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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로벌 짱구 김영삼 전(前) 대통령께서 재임 시절 세계화를 '부르짖은' 일이 있었다. 그때 의미는 대충 '우리 민족 똘똘 뭉쳐 전세계에 코리아의 이름을 날리자'라는 것이었다. 그분이야 워낙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라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그렇지만 'globalization'이라는 외국어를 '세계화'로 번역하는 것까지는 참겠는데, 저렇게 짱구같이 해석하는 건 너무 싫다. '슈퍼'를 구멍가게로, '빌라'를 연립주택으로, '가든'을 갈비집으로 만들어버리는 한민족의 놀라운 언어 소화력과 관련이 있을까, 없을까. 2. 글로벌 패밀리 형은 영국에 살면서 런던과 서울(아니 강남)을 오가며 비즈니스를 한다. 너무 자주 드나들다보니 밑반찬이며 라면이며 바리바리 싸주던 '어미의 장남 사랑'도 예전 같지는 않다. 뉴욕에 사는 누나까지 포함하면 가히 '글로벌 패밀리'다. 하지만 '글로벌화'의 정도는 가족마다, 개인마다 불균등하다. 맨날 대한민국에 대해 투덜대면서도 국경을 벗어난 일은 단 몇 일밖에 안되는 동생의 삶은 '로컬'하니까. 하지만 항상 긴장해 있고, 틈만 나면 깜빡잠에 빠져드는 형의 '글로벌'한 삶도 안스럽기는 마찬가지다. 3. 글로벌 시티 오랜만에 강남에 가 보았다. 벤처 거품이 사라진 다음이라 속이 쓰리다지만, 방관자가 보기에는 울울창창 발전한 모습이었다. '꽃과 호수와 러브 호텔의 촌동네'에 사는 사람의 눈에 강남은 '한국'같지도 않고, '서울' 같지도 않고 홍콩이나 싱가폴 같다. 외국계 기업의 상호, 그리고 거리를 오가는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자본과 노동이 '트랜스내셔널(나는 이 단어를 '초국민적'이라고 번역하는 사람이 싫다)'하게 이동하는 그곳은 '글로벌 시티'다. 아니, '로컬 센터'인가. 헷갈린다. 어쨌든 로컬이란 '글로벌화되지 않은 무엇'이 아니라 글로벌화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제 '로컬'은 '국민'과 일치하지 않는다. '민족 동질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강력한 한반도에서조차도. 4. 글로벌 카스트 '신분은 세습된다'는 김규항의 주장에 동의한다. 21세기형 카스트 제도에서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지적도 혜안이 아닐 수 없다(아, 아름다운 동업자 정신이여!). 바야흐로 '지식이 세계를 지배하는 사회' 아닌가. 덧붙일 말이 있다면 앞으로는 신분 격차도 '국경을 가로질러' 발생할 것이라는 점이다. 남한의 '로컬' 지배층도 마찬가지다. '못 배운' 구(舊) 상류층은 한반도 내에서 폼잡는 걸로 만족했지만 그들의 자식들은 다르다. 이재용같은 인간은 '한국의 재벌 총수'에 만족하지 않고 '글로벌 정보통신산업의 파워 엘리트'가 되려고 기를 쓰고 있는 듯하다. 그래 봤자 그 안에서는 '하발이'겠지만. 5. 반(反) 글로벌화 투쟁 프랑스의 사회학자 삐에르 부르디외가 "세계화에 맞서 싸워라"라고 말했다. 심정을 헤아릴 수는 있는데 "뭘 어떻게? 무슨 수로?"라는 반문을 지울 수는 없었다. '미국적',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유럽의 대항 권력은 "독일의 문화 전통, 프랑스의 혁명 정신, 스웨덴의 복지 모델 등 유럽인들이 만들어낸 빛나는 전통에 바탕한 유럽적 사회 모델"이란다. 다 좋은데 미래의 대안을 '과거'에서 찾는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이 말 듣고 누군가 '아시아의 전통적 가치에 입각한 모델' 운운할까봐 조마조마하다. 6. 대안은 없다? 글로벌화의 대안적 모델은 없고, '모델 없는 로컬 투쟁'만이 유일한 대안이 되어버렸다. 글로벌화가 단지 '국제질서 재편성'이 아니라 "세계의 '포스트내셔널'한 재편성"('post-national'을 누가 '탈국민적'이라고 번역할까봐 겁난다)이라면 더더욱. 이런 상황에서 내가 정치 지도자라면 '국민'에게 뭐라고 말할까? 아마도 이렇게 → "국가 기밀이지만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이제 '국익'(national interest), 국민경제, 국민문화란 교과서에만 나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지식과 능력이 있는 사람은 글로벌 지식계급(및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 찬란한 미래를 만들어 나가십시오. 나머지 분들은 막말로 깡통 차는 길밖에 없습니다. 단, 그게 여러분 잘못은 아니므로 '국제 지식무산자 연대'같은 기구를 만들어서 다(多)문화적 교류를 만들어 나가면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겠습니다(아, 그런데 돈이 없군요. 어떡하죠?)". 20001123 * <씨네 21>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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