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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라는 곳은 '정치면은 <한겨레>고, 문화면은 <스포츠신문>'인 괴물 같은 매체다. 물론 이런 이중성이 자유분방해서 좋다는 '어처구니없는' 궤변을 피력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따옴표친 부분은 엄기영 앵커의 톤으로 발음하라). 그래 좋다. 나도 예전에는 MBC가 '공영'과 '민간'의 장점을 고루 갖추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양자의 단점만 골라 온 것 같다. MBC의 연예 프로그램은 상업방송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선정적이다. 시사 프로그램과 보도 프로그램의 성향은 '진보적'이지 않냐고? "<조선일보>의 문화면이 정치면의 수구 성향의 알리바이"라는 김정란의 어법을 빌려서 표현한다면, MBC의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진보주의는 연예 프로그램의 선정주의·상업주의의 알리바이일 뿐이다. 진보주의란 것도 사실은 '도덕주의'에 지나지 않기는 하지만. 갑자기 왜 열 받느냐고 물어본다면 이른바 '연예제작자 협의회('연제협' 사건)'의 타결 때문이다. 8월 16일 MBC와 연제협은 '극적으로' 타협했고, 이제 우리는 MBC의 각종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의 재롱잔치'를 계속 볼 수 있게 되었다. 기쁜가? 양측은 "방송사와 연예인간의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고 연예산업 발전에 노력할 것"을 합의했다고 한다. 유심히 보자. 개선하겠다고 말한 것은 '방송사와 연예인 사이의 불합리한 관행'이지 문제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지적한 '연예인과 매니저간의 불합리한 관행'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MBC 측은 대중음악 시스템의 '불합리한 관행'의 온상으로 지적되어 온 순위 프로그램(<생방송 음악캠프>: 그게 진짜 '생'방송인가?)에 대해서는 "기존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형태를 고수"한다고 밝혔다. <시사매거진 2580>에 나와서 순위 프로그램의 폐해를 인정한다는 발언을 했던 담당 PD는 입이 두 개인가? 부산 방언을 사용하면 '말이가 방구가'? 더더욱 황당한 것은 "한국 갤럽에 의뢰하여 음반 판매량, 방송 횟수, 네티즌 집계 등을 종합한다"는 방침이다. 한국 갤럽이 전화 걸어서 여론 조사하는 곳이지, 음반 판매량 조사하는 통계청 산하기관인가. 음반산업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현재 음반 판매량의 집계가 '음반협회 회원사의 보고'에 의해 작성된다는 사실 정도는 알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음반 판매량은 음반사 사장님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사장님들 모두가 판매량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정확한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바코드도 POS 시스템도 미비한 상태에서 공정한 집계가 어떻게 가능한가. MBC측의 용빼는 재주가 궁금하다. 계속했다가는 입만 더러워질 것 같으니 그만 두자. 어쨌든 [조선일보]의 '문화적 엘리트주의를 빙자한 정치적 보수주의'나 MBC의 '문화적 상업주의를 등에 업은 정치적 진보주의'나 오십보 백보다. 이런 말은 '갑자기' 언론개혁을 위해 분투하는 MBC의 노력을 감안하여 참아야 '정치적으로 올바른' 자세겠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보도국과 예능국이 따로 논다는 걸 모르느냐고?
근데 그게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일인가. 보도국에서는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하자고 주장하고, 예능국은 존속시킨다면 그런 보도 프로그램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시사매거진 2580> 담당자에게 '당신들이
책임지고 대중음악 시스템을 개혁하라'고 건의하면 '무리한 요구'라고
말할 것 아닌가. 좋다. 한국 사회에서 너무 기대를 많이 하고 살기는
힘들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 대신 MBC 보도국의 진보주의는 예능국의
선정주의의 알리바이라는 의심은 '확증'이 될 때까지 거둘 수 없다. '신현준의 글은 생산적인 제안이 없다'는 지적이 있으므로 제안하겠다 -> 케이블 채널을 하나 만들어서 연예 프로그램은 그리로 독립시키고, 시사, 보도, 교양에 집중하면 어떤가? 그러면 광고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왜 우리가 먼저 해야 되냐고? 그럼 이런 비판에도 불쾌해 하지 마라. 하긴 MBC가 이런 글 하나에 콧방귀도 뀌지 않겠지만. 20010822 * [씨네 21]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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