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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다들 음악, 책, 영화 등 향기로운 이야기를 썼건만 나는 그닥 향기롭지 않은 이야기를 써야 할 것 같다. '강의'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들은 강의가 아니라 내가 했던 강의다. 강의라는 행위가 내 인생에서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할 줄은 몰랐다. 생각해 보니 30대에 해당하는 10년 동안 한 주에 강의를 10시간 미만으로 했던 적이 드문 듯하다. 이상한 일이다. 긴장하면 말이 잘 안 나오거나 말을 더듬는 증상까지 있어서 '차렷, 경례'조차 부반장에게 맡겼던 사람이 말로 먹고 산다니 말이다(그러니까 반장이었다는 이야긴데 말하고 보니 영 쪽팔린다). 1992년 여름 서울 신림동에서 '경제학 강사'가 되었다. 국립서울대학교가 아니라 인근의 '고시학원'에서. 주류 경제학이라고 해봐야 대학원 입시 두 번을 제외하고는 공부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왜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거기 들어가기 몇 달 전 출감했다'는 말로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동기야 어떤 것이었든 '스파르타식' 강의를 했던 일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수강생들을 스파르타식으로 훈련시켰다는 게 아니라 내가 했던 노동이 스타르타식이었다. 한번 강의실에 들어가면 3시간 30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면서 쉴새 없이 떠들어야 했다. 이렇게 말하면 욕들어먹기 좋겠지만 대학교에서 하는 강의는 출석 부르는데 10분, 워밍업하는데 10분...(중략)... 10분 일찍 끝내도 별 탈이 없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그곳은 한국 특유의 '주입식 강의'의 정수를 체현한 곳이었다. 또한 매달 강의내용을 '업데이트'해야 하는(물론 나는 하지 않았다) 치열한 생존경쟁과 신자유주의적 '노동의 유연성'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만만치 않은 수강료를 입신양명의 욕망과 교환하는 사람들의 살기(?) 비슷한 기운도 있었다. 비정한 그 세계에서 내가 그토록 오래 버텼는가가 신기할 정도다. 한번은 '모의고사반'이란 걸 맡았는데 100명이 넘는 학생들의 시험답안지를 열흘 동안 매일 채점하느라 입에서 단내가 난 적도 있었다. 내가 맡은 과목은 '해마다 바뀌는 시험제도' 탓으로 2년이 지나자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한때 쏠쏠했던 월 소득 수준도 징역살이 때 졌던 빚을 갚기 무섭게 급전직하했다. 개강 시간에 들어가 수강생의 머릿수를 세어볼 때의 비굴함과 비참함에 대해서는 차마 말하기조차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빠져나오기까지 5년이 더 걸렸다.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에게는 송구스러운 말이지만 나에게는 '수렁'이나 '막장'같았던 곳으로부터. 문제는 수렁이나 막장도 한번 들어가기만 하면 있을 만하다는 점이다. 군대나, 감옥이나, 학교(!)처럼. 언젠가 한번 사교육의 광기(!)을 비판하는 글을 쓰려다가 접어둔 것도 이런 '전력' 때문이다. 그때의 강의는 일종의 '엔터테인먼트'였다. 실제로 그 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농담삼아 '밤무대'라는 단어를 쓴다. 대학교 강단이 TV라면, 학원 강단은 밤무대? 좌우지간 그때의 강의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청중(?)을 최대한 배려하는 것이었으므로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가끔씩 나의 '본색'을 알아보고 "누구누구 아니세요?"라고 물어보면 "동명이인입니다"라고 웃으면서 대답하는 게 최선이었으니까. 그래서 '내 인생 최고의 강의'는 방금 끝난 2001년 1학기 서울 외곽의 한 대학교에서 했던 강의다. 그 학교는 이른바 '진보'를 표방하는 특이한 학교이고, 교수들은 '역전의 용사'같은 곳이다. 물론 현재의 나의 취향이나 지향과는 거리가 있다. '진보' 운운하면 "도대체 내 인생과 그게 무슨 상관야"라고 반응할 듯한 대다수 학생들의 모습도 특이하다. 나는 그곳에서 "현대문화와 사회", "대중음악의 이해"라는 과목을 가르쳤다. 이것도 왠만한 대학교에서는 개설되기 힘든 특이한 과목이다. 왜 최고의 강의였냐고? 올해 처음으로 스승의 날에 '시간강사'로는 과분하게 꽃을 선물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 학생으로부터 "제가 대학생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유일한 강의"라는 e메일을 받았기 때문만도 아니다. 오전 강의를 들은 몇몇 '제자'들과 점심을 같이 하며 나누었던 이야기 때문만도 아니다. 대형강의실에 모인 수강생의 반 정도는 꾸벅꾸벅 졸았고 "대중음악의 이해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며 수강을 포기한 학생도 20명 가까이 되었다. 강의 준비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고 계획대로 강의를 마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인생에서 만족이란 게 이렇게 사소한 것이라니. 그런데 수강생이 100명 가까운 그 과목의 채점은 언제 하나.... 20010620 * 웹진 <컬티즌>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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