙니다). 올해 4월 말 신문 지면에 이런 발언이 실렸더군요. "우리 경제도 미국처럼 정보통신기술이 발전을 주도하면서 물가걱정 없이 상당 기간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신경제의 순환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는 발언이 실렸더군요. 누가 한말이냐구요? 전 재정경제부 장관님입니다.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격세지감'이 듭니다. '**하고 자빠졌네'라는 말이 혀끝을 간지럽히지만 오늘 테마와는 별 관련 없으니 넘어갑시다. 저 말씀대로라면 신 경제란 무엇보다도 '고성장-저물가'를 말하는 것이군요. 얼씨구나 좋아라. 그러니 거시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상충관계 어쩌구 하는 '필립스 곡선'은 '경제학설사'로 자리를 옮겨야 할 판이군요. 또한 신 경제란 '지속적인 성장과 생산성 증가'이니 '수확 체감의 법칙'같은 이상한 법칙도 비슷한 신세겠습니다. 그러니 제가 참 생각 잘했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가 않더군요. 지난 달 하순 국내의 경제신문사 주최로 <세계지식포럼>이라는 회의가 열렸습니다. '뉴 이코노미의 대변인'이자 스타급 학자인 레스터 써로우와 폴 로머가 왕림하셨더군요.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신 경제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라고 명쾌하게 정의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두 분의 말이 좀 헷갈립니다. 로머 박사님은 "과거에도 기술발전이 있었고, 지속적 기술발전의 결과 소득 수준이 상승했다는 점에서 현대 경제를 굳이 '신 경제'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써로우 박사님도 "3차 산업혁명은 단순한 IT 기술뿐만 아니라 전자공학, 컴퓨터, 로보트, 신소재, 바이오기술 등이 결합돼 이룬 산물"고 말하시더군요. '신 경제 = 정보화 사회'라는 등식에는 유보적 반응을 보인 거죠. 당황한 주최측은 부랴부랴 포럼 참석자들의 견해를 서베이한 모양입니다. 역시 한국은 단답형의 나라입니다. 결과는 '생산성의 비약적 성장'과 '지식기반의 경제'가 나란히 53.5%였고, 벤처기업 등 신흥기업의 득세가 32.1%, 테크놀로지 주도경제가 25%였으며 고성장-저물가의 경제는 3.5%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장관님 발언은 헛다리짚은 면이 많군요. 게다가 "구경제와 신 경제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응답도 10.7%였습니다. 각 응답의 백분율을 더해보니까 100%를 넘는다구요? 그건 복수 응답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논란이 많다는 이야기겠네요. 합의점은 신 경제가 구경제와 달리 '지식기반경제'라는 정도더군요. 토지나 기계같은 유형 자산이 아니라 지식이라는 무형의 자산이 중요한 시대로 간다는 말이군요. 그건 자본주의 아닌가요? 포럼에 참석한 다른 분은 메타 자본주의(meta capitalism)라고 부르더군요. 자본주의가 아닌 건 아니네요. 그러면 자본주의의 꽃은 불평등이니까 '메타 불평등'이고, 불평등의 원천은 '지식 격차'라는 이야기겠군요. 그런데 학교와 학원에서 지식을 습득하는 시간은 한국이 제일 많지 않을까요? 그런데 분위기는 '됐어 됐어 이제 그런 지식은 됐어'인 듯합니다. 제 알량한 경제학 지식의 운명을 보십시오. 오히려 마구잡이로 습득한 지식이나 푼돈 버는 데 소용되고 있을 뿐이죠. 그래봐야 '디지틀 디봐이드' 앞에서 풍전등화입니다만. 그런데 장황하게 얘기 꺼내놓고 겨우 '자본주의의 소득 불평등'으로 끝내냐구요? 시시껄렁하다구요? 아, 예. 사실은 지난 주에 김규항님이 쓴 주제인 신분세습에 대한 제 소견을 말씀드릴까 했는데, 저 혼자 웃고 즐기는 사이 지면이 끝나버렸네요.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근데 경제 이야기는 역시 재미없죠? 20001109 * <씨네 21>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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