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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3-40대 사람들에게 MBC는 '더불어 성장한' 방송국일 것이다. <금주의 인기가요>에서 신중현과 송창식을 보고 경이로워 했던 일이나 <장학퀴즈>를 보면서 스마트 학생복과 선경장학금을 꿈을 품었고, <인간시대>를 보면서 '서민의 삶'에 대해 공감했다. <유쾌한 청백전>, <묘기대행진>, <명랑운동회>, <웃으면 복이 와요>같은 연예 프로그램들도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그럭저럭 좋았고,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같은 '라이브 음악' 전문 프로그램도 주말 저녁을 즐기기에 괜찮았다. 염동균이 세계 타이틀 매치에서 억울한 판정패를 당했을 때, 머리 위로 내리는 비를 원망하면서 '애새끼들이 뒤에서 장난치는 것'을 성가셔 하면서도 중계방송에 애쓰던 아나운서의 모습까지도 쓸데없이 기억하고 있다. CF에 나와서 '자산관리'에 고민하는 요즘 그분의 모습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들긴 하지만. 정리하면 연예, 교양, 스포츠 모두에서 MBC는 절대우위를 누렸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MBC가 KBS의 '공영=관변' 분위기와 (지금은 사라진) TBC의 '민간=시장' 분위기 중에서 장점을 고루 갖춘 방송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장점은 정반대로 역전되기 시작했다. '드라마가 맛이 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TV 드라마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는 어설프고 우스꽝스러운 신파 멜로드라마 이상이 아니니까. 그게 아니라 MBC는 '공영=관변'과 '민간=시장'의 단점을 고루 결합한 조직체로 변해갔다는 이야기다. 단적인 예로 MBC는 화요일 밤 <PD 수첩>에서 스포츠 신문의 옐로 저널리즘을 비판하다가 24시간 뒤 <섹션 TV 연예통신>에서는 스포츠 신문 저리가라는 '보도'를 한다. '공영방송의 선정주의'는 여타 민방이나 케이블 TV를 능가한다. 웃기지도 않는 개그 프로그램을 억지로 웃기게 만들기 위해 대문짝만한 자막을 집어넣는 것도,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뒤 특정 가수의 뮤직 비디오를 방영하는 것도, '9회말 2사 1, 3루의 역전 찬스'에서 야구중계를 끊어버리는 것도 모두 MBC의 '선구적 업적'에 속한다. 한국 사회는 오해가 많은 사회이므로 이런 논조를 혹시 '조선일보식 음해'로 오해할 지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 "MBC 보도국의 진보적 도덕주의 성향은 예능국의 선정적 상업주의의 알리바이"라는 것이 나의 '의심'이다. 이중적 모습이 'MBC의 매력'이라는 해괴한 반응도 있지만 그건 요령부득이다. '보도국과 예능국은 따로 논다'는 말은 결코 자랑이 아니건만 그런 말을 자랑스럽게 하는 사람도 있다. 정녕 그렇다면 케이블 채널을 하나 만들어서 연예 프로그램들을 독립시키면 될 것 아닌가. 이런 의심은 이번 '연제협 사건'을 겪으면서 확신으로 굳어지고 있다. 나는 '속성 상 MBC와 연제협은 타협할 수밖에 없다'는 나의 진단이 틀리기를 내심 바랬다. 그래서 연제협의 '시다바리'들과 관계를 끊고 거기에 소속되지 않은 진짜 음악인들의 장을 마련해 주기를 기대했다. 그렇지만 인기를 먹고 사는 데 익숙해진 '방송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안 되는 모양이다. 싫든 좋든 '운동권 출신'이라는 딱지가 붙은 사람으로서 MBC 노조의 선의를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노조에게 바라고 싶은 것이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나 [미디어 비평] 같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예능국의 관행부터 뜯어고치는 일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하지만 올 봄 가요순위 프로그램의 폐지를 토론하기 위해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 MBC의 연예 PD들이 '콧빼기'도 비치지 않은 걸 보면 이것도 무리한 기대일까. 아니나 다를까 MBC는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폐지하지는 않고 어쩌구...'라고 말하고 있다. * [PD 연합회보]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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