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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는 심난했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그 중 하나는 컴퓨터 때문이었다. 5년전만 해도 컴퓨터 관련 대화를 들으면 <저수지의 개들>의 앞 장면에 나오는 사람들이나 은하수 건너 외계에서 온 생명체처럼 보였다. 이번에 나올 CPU는 몇 메가헤르쯔라느니, 램의 핀과 클럭의 수가 얼마로 바뀌었다느니, FAT 32과 FAT 16이 뭐가 다르다느니, CD 레코더를 장착하려면 '맥'에서 사용하는 스카시 콘트롤러가 필요하다느니, 윈도우 구팔은 하드웨어 드라이버를 자동으로 잡아준다느니 등등의 대화는 인간의 언어로 들리지 않았다. 그걸 개의치는 않았다. 컴퓨터로 하는 것이라곤 '단어처리기'로 문서나 작성해서 인쇄하는 정도가 전부였던 나에게 그 물체는 생명없는 기계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컴퓨터가 먹통이 되서 하늘이 노래지는 일을 몇번 경험하니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A/S를 불렀을 때 "오늘은 힘들고 내일 오겠다"는 답변을 들으면 "제발 오늘 내로 와 주실 수 없느냐"라고 극존칭의 생떼를 부릴 때의 비굴한 목소리가 자기 것이라고 믿고 싶지 않지만 별 수 없다. 마음이 급해지면 본체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기도 했다. 딸내미가 오밤중에 홍역이 들었을 때와 막상막하의 다급한 심정으로. '빨리 태어나서 이런 애물단지 없어도 살 수 있거나, 늦게 태어나서 일찌감치 익숙해질 것이지'라는 식의 하소연이 나올 때 쯤이면 볼짱 다본 거다. 그럴 때 인간은 얼마나 가련하고 무력하던지. 데이터가 날라가 버리는 사고는 거의 만성이 되었다. 수리가 빨리 되고 비용이 많이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수리하시느니 새 거 하나 사시죠"라든가 "정 안되면 업그레이드라도 하시죠"라는 말은 상대방의 상술을 의심하기 앞서 빈약한 경제력을 원망하게 만들었다. 2-3년만 지나면 최고 사양의 신제품으로부터 돈 내고 버려야하는 쓰레기로 변하는 그 녀석의 변신술이신기하고 놀라울 뿐이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알아 둘 건 알아두자'고 마음을 바꿨고, 이제는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관리하는 일은 물론 하드웨어도 웬만한 건 직접 장착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국내 학자가 "컴퓨터도 사람처럼 가끔 '만져줘야' 친해진다"고 했던 말이 인상에 남아서 가끔씩 케이스를 열고 스프레이로 청소도 하고 나사도 조여주곤 했다. 그러다 보니 쓸만한 부품을 못쓰도록 규격을 바꿔버리는 하드웨어 제조업체나, 프로그램을 이상하게 짜놓은 소프트웨어 업체에 대해 "나뿐 놈들"이라는 큰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갈 사소한 것도 괜히 고치려고 덤비는 습성이 발동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컴맹을 겨우 넘은 주제에 괜히 이것저것 만지작대다가 최근에 대형사고를 한번 더 치고 말았다. 사고를 친 경위는 한마디로 긁어부스럼이었고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데이터까지 날려버려서 민망하기 그지없다. 순간의 실수가 이토록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시스템에 한탄하는 건 못난 놈의 하소연일 뿐이다. 적어도 이번 경우에는. 그러던 차에 바이오펑크를 특집으로 삼아 몇 개의 글을 기획하는 곳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다. 영국의 록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음악을 바이오펑크의 관점에서 평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맞다. 라디오헤드는 1997년 [OK Computer]라는 앨범의 한 곡에서 "여피 네트워킹"이자 "돼지가죽이 우지직거리는 소리", "먼지, 고함...공황, 구토"에 대해 진절머리를 내면서 "나는 편집증 환자일지 모르지만 인조인간은 아니야"라고 읊조리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작년 발표된 앨범 [Kid A]에서는 컴퓨터 테크놀로지를 보다 많이 이용했다. 사람의 목소리도 전자음향을 통해 처리될 경우에는 노래를 부르는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컴퓨터 기술을 통해 복제된 생명체같다. 윌리엄 깁슨이 소설 [이도루(Idoru)]에서 묘사한 "새끼 하마만한 크기에 일주일쯤 된 삶은 감자 색깔의 생물체"라고나 할까. 이런 상상력을 바이오펑크라고 부르는 게 요즘의 트렌드인가보다. 바이오펑크는 십여년 전의 사이버펑크가 가졌던 신체에 대해 가졌던 반감이 유전공학의 성과를 통해 더욱 증폭되고 있다. 그게 '건강과 효율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여피의 윤리에 대한 반감'이라는 건 이제 상식일 테고... 깁슨의 말을 다시 한번 인용하자면 바이오펑크의 주체성은 "살인적 분노와 유아적 욕망이 극도에 달해도 말로 발설하지 못하고 리모콘으로 채널을 바꾸거나 대통령 선거 때 투표를 할 따름인 존재"다. 나는 이 말을 '비관론'으로 해석하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그랬더니 몇 시간 뒤 편집자로부터 "다른 분들은 낙관적인데 신현준씨만 너무 비관적인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특집으로 다루는 주제에 비관적 전망을 하는 인간도 이상한 생물체다. 그렇지만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어떤 윤리를 가진 것인지 더 궁금하다. 20010118 * <씨네21>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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