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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Cafe Intro 공식적으로는 '꽃과 호수의 도시'지만 실제로는 '술과 러브 호텔의 변두리'가 된 곳이 있다. 언론과 방송에서 꽤 보도되었으니 어딘지 짐작할 것이다. 그곳에서 한국의 주류 사회의 삶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아저씨'들은 서울로 돈벌이하러 새벽부터 서울로 출근하고 오밤중이 되어서야 돌아온다. '아줌마'들은 가사를 돌보다가 백화점이나 할인점에서 쇼핑하는 게 일상의 대부분이다. '애들'은 학교갔다 돌아와서 학원 가기 바쁘다. 계획 도시의 규격화된 삶은 '여가'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가끔씩 할인점에서 커다란 쇼핑 카트를 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담고, 계산대를 거치고 나와 트렁크 한 가득 물건을 실을 때면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사육된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곳이 서울의 여느 곳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규격화된 일상을 벗어나고 싶을 때 들를 만한 곳이 있다는 점이다. 신도시 주위 여기저기에 산포한 이른바 '라이브 카페'들이다. 꼭 라이브 카페가 아니더라도 그곳에 들르면 시계바늘이 거꾸로 돌아 1970년대의 어떤 시점에 고정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보다 '비즈니스 마인드'로 운영되는 미사리와 달리 카페의 내부장식이나 분위기도 삐까번쩍하지 않고 소박하다. '손님'을 상대로 '영업'을 한다기 보다는 '마음 좋은 주인'과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 어울리는 공동체같은 공간도 있다. 무대에 올라서는 가수는 '요즘도 저런 젊은이들이 있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젊은 오빠'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나이깨나 먹은 사람도 무대에 오르고 어떤 곳은 가끔씩 예전의 인기가수였던 인물들이 초청되기도 한다. '라이브'가 계속되어 흥이 오르면 옛날 생각을 주체하지 못해 휘청거리는 사람도 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1970년대 서바이벌? 중년 하위문화? '중년'이란 단어에서 나이트클럽, 무도장, 캬바레, 관광버스같은 칙칙한 공간을 떠올렸던 과거와는 달리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것일까. 그렇지만 옛날 일이 그대로 오늘에 재현될 수 있을까. 달라진 점은 너무도 많다. 이제 '청바지'를 입고 오는 사람은 없고 '생맥주'를 마시지도 않는다. 노래를 따라부르는 일도 멋적고 낯설다. '공연장'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게 푹신한 소파에 삼삼오오 앉아 '밥을 먹으면서' 음악을 듣는다. 다들 오랜 동안 '생활'에 시달려 한동안 '문화'를 잊고 살아온 듯한 모습이다. 카페 건물 밖에는 일상으로 돌아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중형차 이상의 '자가용'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2000년대에 남아있는 1970년대 청년문화의 모습이다. 1970년대의 청년문화의 역설: 암울했던 풍요의 시대 '1970년대 청년문화'는 가슴 설레는 말이다. 한국에서 청년문화가 청년문화답게 존재한 것은 그때 뿐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의 신세대 문화는 '실체'에 대해 논란이 분분하다. 1980년대의 대학생 문화는? 그건 청년문화가 아니었다. 물리적 연령은 청년이었지만 사고 패턴과 신념 체계는 '성인적'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20대의 청년기를 보낸 이른바 '386세대'의 전위들이 직업 정치인, 벤처 사업가, 전문 법조인이 되어 주류사회에 안착한 것은 그들이 '변절'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20대 초반부터 '조직'을 운영하면서 한국의 주류사회의 게임의 룰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는 달랐다. 물론 그 시대는 '암울하다'라는 구닥다리 표현 말고 별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는 정치적 빙하기였다. 그렇지만 묘하다. 정치적 암울함 이면에 경제성장에 따라 '어느 정도의 물질적 풍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풍요란 청년문화가 기성문화와 '다른' 문화로 존립할 수 있기 위한 물질적 기반이다. 그게 없으면 '청년'이라는 시기는 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기일 뿐 그자체로 의미있는 시기가 될 수 없다. 청년이란 자연적 나이의 개념이 아니라 '문화적' 개념이고, 성인과는 '다른' 존재였다. 그 '다름'은 상징의 수준에서, 대중문화라는 영역을 빌어 표현되었다. 그때의 대중문화란 '미국으로부터 영향받은' 문화였다. 현대 대중문화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라는 현실은 오늘에는 너무도 지당해서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당시는 '새삼스러운' 것이었다. '청바지'와 '생맥주'와 '통기타'는 흔히 오해하듯이 수수한 생활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경제적으로는 '물건너 온' 값비싼 사치품이었지만, 문화적으로는 '상징적 반항'을 위한 필수품이었다. (윤형주는 "제가 대학 다닐 땐 생맥주는 비싸서 마시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렇듯, 1970년대 청년문화를 '저항적'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건 현실의 세계라기 보다는 상징의 세계에서 잘 드러난다. 묘한 점은 하나 더 있다. 청년문화의 이상이 가장 잘 구가된 곳은 대학 캠퍼스도, 거리의 시위장도, 카페도, 생맥주집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건 도시를 등진 젊은이들이 모여들던 교외의 공간이었다. 청년문화가 현대화와 도시화의 산물이지만, 그들의 유토피아가 '현대'와 '도시'를 등진 곳이라는 점은 역설적이다. 어쨌든 주말이면 MT나 야유회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대학생들의 '통기타 코뮌'이 여기저기서 건설되었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라는 현실계의 억압을 상상 속에서 삭제해 버리려는 듯한 의례가 진행되었다. 압수된 통기타가 청량리 역사에 줄지어 진열되어 있는 '자료화면'을 본 일이 있는가.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 아래 노동력 총동원을 외치던 사람에게 '게으르게 놀고 먹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눈엣가시였을 게다. 그런 의미에서 1970년대 청년문화 최고의 송가는 "아침이슬"이나 "물 좀 주소"라기 보다는 "고래사냥"이었다. 이는 비단 '대학생'들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영화 <박하사탕> 마지막 장면에서 야유회를 나온 '공순이, 공돌이'들이 "나 어떡해"를 합창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뿐만 아니다. 고고장에서는 '법대생부터 공순이까지' 모두 몸을 흔들어댔다. 적어도 그 순간만은 '계급 모순'이 마술처럼 해결되었다. 1970년대의 '타락', '변절' 그리고 1990년대 1970년대 한국의 청년문화는 하위문화(subculture)일까, 반문화(counterculture)일까? 하위문화는 노동계급 청년의 문화고, 반문화는 중산층 청년의 문화라는 고전적 구분을 줏어들은 나로서는 혼동스럽다. 하위문화의 반항은 '상징적으로', '비스듬히' 이루어지는 반면, 반문화의 저항은 직접적인 가치관의 적대로 나타난다는 구분까지 염두에 두면 더욱더. 하위문화는 (영국의) 모드와 펑크, 반문화는 (미국의) 히피라는 전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하위문화와 반문화를 이론적으로 구분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1970년대의 청년문화가 '서양의 이론'처럼 지배문화를 전복한 것일까라는 질문만을 던져보자. 대답은 일단은 긍정적이다. 통기타 가요(포크?)와 그룹 사운드(록?)은 '작곡가 선생님의 꼭두각시'였던 트로트 가수들을 일소했고, '지성파 개그맨'들은 '코미디언'들을 밤무대로 보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고 끝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도 많다. '지나고 보니 그랬던 것'일 뿐 청년문화의 주역들 중에서 '전복'이나 '저항'의 자의식을 가진 인물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당시의 문화적 아이콘들은 현실계에서는 대체로 '탈정치적'이었다. 그건 'counterculture'를 '저항문화'라고 짱구같이 해석하고, 하위문화는 반문화의 낮은 단계 정도로 착각하는 사람의 주장일 뿐이다(양희은은 지금도 "자기는 아르바이트 대학생으로 노래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의식이 강했던 1970년대의 문화적 전위들은 대중문화 속에서 접점을 찾기 보다는 보다 보편적이고 고고한 세계(문학, 예술, 종교, 운동 등등)로 이동했다. 알다시피 1975년의 '대마초 파동' 이후 그럴 가능성이 협소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중문화 속에서 무언가를 실현하려던 인물들은 없었을까. 있다. 앞서 라이브 카페에서 보는 인물들은 바로 '연예계'의 냉혹한 규칙에 의해 일정 기간 이후 도태된 1970년대 청년문화의 주역들이다. 드물게는 '성공시대'를 구가한 인물들도 있다. 당시 청년문화의 아이콘들 중 몇몇은 MC나 DJ 등 '방송인'이 되어 주류 연예계의 실력자로 군림하고 있고, 개중에는 아예 재벌급 비즈니스맨으로 변신한 이들도 있다. 그 '젊은 비즈니스맨' 중 한 명은 지금 애들을 '부리면서' 연예계를 평정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그가 시키는 대로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휘황찬란한 의상을 입고, 각종 기계체조를 연습하고 나오는 '10대의 우상'들이 TV를 점령했다. 그 우상들이 TV 스크린에 등장해서 차리고 나온 스타일들은 순식간에 모방되어 거리의 풍경을 울긋불긋하게 만든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노랑머리의 아이들'은 '장발족'의 자식들이고 부모 세대에게 반항하면서도 의존적이다. 라이브 카페에서 퇴색한 과거의 우상을 보고 감회에 젖었던 사람들은 집에 돌아오면 '애들'과 함께 TV를 보면서 속으로 "쟤들 그냥저냥 귀엽네 뭐"라고 생각한다. Live Club Outro 너무 비관적인가? 그렇지만 '노랑머리의 아이들'은 TV 속에만 있지 않다. 도심 어딘가의 어두침침한 지하실들에 '라이브 클럽'이라는 곳이 있다. 거기에 모인 애들은 보다 1970년대의 청년들에 비해서도 더욱더 '원시 부족'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그들은 교외나 전원같은 유토피아로 도피하지 않는다. 그들도 다른 신세대들처럼 '아스팔트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TV 거부주의자들이자 디스토피아주의자들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꿈이 실현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가장 성공한 '클럽 밴드'인 크라잉 너트조차 자신들이 만인에게 사랑받을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노 브레인은 감히 안티 서태지 운동을 전개한다. 서태지가 음악을 '못해서'가 아니라 '잘 하기 때문에' 더 문제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펴면서. 이런 현실을 보면서 나는 이제 더 이상 하위문화와 반문화의 고전적 이론을 믿지 않기로 했다. 하위문화나 반문화가 주류의 지배문화를 전복한다는 주장 말이다. 전복 뒤에는 언제나 정상화 과정이 이어진다. 그 대신 하위문화에 대한 대안적 해석을 갖기로 했다. 하위문화는 지배문화를 전복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적' 취향의 위계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하위문화는 특정한 사회적 모순을 마술적으로, '상상 속에서' 해결하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주류와는 다른 삶이'라는 에토스를 낳는다. 청년 하위문화는 이제 낭만적 꿈과 마술적 해결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주류의 지배문화에게 악몽을 던진다. 20001124 * 제목을 잊어버린 한 사보에 수록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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