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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집에서 TV를 보는 일'은 아주 유쾌한 일은 아니다. 왜냐고? 밖에 나가서 만날 사람이 없다는 뜻이니까... 인생의 한창때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엄마, 아빠와 함께' TV를 보는 일이 한 해를 보내는 최선의 방법일 수는 없다. 그래도 어쩌랴. 연말을 옆구리 시리지 않게 같이 보낼 사람이 없거나 밤들이 노니는 일을 못마땅해하는 부모가 두눈 뜨고 살아계신 한 TV 보기는 숙명이다. 연말에 평소에도 안 하던 공부나 책을 읽을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연말의 TV 방송의 백미는 '가요대상'이라는 특별 프로그램이다. 한 해의 대중음악의 조류를 돌아보고 '잘한 사람 상주는 자리'에 특별히 뜨악한 시선을 보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 해를 보내면서 서운하고 나쁜 감정도 달래는 마당에 그런 시선은 거두는 편이 낫다. 방송사마다 가요대상 시상식이 있지만 아무래도 모 방송사의 가요대상이 가장 눈길을 끈다. 나름대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프로그램의 타이틀은 '10대 가수 가요제'다 '十代'가 아니라 '十大'다. 예전의 대중가요란 문자 그대로 '계층과 성별과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1등부터 10등까지를 가리는 일도 그다지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동안 이 프로그램은 폐지되었다. 10대 가수의 선정을 둘러싸고 갖가지 '뒤가 구린' 관행이 있었다는 소문도 있고, 취향이 다양해지기 시작하면서 '음악이 공부냐. 등수 매기게'라는 반론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몇 년 전부터 슬그머니 부활된 이 프로그램은 대중음악의 팬들의 '범주'를 구분하는 새로운 포맷을 취하기 시작했다. 대중음악의 팬들을 '30대 이하(정확히 말하면 '미만')'와 '30대 이상'으로 '대중'을 구분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제 남녀노소 지위고하 막론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대중가요는 사라져 버린지 오래고, 취향의 차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세대'라는 점에는 별다른 이의가 없다. 그래서 음반판매량도 방송횟수도 아닌 '여론조사'에 근거한 집계는 객관성의 치명적 결여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양해하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날 무대에 서지도 않은 나훈아, 조용필, 서태지도 10대 가수에 선정되면서 미심쩍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고수'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서태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고 나훈아와 조용필이 2000년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결국 마지막 장면은 이상하다 못해 민망하기까지 했다. 피날레를 장식한 사람은 조성모도 god도 아닌 태진아였다. 이유는 '30대 이상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그가 선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대상을 차지하는 누구나 그렇듯 그는 울먹이고 흐느끼면서 '앙콜송'을 불렀다. 불행히도 나는 그가 올해 활발하게 활동했는지 아는 바 별로 없고, 그의 음반이 몇 장 팔렸다는 정보도 들은 바 없다. 게다가 '30대 이상'에 속하는 나는 그날 출연한 '30대 이상이 좋아하는 가수들'의 노래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고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날의 프로그램은 댄스가요와 트로트가요가 각각 30대 이하와 30대 이상을 양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친절하게 확인해 주려는 것 같았다. 30대 미만이 댄스가요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타당할지 모르지만(물론 이것도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30대 이상은 '트로트를 좋아한다(혹은 좋아해야 한다)'고 몰아가는 것 같아서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럴 바에야 장르별로 상을 별도로 주면 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미 어워드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를 보면 '별 이상한 상도 다 있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상 부문을 세분해 놓는다. 여러 장르별로 구분할 뿐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 솔로와 그룹 등등. 그래서 '누가 1등을 먹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몇 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는가'가 한 음악인의 그해의 성적이 된다. 하긴 이것도 '나눠먹기'를 위한 수작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음악마저도 1등부터 꼴등까지 위계서열이 명확한 것보다는 조금 나아 보인다. 이제 겨우 '어른은 어른끼리, 애들은 애들끼리' 식으로 별도로 순위를 매기는 어정쩡함보다도. 그런데 왜 이렇게 '순위', '대상', '1등'에 집착할까.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대중음악이 국민 내부의 차이들을 원만하게 통합하는 수단이라는 전통적 발상이 아직도 강력하기 때문인 것 같다. 다양성에 대해 그토록 떠들어대면서도 한국인은 '결국은' 다양성을 획일화하면서 등수를 매기려고 한다. 그러려면 '21세기에는 창의력이 없으면 가망없다'는 말이나 하지 말던지. 20010106 * <포브틴>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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